로빙화
중자오정 지음, 김은신 옮김 / 양철북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가난한 집 아이 아명에게 허락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가족을 휩쓴 가난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아버지는 남을 속여 물건을 팔지 않을 만큼 강직한 사람이었지만 계속되는 가난으로 인해 수동적인 인물로 전략해 버렸고,  어머니도 그와 다르지 않다. 누나인 차매만이 그림을 그려대는 천진난만한 아명을 감싸고 돌았다. 하지만 겨우 6학년인 어린 누나의 눈에도 동생의 그림은 피카소의 그것처럼 어려워보였다. 


형태를 갖추지 않았기에 더욱더 어린이다웠던 아명의 그림. 아명의 재능을 알아채 준 사람은 학교에 임시 교사로 온 곽운천이었는데, 그는 대학생이지만 몸이 불편하여 2년 휴학 중이었다. 그런 그가 아이들의 미술 선생님으로 부임해 오면서 미술시간은 다른 시간이 되어 버렸다. 같은 반 반장이자 부유한 아버지의 아들인 임지홍이 두각을 나타내던 미술 시간의 주인공은 이제 가난한 아명으로 바뀌었다. 마치 어른처럼 기교를 부린 지홍의 그림보다 비록 형태는 갖추지 못했지만 자유스러운 아명의 그림을 선생이 더 높이샀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인해 지홍의 아버지에게 찍혀 버린 곽선생은 결국 학교를 떠나지만 아명의 그림 한 점을 세계 어린이 미술 대전에 보내게 된다. 선생이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 아명도 급성 폐렴으로 죽어 버린다. 그리고 곧 도착한 소식은 아명이 세계 어린이 미술 대전에서 특상을 탔다는 소식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거나 조금만 빨리 아명의 천재성을 어른들이 인정했더라면 아명은 죽지 않아도 좋았을텐데....그 아쉬움이 안타까움으로 번져 어린 천재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게 만든다. 

실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먼저 접했었다. 어린 시절에 봤던 한 편의 낡은 영화였는데, 그때 당시에도 펑펑 울게 만들더니 어른이 된 지금도 책을 읽으며 울게 만드는 슬픈 이야기다. 아이의 시선으로 읽어도 어른의 시선으로 읽어도 슬프기는 매양 마찬가지인 이 소설은 마치 아명이 세상에 슬픈 그림 한 점을 남겨 놓고 떠난 것 같기만 하다.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다. 한 가난한 소년의 천재성이 죽음과 함께 묻혔을 뿐이다. 하지만 그 진한 감동의 끝은 간단하지 않다. 눈물방울이 꼬이고 꼬여 고리가 되어 가슴 저 밑바닥에 가라 앉아 버린 것처럼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로빙화. 차 밭에 심으면 봄에 꽃이 핀다는 이 꽃은 죽어서 향기로운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만들고 다른 식물들이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꽃이다. 작가가 이 동화같은 소설에 로빙화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바로 그런 까닭이 아닐까. 아명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아명이 죽어서도 로빙화처럼 되라는....또 하나의 시작의 희망을 남겨두고픈 작가의 바램이 담긴 제목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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