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의 처녀들
바버라 퀵 지음, 박인용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바버라 퀵의 소설은 어딘지 모르게 산만스럽다. 현대의 소설이라기 보다는 "제인에어"나  "엠마"시대의 소설들처럼 간결한 소재로 쓰여졌는데,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  제인에어나 엠마 등등의 여성 소설들은 간결하면서도 하나의 스토리를 위해 집중할 수 있도록 응집력이 있는 반면 비발디의 처녀들은 자꾸 부산스럽게 읽게 된다. 

18세기 베네치아가 배경인 이 소설은 처음은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다. 
어머니에게 쓴 아주 평범한 듯 보이는 안부편지가 점차 읽어내려 갈수록 이상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렇다. 편지를 보내는 이는 어머니가 없다. 누군가는 그녀를 낳았겠지만 부모의 존재를 모르는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다리아저씨에게 일상을 전하듯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의 일상을 낱낱이 밝혀나간다. 

하나의 성장소설형식을 띄는 [비발디의 처녀들]은 안나 마리아라는 바이올린을 켜는 고아 소녀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모든 것에 불만일 수도 있고, 희망적일 수도 있는 열쇠는 그녀가 지니게 된다. 그녀의 눈으로 본 어린 소녀들로만 구성된 정숙한 고아원.

고아소녀들은 각자의 비밀과 사정을 가지고 음악을 하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 베르나르디나는 태어날때부터 눈이 불편하다. 매독에 의해 손상되었다고 소녀들은 속닥이고 있었다. 줄리에타는 베니치아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가문의 기혼녀와 의원 사이의 사생아로 소문이 나있고 안나 마리아는 그 어떤 소문도 가지지 못했다. 그것이 그녀가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면서 또한 그 누군가는 낳았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녀. 그녀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머니에게 수도원의 일상을 일기쓰듯 전하고 있다. 

하지만 안나 마리아는 성격상으로 좀 밋밋한 소녀였다. 만약 그녀가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의 옥희처럼 앙큼한 아이였다면 그녀가 관찰한 18세기 베네치아는 좀 더 흥미로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자신은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지 않은가. 왜 안나 마리아는 좀 더 영악스럽지 못했을까. 

바이올린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안나 마리아. 마에스트로 비발디의 제자이자 정숙한 그녀에게 클라우디아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녀는 버려진 아이가 아니었다. 신부수업의 일환으로 17세까지 이 곳에 맡겨진 소녀였으며 패션에서 금기시된 성적인 것까지 소녀들에게 가르치는 대담성을 가진 소녀이기도 했다. 비빔밥처럼 다양한 소녀들이 사춘기시절을 함께 보내는 갇혀 있는 세상 수도원. 

1741년 7월 빈에서 생을 마감한 예순살의 안토니오 비발디는 책 속에서 그리 중요한 인물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비발디의 처녀]인 까닭은 비발디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18세기 베네치아를 사실감 있게 그려내고 싶었던 작가의 바램이 담겨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예순살에 죽은 이 성직자는 여전히 찬반논란에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삶이 아니었다. 


안나 마리아. 그녀는 결국 어머니를 밝혀내지만 원래 맺혀있거나 복수형 캐릭터가 아니었던 관계로 그 사실은 그저 물흘러가듯 밝혀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18세기 베니치아 수도원 담장 너머에 그녀들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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