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미러 - 운명을 훔친 거울이야기
말리스 밀하이저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닭이 먼저일까? 계란이 먼저일까?
분명 닭이 있었기에 계란을 낳을 수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그 닭은 알에서 부화했을테니...
따지고 들면 머리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 삼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또 저 논리가 생각나게 된다. 무엇이 먼저일까. 

브랜디는 레이첼을 낳고 레이첼은 샤이를 낳았다. 하지만 98세의 브랜디가 죽기 전 샤이와 그녀의 할머니 브랜디는 바뀌어 버린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비밀]에서처럼 현세에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운명이 바뀌어 버린다. 분명 브랜디가 있어 샤이가 생기는데, 샤이가 브랜디가 되어 엄마인 레이첼을 낳는다. 이 무슨 회괴한 일인지 모르겠다. 


샤이, 브랜디가 되다...

그 첫번째 단추는 샤이가 꿰기 시작했다. 남친 마렉과의 결혼을 앞두고 샤이는 거울 앞에 섰다. 집안에 오래된 골동품인 거울은 뱀문양이 있는 아름답지 못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 거울 앞에서 그녀는 브랜디와 바뀌어 버린다. 그것도 브랜디의 결혼식 전날쯤해서.

샤이는 브랜디가 되면서 할머니 시대로 날아간다. 그녀에게 모든 것은 불편함 투성이다. 전기가 없고, 자동차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시대. 그녀는 그 곳에서 쓸모없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미래에서 왔기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다. 게다가 눈치빠르고 영리한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노력한다. 부모님이 짝지어준 남편은 죽어버렸지만 그녀의 할아버지가 되는 매든을 찾아내어 그녀는 결혼에 성공하고 할머니의 인생을 그대로 답습한다.  돌아가는 것을 포기한 샤이는 삶을 누리기를 결심하고 샤이로 살 브랜디를 위해 일기를 남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손녀의 결혼식에 왔다가 쓰러져 죽음을 맞는다. 


레이첼, 샤이와 브랜디의 뒤바뀜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다...

자신을 낳은 엄마가 사실은 자신이 낳은 딸임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브랜디와 샤이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레이첼의 혼란스러움이 없다면 이 소설은 할리퀸 로맨스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레이첼은 그들 사이에서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역할을 맡았다. 자신이 얼마전에 묻은 엄마가 사실은 딸이었다면....이 노릇을 어쩌면 좋다는 말인가. 작가인 레이첼은 더 혼란스럽다. 그리고 엄마가 남긴 일기를 읽으면서 그녀는 충격에 휩싸인다. 딸은 죽었고 엄마는 살아있다. 엄마가 딸이되어 사위의 아이를 낳았다. 레이첼은 혼란스럽다. 


브랜디, 샤이가 되다....

샤이가 브랜디로 적응하며 사는 것 보다 브랜디가 샤이로 살아가려면 백배쯤은 더 힘들다. 불편함을 떠나 배워야 하는 것들이 수두룩하고 도덕개념조차 그녀는 너무나 청교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은 남자와 손 한번 잡아본 적이 없는데, 임신한 몸이 되어 있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방법은 없고, 손녀 샤이는 이미 죽어 묻혔다. 이 모든 것이 거울 때문이었다. 



운명. 어떤 소설 속에서는 아주 멋진 단어로 등장하지만 또 다른 소설 속에서는 아주 잔인한 단어로 등장하기도 한다. 운명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재미있음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샤이가 브랜디가 되었다면 할머니의 인생을 찾아 답습하기 보다는 다른 인생 살기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 의문이었다. 21c를 사는 샤이가 아무리 자신이 태어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 시대를 맞추어 살아가야만 했던 것일까. 운명을 믿기보다는 개척정신을 발휘해주었더라면 더 샤이답지 않았을까. 

또한 그 어떤 여성도 할머니나 어머니의 삶과 바꾸어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운명이 바뀐다는 것은 또 모를까. 보통 여성들은 엄마의 삶과 똑같이 살고 싶어하지 않는데, 할머니라고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재미있다.

거울앞에 서는 순간 세 여자의 운명은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되돌려지지 않았다. 그 생략된 말이 더 무섭게 소설을 재미로 이끌어주고 있었다. 백투더퓨쳐나 그밖의 비슷한 류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되돌려져서 삶의 균형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미러]는 그대로의 삶을 종용하며 끝나버린다. 그 무엇도 한번 바뀐 것을 되바꾸어주지 않았다. 이상하게 살다간 삼대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재미있어 밤을 꼴딱 새 버렸다. 운명을 훔친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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