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네... 도이자키 아카네는 문제가 많은 소녀였다. 도무지 사랑받을 구석이라고는 없었고, 사랑하는 것조차 그녀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삐뚤어지고 모가난 그대로의 청춘. 그렇게 그녀는 집에서나 친척에게서나 마을에서조차 천덕꾸러기였다. 그 모든 것은 그녀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고 나서 좋은 일을 한가지 했다. 물론 그녀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는것 뿐이지만. 분명 그 시작은 그녀의 시체였다. "모방범"사건 이후로 9년이 흘렀다. 프리랜서 라이터 시게코는 조용히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은 아직 그녀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책을 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그녀는 왠지 쓸 수 없었다. 단 한 줄도. 사건은 취재를 했던 그녀에게조차 상처를 남겨 두었다. 해결되었지만 그 해결이 모두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 셈이었다. 도시코... 잊혀지지 않는 그 사건을 묻어두고 살던 시게코에게 한 중년 여성이 찾아온다. 너무나 순박한 그녀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형제가 많지만 모두 이기적인 인물들이었고, 점쟁이 할머니의 수발을 그녀에게 몽땅 맡겨둔 채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도 허락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질나쁜 지역 유지영감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성폭행을 일삼는데도 할머니는 그녀의 운명이라며 눈감아 버렸다. 이정도면 가족이 아니라 고발감이 아닌가. 하지만 착한 그녀는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아이가 생기자 집에서 쫓겨난 그녀는 마흔이 너머 너무나 예쁜 아이를 낳는데, 이 아이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히토시... 도시코의 아들은 열두살에 죽어버렸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타고난 이 아이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리고 어느날 "자살"이라는 소문과 함께 교통사고로 죽어버렸다. 가슴에 자식을 묻은 채 살던 도시코가 그 그림들의 의미를 발견한 것은 얼마 후였다. 그림의 예언, 시게코가 연관되어 있던 그 사건의 예언은 물론, 16년간 마루 밑에 묻혀 있던 소녀의 시체를 그려놓은 히토시. 도시코의 의뢰를 받은 시게코는 히토시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그 사건에 접근해 나간다. 히토시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시게코...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로부터 죽임을 당한 채 집 마루 밑에 묻혀 있던 소녀를. 도리어 부모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든지, 여동생 세이짱이 안되었다던지...정도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아카네 뿐만이 아니었다. 히토시의 짧은 학교 생활을 확인하던 중 교사들의 불미스러운 일들과 그들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히토시를 문제아로 규정짓고 몰아가던 교사들의 악행까지 알게 된 시게코는 고민에 휩싸인다. 아직 자식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면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건을 조사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2권으로 끝나지만 너무나 방대한 양이다. 일본 문학이 얇은 문고판 한 권 정도로 출판되는 것과는 비료될만큼 장편의 길이는 대단하다. 하지만 미미여사가 털어놓고 있는 그 이야기는 결코 멈출 수 없다.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에 읽는 도중에 멈춘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화차]나 최근에 읽었던 [구적초], [스나크 사냥] 처럼 그녀의 작품에는 이상한 마력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