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과 핑크의 조합은 화려하다. "장례식"이라는 단어가 붙은 책 표지가 이렇게 화려해도 좋을까?
어쨌든 책의 첫인상은 우울하지 않았다. 음울하거나 잔혹한 분위기도 풍기지 않았다. 대신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는 제목이 '살인 예고장'일지, '반전의 복선'일지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면 내가 살면서 내 장례식에 초대받을 확률은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제목에서부터 단단히 낚여 수렁에 발 담그듯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의 범죄소설가인 헬렌 듀런트의 작품은 처음이다. 잉글랜드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페나인 산맥의 어느 마을에서 자랐다고 하는데, 뭔가 고풍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로맨스 소설을 쓰기에도 좋을 지리적 조건 같았으나 소위 '김은숙 작가보다는 김은희 작가'타입인지 고향 마을들을 주요 무대로 범죄소설을 집필했다.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가 마을을 배경으로 한 '타우누스 시리즈'를 썼던 것처럼.
이미 51종의 범죄 스릴러 소설을 집필한 그녀의 필력은 단 한 권의 책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까도까도 또 껍질을 발견하게 되는 양파처럼 몰입감과 재미의 강도가 쎈 작품이였다. 오히려 폭풍이 몰아치듯 읽고난 뒤 책장을 덮고 거품처럼 일어나는 의문들에 대한 답을 다시 찾기 위해 재벌읽기를 시도했을 정도로 여러 번 읽는다고 그 재미가 반감되는 소설도 아니었다.
장례식으로 시작해서 장례식으로 끝나는 이야기일까?
발신인 없이 도착한 이메일 한 통이 '덫'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면서도 가야했던 앨리스 앤더슨.
불어난 이자와 원금을 감당하지 못해 이름을 버리고 타인의 신분으로 살고 있던 앨리스는 이메일 한 통을 받고 자신의 장례식장에 참석하면서 지난 3년 동안 자신의 신분 또한 도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누가 ? 왜 ? 앨리스 앤더슨이 되어 맥스와 타라 부부의 삶으로 스며들었던 것일까. 곧 그녀가 누구였는지 밝혀지지만 그녀가 살해된 이유와 범인의 존재가 궁금해지면서 이야기 전개에 따른 궁금증은 증폭되어 간다.
장례식에서 장례식으로 끝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만 같은 소설의 내용은 고용주인 맥스와 타라 부부 외에도 외동딸 한나까지 의심하게 만들면서 1대 3의 구도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엔 2대 2의 구도로 변하기도 했고 3대 1로 종결되나 싶은 시점에서 '앨리스의 엄마'라는 복병을 추가시켜 모두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에 다다르기도 한다. 처음 가졌던 단순한 의문 "누가 초대장을 보낸 것일까?"는 해결되었지만 이야기를 손에서 놓지 못한 이유도 양파껍질 같은 스토리텔링의 결과물이다.
아니, 내 말 믿어요
당신이 아닌 건 그의 비밀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요 P384
만약 그녀의 대답이 '아니오'라면,
나는 이곳을 영원히 떠날 생각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하지만 만약 이사벨이 맥스가 여전히 이 끔찍한 거래에 깊이 빠져 있다고 말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그를 멈추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안다
그건 또 다른 조사를 뜻했다 P384
찝한 마음이긴 해도 사건이 다 끝났다고 여겨질 무렵 이사벨이 마지막으로 던진 진실은 끔찍했다. 하지만 고민하고 흔들릴 정도로 앨리스가 정의로운 인간인가? 라는 의문이 마지막으로 남는다. 작가의 필력이라면 프리다 맥파든의 <하우스 메이드> 시리즈처럼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결말이긴 하지만.
처음 접한 작가 헬렌 듀런트의 소설은 '공포'보다는 '의문과 재미'에 집중할 수 있는 이야기여서 첫인상이 좋았다. 번역도 깔끔하고 읽기 편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았고 과하지 않을 정도의 맛깔스러움이 더해져 역자의 이름을 되찾아보니 역시 여러 소설을 번역한 베테랑이었다. 이야기의 기본틀부터 번역, 책 디자인까지 3박자가 골고루 멋있는 소설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가 영상으로 옮겨진다면 가상 캐스팅에 어울릴 배우들은 누가 있을까? 즐거운 상상을 마지막으로 책과 이별 중이다.
인디캣서평단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