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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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험의 순간 여럿이 모여 누군가를 구해내는 시민영웅담을 종종 뉴스를 통해 듣는다. 넘어간 차를 합심해서 일으켜 세웠다던가 차 밑에 깔린 사람을 구조해냈다던가 하는 내용의 소식을. 하지만 <견딜 수 없는 사랑>에서처럼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이언 매큐언의 <견딜 수 없는 사랑>은 제대로 착륙하지 못한 회색 기구에 다리가 걸린 조종사와 그 속에 타고 있던 겁먹은 10살 정도된 소년을 본 사람들이 달려가 기구를 붙잡다가 놓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나'는 7년째 동거중인 클래리사와 소풍 도중 사고를 목격한다. 그리고 뛰어가 기구를 붙들었다. 총 여섯 명의 남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기구를 붙들었는데 그 중에는 28살의 제드 패리와 42세의 존 로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누가 제일 먼저 밧줄을 놓았는지

그때도 알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p28

그랬다. 의사이자 산악구조대였던 존 로건 외 다른 사람들은 모두 손을 놓았고 오로지 그만이 100미터 상공까지 기구와 함께 올라갔다가 추락했다. 한 사람의 죽음. 이제 그들 모두가 목격하게 된 것은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누가 먼저 손을 놓았냐'는 것은 무의미한 추궁이 아닐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이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문득문득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질 때도 있었고, 이후 이상하게 자신에게 집착하는 제드라는 남자도 그러했고. 그 사고 이전에는 전혀 본 적 없는 이방인이었던 제드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니까, 나는 그 사랑에 화답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p99)라는 이상한 망상에 사로잡혀 스토킹을 일삼았고 종국엔 살인청부까지 자행한다.





'사랑'이라는 과정은 함께 시작했더라도 지속기간이 서로 달라 불행하게 이별하는 경우가 있다. 연인사이의 결말도 그러한데 생전 처음 본 남자에게서 '니가 나를 좋아하니까 나도 너를 좋아할께'라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면 얼마나 불쾌할까. 기분이.

작가가 제드라는 인물의 행동에 대한 근거로 든 것은 드클레랑보 증후군이다. 드클레랑보가 자신의 이름을 붙인 이 증후군 환자는 사실 여성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강한 망상에 빠지게 되는데 종교적 확신이 동반되기도 하며 소설에서처럼 남성의 동성애적 집착 사례도 있다고 했다.


부록을 통해 본 드클레랑보 증후군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피해자들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으므로. 괴롭힘과 스트레스, 폭력, 성폭행, 죽음을 당할 수도 있을 뿐더러 심리치료가 필요하거나 이혼 혹은 이민을 가는 사례도 있었다. 무엇보다 환자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가족들도 환자로 치부하지 않을 수 있어 더 위험해 보인다.




병리학적으로 학대된 사랑은

정상적인 경험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그 범위가 겹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가장 귀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가

사실은 정신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p357 ~358






<속죄>보다 강한 여운을 남기진 않았으나 실제로 존재하는 증후군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기에 그 무게감이 남다를 수 밖에 없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은 현대 영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하나인 이언 매큐언이 쓴 작품이다. 이야기의 다음이 궁금해지는 소설이기보다 뜬금없는 고백과 집착이 마치 끈적이는 접착면을 손으로 만진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 절반 즈음은 주인공의 마음에 빙의되어 읽고, 반 정도는 학문에 열중했던 뛰어난 머리와 사회적 지위를 가졌음에도 좀 더 현명한 방법을 찾지 못한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며 읽었다.

하지만 끝내 어느 부분이 '반전의 반전의 반전'인지는 찾지 못한 듯 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도 이렇게 생각했다가 책을 소개하는 자료에서 부록에 첨부된 부분이 '이스터에그 였다' 라는 대목을 읽고 무릎을 쳤다. 기분좋게 속았다. 




*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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