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노크
케이시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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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똑.똑.똑.똑

302호의 문을 두드렸다

첫 방문할 때는 대개 노크를 네 번 정도는 해야 한다

두 번은 친근한 사이일 때,

세 번은 안면이 있을 때.

첫 방문일 때는 노크 네 번이 적당하다

P235






제목부터 임팩트가 강한 소설 [네 번의 노크]는 가난한 동네, 여성전용 원룸 3층에 거주중인 6명의 입주민에 관한 이야기다.

얼굴 화장이 짙고 옷마저 야하게 입어 업소 여성으로 오해받는 301호의 직업은 '무당'. 은둔형 외톨이로 집 안에 틀어박혀 재택근무 중인 302호는 일감이 끊이질 않는 프리랜서 디자이너. 사회복지사지만 사명감보다는 돈과 남자를 더 중요 순위로 두고 사는 여자, 303호. 타인과 의사소통이 어렵지만 303호하고는 종종 교류가 있는 지적장애 3급 여자는 304호에 살고 305호엔 비교적 마음이 따뜻하지만 거칠게 보이는 겉모습 때문에 오해를 받곤하는 노점 액세서리 판매상이 산다. 시작부분에서 제일 얄밉게 보인 306호 수다쟁이 아줌마는 건물주가 먼 친척이라 청소하면서 무상거주중인데 3층 여자들에 대해 불만이 많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지만 점꾀에 솔깃할만큼 귀가 얇고 타인의 상처는 생각지도 않고 함부로 말을 내뱉을만큼 주둥이는 폭력적이다. 택시기사인 남편과 다단계판매를 하는 아들과는 웬일인지 떨어져 홀로 살고 있으며 사건의 최초 신고자이기도 하다.

부유하지 않다고해서 다 범죄자거나 비양심적인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 건물 3층에 홀로 사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죄다 문제투성이인걸까. 성격, 직업, 나이, 외모, 경제적인 환경까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타인과의 소통","친화력"은 제로인 인생들이다. 말이 없는 쪽도, 말이 너무 많은 쪽도 비호감인셈.

그런 그녀들이 모여사는 건물에서 남자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여성전용 건물인데도 불구하고.


시체의 정체는 303호 사회복지사의 전 연인으로 부유해서 좋았던 남자가 사업 실패 후 계속 찌질해지는 것을 참다 못해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였다. 마음이 식은 여자와 달리 남자는 점점 더 집착하는 중이었고 자주 방문해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거칠게 섹스를 하곤 했다. 경찰 진술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별을 암시하던 303호는 이상하게도 남자가 남긴 보험금은 수령했으며 찝찝하지만 별다른 의문점을 찾아내지 못한 보험사 역시 남자의 사망 보험금을 가족이 아닌 303호에게 지급한다.

하지만 첫 번째 사건이 종료되었다고 해서 이야기가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호당 경찰 참고인 진술 형식으로 자신의 처지와 다른 집 거주자에 대한 호감내지는 불만을 엿볼 수 있었다면 2부 [독백]부터는 새로운 사건 및 3층 여자들의 관계변화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1부에서 죽은 남자의 살인범과 방법이 서서히 밝혀지지만 종결된 사건의 범인 따위는 이제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닌 척하면서도 서로를 지켜보는 눈치작전이 시작되고 표면상으로는 타인에게 관심없는 듯 사는 3층 여성들의 이면이 조금씩 드러난다. 누가 더 지독한 아귀인 걸까. 비록 지적장애인이지만 3층 주민들 중에서는 가장 부유한 상황인 304호의 돌연사. 목적이 있어 가장 활발하게 교류했던 303호나 303호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304호에게 접근을 시도해 본 302호, 역시 이용해보고자했던 305호까지.....의심스럽지만 죽음의 원인이 '독'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번 사건의 범인 역시 놓쳐 버린다.

특이한 점은 자살 사건으로 종결되어버린 304호의 유해를 여수까지 가져가 양지바른 곳에 뿌려준 이가 305호라는 점이다. 자식을 부끄러워하며 숨겨둔 친모나 친하게 지낸 303호가 아닌 타투와 피어싱 투성이에 머리색깔마저 보라색+노란색으로 염색한 모습이라 무서워했던 305호가 유해를 수습한 사람인 것은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어쩌면 인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월세가 없어 곧 쫓겨난 노점판매상은 비록 너무 가난해서 얼마간의 돈을 목적으로 304호에게 접근했을 망정 다른 여자들에 비해선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처음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무료상담해주는 것처럼 보이던 301호 무당의 속내도 시커맸고 오빠 가족들에게 돈을 뜯기며 사는 것 같던 302호 역시 끔찍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3층에 살던 여섯 중 하나는 죽고 둘은 떠났다. 남은 셋이 모여 파티를 한 다음 날, 다시 둘이 죽고 하나만 살아남는다. 겉모습만 다를 뿐 속내가 같은 여자들만 모여 살았던 거다. 그 사실을 깨닫고 잠시 책을 덮는다. 소름이 오도독 돋을 정도로 끔찍한 기분이 들고 말아서. 10층 건물에서 3층에만 이런 인간들이 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모든 층 사람들이 다 이런 부류인데 3층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것일까.



나를 해치려는 전 남자친구를 해결한 것도

날 이용하기만 하는 오빠 가족들을 떼어 놓은 것도

고기와 가스였다. 망설이면 진다.

p264





남은 여자 셋이 파티 한 날 알게 된 정보에 의하면 302호 이전 세입자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놀라운 건 그녀가 303호와 친했다는 사실. 이쯤되면 악녀선발대회를 열고 있는 장소인가? 싶다. 어쨌건 3층 돈을 싹쓸이한 302호가 위너인가 싶었으나 그녀 역시 뒤통수를 세게 맞는다. 306호의 가족들에 의해.

그리고 남겨진 권선징악적 결말 하나.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났지만 근처에서 더 형편없고 허름한 월세를 구한 305호의 눈에 306호 가족들의 수상쩍은 움직임이 포착되고 계속 302호에게 당부의 메모를 썼지만 전해지지 않았다. 302호에게 일이 생긴 것도 모른 채 죽은 304호가 남긴 물고기 인형을 간직해온 305호는 인형의 뱃속에 솜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채게 된다. 잠시 잠깐 나쁜 마음을 먹었지만 그래도 3층에서 유일하게 인간다운 마음을 갖고자 했던 305호에게 하늘이 준 선물일까. 아니면 자신의 마지막을 배웅해준 고마움으로 304호가 남긴 것일까.

전자책으로 직접 출간했다는 [네 번의 노트]는 임팩트가 강한 제목부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부까지 속도감 있게 읽기 좋은 소설이다. 특히 욕망에 쩐 드라마 '펜트하우스'와는 다른 면에서 인간의 추악한 속마음을 절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라 뜨끔한 면도 있고. '밑바닥 인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변명하기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애초부터 시커멓고 추악했다.

영화판권까지 따낸 소설의 묵직한 진면목을 경험하고 싶다면 당장 첫 장을 넘겨볼 것을 권한다. 분명 마지막까지 다 읽게 될테니까.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책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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