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하난의 우물
장용민 지음 / 재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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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에서부터 <궁극의 아이>,<귀신나방>,<불로의 인형>,<신의 달력>,<운명계산시계>까지... 이야기의 재미는 끝이 없었다. 이 작가의 작품들을 엮어 시즌제 드라마로 제작해도 재미있겠다 싶어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은 들려오는 소식이 없다. 몇 페이지만 읽어도 주인공부터 배경, 사건까지 영상으로 좌라락 그려지는 스토리들이라 캐릭터가 좀 더 가미된 각색본으로 만나보고 싶다. 이 작가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신작 <부치하난의 우물>은 제목이 좀 낯설다. 어딘가의 지명인가 싶기도 했고, 우물이라는 단어가 붙여져 공포소설인가 싶기도 했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로맨스 소설이란다. '부치하난과 올라'의 인연이 시공간을 지나 '누리와 태경'으로 이어지며 전생에서와 달리 이 생에서는 이루어지나 싶었으나 과거에 '만다란투'가 있었듯 현생에서는 '하문'의 방해를 받는다.

길에서 사는 누리와 길로 내달린 태경

1996년 겨울, 함께 살던 할머니가 죽은 후에도 줄곧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낡은 리어카를 끌고 폐지랑 빈 병을 주으면서 살아가는 스무살의 '누리'에겐 나름의 법칙이 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절대 공짜로 얻어먹지 않으며 죽은 할머니의 유언대로 아무리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 여섯 살부터 거리를 전전하던 누리를 거둬준 할머니는 늘 말했다. "힘들어도 손 벌리지 마라. 다들 우리만큼 힘드니까.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 거야."(p14)라고. 그리고 세상 어딘가엔 반쪽이 있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노라고. 스무 살 청년의 몸에 다섯살배기 지능으로 살아가는 누리는 약간 모자란듯해도 세상 그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어려운 이웃까지 도와가며 살아가는 부지런한 청년이다. 반면 의붓 아버지의 성폭행과 이를 모른 척하는 생모의 집에서 가출해 거리로 나왔다가 포주에게 잡혀 성매매를 강요당해온 태경은 지긋지긋한 삶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성접대를 나간 룸살롱에서 48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들고 튄 것. 90억 상당의 다이아를 들고 튄 태경의 뒤를 쫓는 무지개파. 그들로부터 도망가던 중 태경은 운명처럼 누리와 만나버린다. 그 옛날처럼.

부치하난의 전설

영봉도사로부터 전설점을 본 누리는 '부치하난의 전설'에 빠져든다. 츄위샤이의 잔혹한 전사 부치하난은 우물 안에서 물을 찾던 '올라'를 만났고 족장 만다란투가 그의 기억을 지웠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과거 부란족 제사장 챠이르의 아들로 만다란투는 어머니를 죽인 원수임을 기억해냈다. 어디에서건 물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 부란족의 아들, 부치하난은 운명의 짝 올라를 만나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해냈지만 결국 함께 죽고 만다. 그후 그들이 죽은 자리에 생겨난 우물을 사람들은 '부치하난의 우물'이라 불렀다. 영봉 도사로부터 부치하난의 우물에서 주워온 뼛조각을 받은 누리는 자신이 부치하난이며 세상 어딘가에 있을 올라를 찾아내 지켜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시 만났잖아.....p147

전생에서의 연이 과거에서 종결되었다면 어땠을까. 누리는 계속 폐지를 주으며 거리에서 유기견과 함께 생활하고 태경은 붙잡혔다 달아났다 붙잡히는 과정이 되풀이 되었을까. 똑똑해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 속에서 모자란 채로 살아가야하는 누리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은 채 자살을 시도했던 태경도 안쓰러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다시 만난 그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따뜻하게 살아갔다면 이 소설은 '로맨틱한 소설'로 기억에 남겨졌을테지만 로맨스 태그와 함께 스릴러 태그도 붙여져 있어 그 결말은 사실 읽기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감정선이 짙고 어쩌면 오글거림이 느껴질수도 있는 후반부에선 책장이 살짝 빨리 넘겨지긴 했지만 역시 장용민 작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스토리는 가독성이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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