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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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보다 시인의 '글'을 기다리던 날들이 더 많다고 고백하면 실례가 될까. 번역본이든 그의 긴 글이든 간에 나는 시인의 글이 참 좋았다. 짧은 문장도 의미가 짙었고,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것조차 좋았다. 무언가에 쫓겨서 읽는 글이 아니라 순간순간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는 제목부터 '끝까지 살아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해서 끌렸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로 흘러간다는 걸 믿으며 사는 편이 속편하다는 걸 서른이 넘어서야 깨닫곤 좀 힘든 일이 생겨도 '지나고 보면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닐거야. 일어날 이유가 있어서 먼저 온 일이다'라며 마음을 삭히곤 했다. 물론 100% 다 삭혀지는 건 아니었지만.

 

류시화 시인의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속에는 자신의 지난 날들이 담뿍 담겨 있다. 너무 가난해서 말도 안되는 조건(가령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어서 한 밤 중에도 화장실이 있는 건물로 전력질주를 해야했다든지...)으로 방을 빌리거나 거처가 없어서 창고 같은 곳에서 지내야 했던 일, 인생의 고비마다 나타났던 사람들, 그들이 내뱉은 좋은 말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글쓰기... 계속 되고 있는 그의 삶 중 과거쪽은 참 치열했다 싶다. 하지만 불행하거나 절망했다고 회고하지 않았다. 이 점에 놀라웠다. 시인은 멘탈이 강한 사람인가. 감성적인 언어를 구사해야하는 시인의 마음이 바위일리 없건만 주저 앉거나 절망하기 보다는 일어서서 달리는 편을 택한 그의 용기에 감탄하며 그가 이토록 놓지 못한 글의 힘이 그를 계속 살게 만든 것인지 궁금해졌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화두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다. '모른다. 살아봐야 안다'다. 이 대목에서 37페이지에 등장하는 곰돌이 푸의 질문과 답은 명답이 된다. "오늘은 무슨 날이야?"라고 묻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야"라고 셀프답변했다는 캐릭터 푸. 인생을 푸처럼만 살 수 있다면 스트레스따위는 없을텐데. 모든 날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로 채워질 순 없겠지만 나도 노란곰에게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봐야겠다. 가장 좋아하는 날들로 채워 나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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