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어느 날 - 기댈 곳 없는 사람과 갈 곳 없는 고양이가 만나 시작된 작은 기적
11월 지음 / 아라크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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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고양이도 폭력엔 상처받기 마련이다. 매맞던 어린 아내가 아이 셋을 낳고도 이혼을 생각했다면....속으로 얼마나 곪았을지....문장 하나에도 이렇게 가슴이 아려온다. 무엇보다 가족의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그 이중 상처는 보지 않아도 불보듯 뻔한 일 아닐까. 어떤 연유로든 때리는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말한 가족을 이해하긴 힘들지만 다행스러운 건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 거다. 그녀가.

 

그리고 거짓말처럼 어느 날, 버려진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쩌렁쩌렁한 위자료를 받은 것도 아니요, 아이들까지 도맡아야했던 녹록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묘연이 닿아 집사가 된 저자는 이제 두 고양이를 반려중인 집사다.

 

안락사 될 수 있다는 말에 차마 보호소로 고양이를 보내지 못했다는 그녀 곁에 남게 된 '감자'.

동물병원에서 고양이 목의 목걸이를 발견하곤 연락처로 전화했지만 몇 다리 건너, 건너 가게 되면서 결국 버려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마지막 보호자에게 연락했으나 끝내 통화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남겨졌다. 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 곁으로.

 

'책임비 3만 원'에 데려 온 보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연탄난로가 있고, 신문지를 대충 찢어 만든 화장실이 있으며 아기 고양이가 방마다 바글바글했던 곳. 그날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저자는 '보리싹처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라' 는 염원을 담아 고양이의 이름을 '보리'라고 지었다. 회색빛의 예쁜 고양이 보리가 내 고양이(마요마요)를 닮아서일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상처 입고 불행한 사람일수록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절망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고 애도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서야 비로소 견딜 수 없는 모든 것을 거기 두고 돌아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럴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p68

 

 

조용한 감자와 수다스러운 보리는 찰떡궁합은 아니었지만 나름 가족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같이 잠들기도 했다가 금새 툭닥툭닥 싸우기도 하고, 또 각자의 자리에서 잠들기도 하면서.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고백하는 집사에게 하루하루 위안을 선물하며 사랑받으며 산다. 고양이를 반려하는 집사들은 안다. 저 마음을.

그리고 어느새 수순처럼 내 고양이의 이쁨, 내 고양이의 귀함을 아는 집사들의 눈엔 척박한 삶을 사는 길고양이들의 삶이 물들듯 스며든다. 저자에겐 이미 죽어 묻어준 이름 없는 고양이부터 모모,나무,두부, 강아지 봉봉이가 있었다. 그녀의 손을 거쳐 현재의 보호자가 보내준 잘 지낸다는 사진들을 보며 함께 기뻐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험한 세상.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케어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게 너무나 불공평하게 느껴져도 결국 마음이 더 불편한 사람의 몫이려니....생각하고 구조했던 몇몇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잘 지낸다는 안부를 접하게 될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지!!! 이 마음을 알기 때문에 해당 페이지들이 더 특별하게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말미에 "하지만 저는 살아남았고 세상 무엇도 그보다 중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강해서가 아니라 감자, 보리와 아이들을 지키며 점점 튼튼하게 버티게 되었을 그녀의 오늘을 응원하며 이 표현에 적극 공감꾹을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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