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딸들
랜디 수전 마이어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뉴스채널에선 단 하루도 '죽음'에 대한 소식이 빠지질 않는다. 대한민국 어딘가에선 꼭 누군가가 끔찍하게 살해되거나 사고를 당했고 처벌수위에 대한 언급이 있곤 했다.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가족이 있을텐데...그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나? 슬퍼지곤 했는데, 피해자의 가족인 동시에 가해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어린 자매의 이야기가 <<살인자의 딸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었다. 상상과는 달랐고 더 먹먹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는 이러했다.

 

 

엄마를 죽인 아빠를 바라보는 자매의 다른 시선

친탁했다는 얘기를 듣는 아홉 살 룰루와 엄마를 쏙 빼닮아 아빠뿐만 아니라 외가에서도 관심 듬뿍 받는 다섯 살 메리는 하루 아침에 부모를 잃었다. 엄마는 땅에 묻혔고 아빠는 감옥에 갇혔다. 둘 다 이상적인 부모는 아니었지만 울타리를 잃은 아이들의 상황은 비참했다.

엄마와 아빠는 집에 있을 때면 항상 싸웠다(p9)

남자들이 줄곧 엄마를 찾아왔다(p12)

아빠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원했고, 다른 무엇보다도 엄말 간절히 원했다(p9)

 

자매의 부모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숙한 인간도 아니었다. 이럴 때마다 누군가의 바램처럼 부모가 되는 과정도 시험을 거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든 거다. 처음 책의 제목을 접하곤 타인을 살해한 살인자 가족이 세상의 불편한 시선과 부당한 대우를 겪어 나가는 일들이 쓰여진 소설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아빠가 엄마를 살해했고 자신의 어린 딸도 칼로 찌른 후,자해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딸들이 자신을 보러 오길 바라는 이야기라니....게다가 세상의 편견에 앞서 가까운 가족들이 준 상처가 먼저였다.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자매를 돌볼만한 어른은 아니었으며 언니가 살아 있을 때도 어린 조카들에게 독설을 날리던 이모는 언니가 죽고 자신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조카들을 고아원에 갖다 버렸다. 치과 의사인 남편의 손을 빌려.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인내와 영리함을 동시에 갖추어야했던 언니 '룰루'는 좋은 남편을 만나 두 딸의 엄마가 되었고 동생 '메리'는 줄곧 아빠를 면회가며 '보호관찰사'의 삶을 살고 있었다. 삼십여 년이 그렇게 흘러갔다.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했던 큰 딸과 과거, 자신을 찔렀던 아버지를 지키려 노력했던 작은 딸. 들여다보면 멍투성이인 두 딸은 사실 아무 죄가 없다.

 

룰루의 죄책감

집에서 아빠를 쫓아낸 엄마랑 살고 있을 무렵, 아빠가 찾아왔다. 그것도 자신의 생일 전날. 행복한 순간을 아빠는 그렇게 망쳐버렸던 것이다.

"걱정 마, 엄만 화내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라는 아빠의 말을 무시했다면. 그래서 그날 엄마의 당부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아다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동생은 칼에 찔리지 않았을테고, 고아원에 가야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 자신을 짓눌렀던 후회는 죄책감으로 남아 그녀를 옭죄어왔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평범한 삶. 가정적인 남편이 있고 사랑스러운 두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지만 룰루는 완전하게 행복을 누릴 수 없었다. 잊을 수도 없었다. 교도소에서 계속 편지가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 얘기를 할 수 있는 걸까....아빠, 우리에게 가족 따윈 없어요."(p298)

"교도소 측에 말해서 아빠가 더 이상 내게 편지를 보내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아빠가 내게 전화하는 걸 금지해 달라고 신청했었다."(p299)

"나는 아빠를 더러운 존재처럼 숨기는데, 아빠를 면회 가는 동생은 사실 더 훌륭한 사람이 아닐까?"(p428)

딸들에게도 외할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해왔지만 비밀은 쉽게 들통나버렸다. 동생에게 딸을 맡겨놓은 날, 애들이 인질이 되었고 동생이 범인을 설득하는 가운데 비밀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메리의 부담감

아빠의 존재를 외면해 온 언니와 달리 아빠를 돌봐왔던 메리도 결코 행복하진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부모의 자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아내를 죽이고 딸들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든 아빠에게 진정한 반성의 순간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할머니 장례식 이후로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다가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메리한테서 멀어지라고? 나를 도와주는 게 메리한테도 도움이 돼."/ "아빠가 했던 일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어요? 아빤 어떻게 자신을 용서했어요?"->"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쓴단다. 이미 지난 일이야."

단 두 문장만 읽었는데도 자매의 아빠가 참 뻔뻔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삶을 망친 것으로 모자라 딸들의 인생도 찢어 버렸다고 절규하는 룰루에게 아빠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았다고 원망섞인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석방 되면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런 아빠를 보살펴 온 메리에게도 그의 빠른 가석방은 부담이 됐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나한테 미안하단 말 한 번 한 적 있어?" (p479) 아빠가 찌른 상처를 내보이면서 말했을 때 그는 "아빠도 어렸어"라고 답했다. 스물여덟이 어린 나이인가. 아내를 죽이고 딸을 찔렀으나 술에 취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얼버무리면서 어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일인가. 이런 아빠지만 메리는 일하고 공부하며 아버지와 시간을 쌓아나갔다.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으로 여기면서.

 

 

화해하는 자매

둘 사이에 아버지라는 존재는 언제나 논쟁거리였다. 다른 노선을 걸어왔기에 평행선만이 존재했다.

룰루는 여전히 아버지와 왕래없이 살고 있지만 동생의 생일 날 이모의 집에 들러 엄마의 유품을 가져왔다. 여전히 독설을 내뿜는 이모를 꼼짝 못하게 말로 응수하며. 지난 날의 작고 어린 소녀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고 사회 속에선 의사로 살아가고 있는 당당한 어른이었기에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어? 너한테 잘해 주려고 부른 거야."라는 이모에게 "나한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실라 이모. 날 왜 고아원에 버리려고 했어요?"라고 맞서면서. 통쾌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받는 상처는 깊고 쓰라리다. 특히 상대가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렇게 쟁취해온 박스를 개봉하며 자매는 웃을 터뜨리며 과거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여기 안에 뭐 들었는지 알아?"(p495)

완벽한 화해는 아니었지만 시작점은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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