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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평점 :

길고양이에게 가혹한 세상, 많은 길고양이들은 오늘만
살아간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 '어른 알러지(?)'가 없었는데, 고양이를 반려하면서 정확히는 길고양이들 밥을 챙기면서 할아버지/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생겨버렸다. 약을 놓아 죽이고, 돌을 던지고, 심지어 잡아 먹기까지 하는 노인들과 마주하면서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으로 사는 것'은
아님을....집도 있고 노동 없는 노후를 보내고 있으면서도 유독 길고양이/길강아지들에게 야박한 그들을 한동안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봐야했다. 그날
먹은 반찬과 국을 동네 폐가에 버리고 쓰레기 봉투조차 쓰지 않는 노인들이 길고양이에게 손가락질하며 동네를 더럽힌다 타박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노인이 이들 같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에 미움이 켜켜이 쌓여 딱지처럼 굳을 무렵, 상처에 연고를 발라줄 사연이 담긴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사실 세상엔 이렇게 따스한 할머니들이 더 많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칠천원 짜리 멸치는 자신이 볶아 먹고 만이천 원짜리 멸치는
노랑둥이 꽁알이들 챙겨주는 정많은 할머니, 손바닥만 할 때부터 8년을 키우면서 자식처럼 찐이를 아낀 할머니, 태어난 형제 중 홀로 남은
고양이에게 '하나'라는 이름을 붙여준 할머니, 길고양이들에게 인심 후한 공터 할머니들, 개파와 고양이파로 나뉘어 즐거운 설전이 벌어지는 곳인
부식가게 할머니, 골목 고양이들을 챙기면서 든든하게 보살피는 캣대디들, 저자가 사진찍는 동안 알아서 가방 속 사료와 간식을 챙겨 먹는 고양이
노상 강도단(?)이 사는 화단 을 가꾸는 할머니, '고양이, 이 작고 작은 얄궂은 것들'이라면서도 사랑듬뿍 쏟는 무뚝뚝한
할머니까지.....
할매 니 없으면 몬 산다
니도 할매 없으면 몬 살제?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가서 마주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 고양이를 반려하면서 좋은 사람들도 참 많이 만났다. 따뜻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는데, 그렇지 못한 몇몇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져 그들을 잊고 있었던 거다. <<고양이와 할머니>>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참 많이 치유된다.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 같고, 따뜻한 이웃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만 같고.
책 속 할머니들은 넉넉하고 여유로워서 고양이를 챙기는 분들은 아니었다. 외롭고 쓸쓸한 분도 있었고 병원에 데려가는 비용이
부담스러울 법한 분도 있었으나 망설이지도 마다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고양이는 이웃이고 가족이고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에. 아낌없이 나누고
따뜻하게 보살폈다. '공존'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모자라게 느껴질만큼 할머니들의 품은 넉넉했다.
기쁜 일만 마주했으면 좋겠지만 책 표지를 아름답게 장식한 '찐이'는 결국 할머니와 이별했다. 모르고 있다가 할머니와 이별하는
대목에서 그만 눈물이 터져버렸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걱정했는지 그 맘이 와 닿아 도저히 참아지질 않았다. 우리끼리 서로의 반려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얘들이 우리 보다 먼저 가서 기다린대. 꼭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라고 위로하곤 하는데, 찐이네는 반대의 경우였으므로. 암
말기에 치매를 앓으면서도 그 속에 찐이를 담았던 할머니의 마음. 외롭고 쓸쓸했을 할머니의 인생 속에 찐이가 나타나서 다행이다.
이후 홀로 남겨진 찐이가 걱정됐는데, 좋은 반려인을 만났다고 했다.
세월을 이겨낸 낡은 골목에 온기가 들어차 있다. 할머니들과 고양이들이 있어 햇살 한 줌 없어도 참 따스하다. 이런 동네,
오래오래 지켜지길......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