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의 윤무곡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법정드라마, 법정소설,법정이 등장하는 범죄소설....한 번이든 두 번이든 카타르시스급 반전이 등장하는 재판 소설을 꽤 많이 봐왔다고 생각했는데도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는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만든다. 분명 선량한 쪽을 응원해야하는데도 묘하게 레이지가 이기기를 바라고 있는 마음이라니. 그는 과거 어린 시절, 이웃의 여자아이를 토막내어 신체를 각각 배달했다고 해서 '시체 배달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소년이었다. 일말의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응당 느껴야할 희노애락이 배제된 그에게 '속죄의 의미'를 가르쳐준 이는 가족이 아닌 교도관 이나미로 앞선 시리즈에서 그를 변호한 적이 있다.

악덕 변호사라고 불리면서까지 자신만의 남다른 속죄를 해 온 레이지에게 더 등장할 의뢰인이 있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시리즈 4권에 등장한 건 가족이었다. 단 한 번도 소년을 면회 온 적이 없으며 이름을 바꾼 그처럼 성을 바꾼 채 살아가고 있던 엄마와 여동생의 등장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재혼한 남편을 살해한 의혹을 받고 있는 엄마와 지난 세월의 원망을 가득 담은 채 아무도 변호해주지 않는 엄마의 변호사로 이제껏 미워하며 살았던 오빠를 찾아온 여동생.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혼란스러워했다. 물론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리 감정에 휩쓸리진 않았으나 침착성을 잃고 이나미를 찾아가기도 했다. 가족보다 더 가깝게 느끼고 있는 이나미는 역시 누구보다 레이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자네한테는 이익과 손해를 순식간에 계산하는 능력"이 있다며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해 주었고 그와의 만남으로 힘을 얻은 레이지는 범죄자의 가족으로 살아온 모녀의 과거, 파혼당한 여동생, 재혼한 어머니의 삶을 살펴보다가 두 가지 틈을 발견해냈다. 유리하게 작용할 지 불리하게 작용할 지 알 수 없는 두 개의 사건을.

 

 

어머니와 재혼한 남자는 전부인을 사고로 잃었다.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범인은 조현병 환자라는 이유로 법의 사각지대로 빠졌고 책임을 다해야할 가족은 야반도주했다. 보상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던 다른 피해 가족과 달리 재혼남이 노선을 달리 한 이유가 밝혀진다.

 

또 하나의 사건은 레이지의 친부가 자살한 과거 속에 있었다. 감옥에서 자살한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듣곤 책임을 회피한 부모라고 생각해왔는데 그 모험금이 피해자 가족에게 일부의 보상금으로 지급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되면서 그는 이제 어머니가 진짜 살인범은 아니까? 의심을 싹 틔우기 시작했다. 친구와 재혼남은 둘 다 목을 매단 채 자살했고 정황이 비슷했다. 두 개의 사건에서 그의 어머니는 둘 다 무죄일까? 아니면 그 중 하나의 사건에선 유죄일까?

 

묘한 시점에 듣게 된 어머니를 통해 물려 받았을지도 모를 '살인 유전자'. 항상 가족과도 섞이지 못한 채 이질감을 느껴야 했던 그는 정말 살인을 할 수 밖에 없는 유전자를 타고난 것일까. 이야기가 중후반까지 흘러도 이 물음들이 머릿 속을 파고들면서 책의 흐름을 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을 한 번 손에 들면 웬만해서는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다 읽게 된다. 그리고 의문이 해소된 시점에도 무직한 화두가 남겨진다. 인간에 대한 고찰이.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소설이라 작가의 다음편을 또 기다리게 되는데, 벌써 5권은 변호사 사무실 직원인 '요코'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면 될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