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문장 속에 깨달음이 들어 있다. 교훈이나 가르침이었다면 울림이 이토록 오래 머물지 못했으리라. 분명 '그'의 이야기지만 읽다 보면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생각들. <말의 품격>,<언어의 온도>에 이어 <글의 품격>으로 전달된다.
아들의 눈에 맺힌 어머니는 차분하면서도 지혜로운 여인이었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좋은 문장으로 남아 살아갈 용기가 되고 위안으로 변했다. 참 좋은 어머니에 그 좋은 점을 알아본 아들.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점보다 어쩌면 이 점이 더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이기주 작가가 쓴 <글의 품격>은 단숨에 읽히지 않았다. 그럴 욕심도 내 본 적 없고. 해질 무렵,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뭔가 다른 일을 하기 어중간한 시각에 페이지를 펼치곤 했다. 그렇게 야금야금 읽어 마지막 장까지 도달한 책이다. 비슷한 시각, 작가는 글을 쓴다고 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들으며 검은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내겐 자투리라고 생각되었던 시간이 누군가에겐 창작의 시간이었구나! 싶어 좀 놀랐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 무엇을 하느냐가 이렇게 중요하다. 결국 어떻게 사느냐로 이어지므로.
말의 속도에 따라 타인의 성격을 알 수 있듯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지에 따라 상대의 독서력이나 품격이 쉽게 가늠되기도 한다. 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군더더기를 좀처럼 끊어내지 못하거나 표현이 격해질 땐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마음 상태가 풍랑을 만난 배처럼 어지럽진 않은가, 고쳐쓸 수도 없는 문장들을 난파선의 조각처럼 흩뿌리고 있는 건 아닌지......
좋은 생각, 올바른 문장, 품격 있는 삶으로 인생을 다 채울 순 없다. 작가도 언급한 것처럼 악플이 넘쳐나고, 매일 끔찍한 사건사고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달되고 상식선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버젓이 행하는 인간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나의 권리 또한 침해받지 않게 지켜나가는 일엔 많은 기운이 소비된다. 기운 빠진 어느 날, 차에 좋은 기름을 채우듯 머릿속과 마음에 따뜻한 생각을 지피기 위해 <글의 품격>을 또 펼쳐들겠지. 에세이가 전하는 편안함에 안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