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정리사 - 연꽃 죽음의 비밀
정명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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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죽음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소설 [유품정리사]는 시리즈로 나와도 괜찮을 좋은 소재의 이야기다. 유교문화 속에서 비참했던 여인의 삶이 담겨 있으면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죽은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주인공 '화연'은 양반집 규수다. 그 시절, 지체높은 양반이었다고는하나 아비는 살해당했고 집안은 역모로 기울어 괜찮은 정혼처 하나 찾기 힘든 열 여덟의 그녀에게 꼬장꼬장한 포교 완희는 일자리를 제안했다.

 

죽은 여인들의 시신과 유품을 정리하는 일. 반가의 여인이 아니라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일이건만 화연은 열 건을 처리하면 문서고에서 아버지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에 덥썩 일을 물었다. 맡겨진 첫번째 일은 돈많은 과부 객주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자살했다는 객주는 강원도에 집과 밭을 사 두었고, 목에 남은 액흔도 붉은색이었다. 그래서 성격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한 화연을 통해 억울한 죽음이었음이 밝혀지고 뒤이은 공조참판댁 며느리의 자결 역시 수상쩍은 점들을 발견해낸다.

 

'열녀문'이라는 명예 때문에 가문을 위해 젊은 목숨을 버려야했던 며느리가 있는가 하면 노름쟁이 남편이 딴 사내에게 팔아넘겨도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다른 사내와 몸을 섞어야했던 어미도 있고, 이복 오라비에게 겁탈당한 채 억지로 혼례를 치르게 된 여인은 정조를 잃었다는 명분으로 벌을 받는다. '여자'로 살아야했던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유퓸정리사'는 잔혹한 묘사도 없고 흉악한 연쇄살인마도 등장하지 않지만 그 어떤 범죄소설보다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불합리한 상황속에서 비밀리에 횃불을 든 여인들이 있다. 전체를 바꿀 순 없더라도 개인의 삶이 더이상 짓밟히지 않도록 서로를 돕는 그녀들이 그나마 희망이라면 희망이였을터.

 

화연은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을 몸종 곱분이에게 물려줬다. 그녀와 완희의 몸종을 함께 면천시켜 이어주며 또다시 여인들의 억울함이 죽음 속에 묻히지 않도록 돕는 동지를 얻었다. 보름달이 뜨면 여인들이 모이던 절터를 복원하며 사는 화연에게 곱분이 찾아왔다. 독살당한 시체에 의문을 품고. 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것이다.

 

참 쉽고 재미나게 쓰여졌다. 죽은 여인들의 삶이 가축과 다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게이지를 상승시키기 보단 이성적이며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 역시 작가의 계산인가 싶을 정도로 잘 쓰여진 소설이다. 가슴 속 울분이 쌓이지 않으면서도 불합리함을 꼬집어낼 수 있도록 이끌어낸 작가의 필력에 반해 다른 소설을 찾아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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