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키크니의 주문제작 만화
키크니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댓글 주문형 개그만화'라는 소개를 듣고 첫 장을 펼쳤는데, 세상에 이런 책이!!! 깜짝 놀랐다. 네티즌의 요청 댓글을 받아 한 컷, 한 컷 그렸다는 그의 만화엔 독특한 개그코드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페이지에서는 아재개그 같고, 또 어느 페이지에서는 넌센스 퀴즈 정답 같으면서도 또 어떤 페이지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답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페이지를 계속 넘기면서는 묘하게 중독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달까. 사람들의 고민과 그 사연을 유쾌하게 만화 한 컷으로 풀어내고 있는 그는 10년차 일러스트레이터다. 하지만 9년간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던 과거는 접고 자유롭게 그리기 시작한 1년 차 풋내기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풋내기'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실력을 감추고 있던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떠올려지는데, 키크니 역시 그런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생각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어른의 답도, 아이의 답도 아닌 4차원적인 답들이 오히려 긴장을 풀게 만들고 '픕'하고 한순간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방송인 노홍철, 유병재랑은 또 다른 반짝임의 소유자랄까. 하루 평균 10시간씩 일하면서 번아웃이 왔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sns댓글을 통해 즐거운 그림을 그리고자 맘먹게 되었다는 키크니. 잘 할 수 있던 일을 선택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신체적/정신적으로 소진이 왔던 내 얘기와 닮아 있어서 저자 소개를 읽은 후, 더 진지하게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절대 진지하게 읽어서는 안되는 책이다. 긴장을 풀기 위한 책이고 삶의 여유를 바람처럼 불러 오는 책이므로 가볍게 읽기를 권한다.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키크니에게 사람들이 요청한 글들은 자뭇 진지했다. 모든 답변이 웃긴 것도 아니었다. 때론 생각하게 만들고 또 때론 먹먹하게 만든 답들도 있었다. 소통형 콘텐츠가 만들어낸 힘이 누군가에겐 내일을 열어주는 첫 발이 된다면 의미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분명 주변인에게 할 수 없었던 고민을 얼굴도 모르는 그에게 던진 사람도 있을 것이므로.

 

여러분의 댓글을 만화로 그려드립니다

일단은 해보겠지만 안 되면 안 해 보겠습니다

 

 

라는 표현도 참 좋다. 무조건 다 해주겠다도 아니고 안 되면 안 해 보겠다니....할 수 있을만큼만 최선을 다해서 임한다는 말에서 허세빠진 진심이 느껴져서 더 믿음직스럽다. 가끔 방문하는 식당에서 고급진 분위기와 달리 숟가락 받침대에 아재개그를 적어놓아서 갈때마다 웃음이 터지곤했는데, 주인의 숨겨진 유머감각을 엿본 것처럼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속에서는 웃음과 함께 '인생 그리 진지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토닥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속 닥터 이라부의 현실판 같은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

그가 쏟아지는 주문형 댓글 속에서 답변 그릴 질문들을 어떻게 선별하는지 궁금해진 동시에 나는 과연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댓글신청을 하면 좋을까? 현재 고민되는 사항은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보게 만든다.

예전 같았으면 '나'에 국한되어 있을 질문들이 이젠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나'로 증폭되어 좀 더 재미난 답변이 돌아올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이 너무 진지하다면, 숨막힐 것 같은 오늘 때문에 미칠 것 같다면 잠시 내려놓고 이 책을 펼쳐보기를.....처음에는 "뭐지?" 싶다가도 어느새 다음 장이 궁금해서 정신없이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테니까. 그때 거울을 통해 얼굴표정을 확인한다면, 아마 호기심 가득했던 초꼬맹이 시절의 얼굴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절대 진지모드를 유지할 순 없다. 그래서 좋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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