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미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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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드라마를 골라볼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 편으론 너무나 행복하다. 검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판사가 혹은 변호사가 중심인물이 되어 사건들을 헤쳐나가는 드라마들을 골라볼 수 있었다. 정의구현, 올바른 판결보다는 법의 해석과 따뜻한 판결로 귀결되어지는 내용 덕분에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국민정서에 반한 판결이나 구태의연한 시절에 머무르며 변화하고 있는 현실과 발맞추어 개정되지 못하고 있는 법들을 보면 가슴에 고구마 백개쯤 걸려 있는 듯 하지만 그래도 '변해야한다','고쳐져야한다'는 필요성을 각성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져서 생각이 깊어지는 시점에서 그냥 드라마 스토리에 빠져 무거움을 흩트러 버리고 말지만.

1999년 제 4회 신초미스터리클럽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작가 시즈쿠이 슈스케의 소설 [불티]는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있을만큼 인기 있는 이야기다. 공과사는 분리되어야하고 퇴근 후 개인의 삶이 침해받는 일은 없어야하지만 전 재판관으로 근무했던 가지마 이사오의 경우엔 그런 당연함을 누리지 못했다. 보통 재판 결과에 불복하거나 앙심을 품고 접근하는 것이 이치상 당연해 보이지만 가지마 재판관에겐 조금 엉뚱한 스토커가 붙어버렸다. 모두가 유죄라고 확신했던 판결을 '무죄'로 선고했건만 피고인 다케우치는 가지마의 옆집으로 이사와 그의 가족에게 접근했다. 자신의 편인 사람과 의심하는 사람을 가르고 가족내의 불화를 조장하면서.

제일 먼저 그를 의심한 사람은 며느리인 유키미였다. 그러자 곧 그녀는 가족이라는 이름 속에서 솎아졌다. 남편의 할머니가 급사하고 다케우치의 전 변호사가 살해당했으며, 전 피해자의 유족 중 한 명인 이케모토가 사라지는 사건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유키미 혼자였지만 곧 가지마와 그의 아내 역시 다케우치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는 매우 위험한 신호탄이 되어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수상한 이웃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 소설을 읽고나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친절함 속에 감춰진 것들이 드러나면서 점점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인지 각성하게 되고 배려와 호의가 아닌 필요에 의해서 시작된 관계의 끝은 너무나 끔찍해서 '어서 도망쳐'라고 책 속 인물들을 향해 소리치고 싶어지는 대목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마치 연극을 보듯 펼쳐진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독자가 보낼 수 있는 위험신호는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백야행]을 읽을 때도 그러했고 [인간의 증명]을 읽을 때도 그런 맘이 들었지만 현대사회에서 '어떤 사람으로 사느냐?'만큼 중요한 일은 '어떤 사람을 알고 지내느냐?'인 것 같다. 열 길 물 속보다 한 길 사람 속을 더 알기 어렵다는 말에 딱 맞는 소설 [불티]는 가속을 붙여가며 읽게 되는 재미난 소설이지만 읽고나면 그 어떤 공포소설보다 뒷골이 서늘해진다. 상상하면 할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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