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의 매력 1
브루노 베텔하임 지음, 김옥순.주옥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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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말하면 정신 분석학과 아동 심리학의 관점 -주로 분리불안,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성적 발달, 이드,에고,슈퍼 에고의 통합- 에서 분석한 옛 이야기의 효용에 관한 책이다.  

문학 이론서이니 만큼, 1편에서는 학문적 이론이 주가 되고, 일부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살짝 지루하기도 했지만, 나의 유년기를 반추하며 읽다 보니 그럭저럭 읽을만 했다. 다 커버린 나에게, 옛이야기란 더 이상 매력적이긴 커녕, 그 천편일률성 - 전형적 인물, 비현실적 이야기, 권선징악의 교훈, 해피엔딩의 결말- 으로 오히려 삐딱한 시선의 대상이었는데, 고참이 똥을 싸도 다 작전이라고, 나름 이유가 있었더군. - 만약 작가의 주장과 기계적 분석이 전적으로 옳다면-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옛 이야기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한다. 아이는 무의식 속의 억압된 본능과 욕구를 환상(옛이야기)속에서 죄의식 없이 해소한 후, 가짜 다리(?) 너머의 현실로 돌아오면 모든 일이 잘 되리라는 강한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 된다. 내가 백설공주나 신데렐라를 읽고 그런 느낌을 받았었는지 아무리 되짚어 봐도 답은 오리무중이지만, 뭐 무의식적으로 그런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믿을 수 밖에.    

'환상'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본다. 부모에게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형제들과 경쟁해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아이들의 무시무시한 공포와 압박 못지 않게 어른들도 현실이 무섭다. 가족도 애인도 배우자도 모두 떠나고 언젠가는 결국 혼자 남겨 지리라는 원초적 불안 -사실 나는 이게 너무 무섭다- 달리기에서 발 한 번 삐끗하면 영원히 경쟁자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거라는 어마무시한 공포를, 죄의식 없이 표출할 만한 환상의 공간이 어른들에게도 필요하지 않나. 이야기의 끝에 가면 주인공의 마력은 사라지지만 결국 행복한 현실로 돌아오고, 돌아온 현실에서 임무 수행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그런 환상적인 퐌타지 말이다.  

다 큰 어른들도 왜 그토록 '이야기'에 집착하고 열광하는지, 환상,회복, 도망 그리고 위안이라는 요소를 적절히 버무린 이야기가 왜 인기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자신만의 퐌타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참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나의 퐌타지는 뭐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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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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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조선에 찾아온 맑시즘과 기독교라는 두 손님을 맞이 하면서 벌어지는 동족간 학살. 작가는 그 속에서 죽어간 넋들, 그리고 살아서 꼼보가 된 오늘의 독자들을 소설이란 한 공간 속에 모두 불러 모으고 한 바탕 씻김굿을 치룬다.  

사실 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 한 편의 역사 리포트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관련 역사서를 읽는 것 보다, 이 한 권의 소설을 통해 보다 더 쉽고 생생하게, 해방 후 조선의 기독교, 공산주의, 민간인 학살과 같은 비극의 시대상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나에겐 이 책의 미덕이자 동시에 흠으로 작용했다. 왜냐면 이 작품은 르포가 아니라 소설이니까.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너무 작위적이고 전형적이다. 탈출과 귀환, 용서와 화해라는 틀 속에서 성공적인 씻김굿이라는 결말을 향해 모든 사건과 인물들이 정해진 트랙을 일사분란하게 달려간다. 이 비극의 가장 큰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요한은 요섭이 고향을 방문하기 전 갑자기 죽고, 고향의 방문지마다 넋들은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마지막엔 산자와 죽은자의 회의를 방불케 하는 주술적, 초월적 마무리가 기다린다.  

이런 방식을 택한 작자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나, 이런 뻔한 것(?) 말고 뭔가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 했다면, 혹은 역사의 비극 속에 던져진 무기력한 인간 본성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탐색이 있었다면, 대미를 장식하는 용서와 화합도 좀 더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 획득 그 이상의 울림은 느끼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황석영이라는 이름 값에 못 미치는 작품이랄까.  

종교의 이름을 팔아 자행된 인간의 잔인함과 광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간은 정말 그런 존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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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얼단상 - 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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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책을 읽었다. 장정일의 <공부>에 언급 되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서얼단상>이라는 제목과 '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라는 부제가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다. 전라도 사람은 좋을 땐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 처럼 하다가, 한 번 수 틀리면 태도가 급변 한다느니 경상도 사람은 치고 박고 했더라도 헤어지면 그걸로 끝이지만 전라도 사람은 꼭 뒤돌아서 뒤통수를 친다느니 하는 것이 어릴 적 부터 귀에 못 떼까리 앉도록 들어 왔던 이야기였고, 그 결과 무의식적으로 배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깨끗하게 박살내 줄, 전라도 사람의 통쾌한 반박을 속 시원하게 들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책은 내 예상과 달랐다. 작자 스스로 밝혔듯 작자는 전라도 사람이라는 태생적 한계 -막상 작자는 서울 태생, 아버지 고향이 전라도- 와 그 정체성을 매개로 한, 모든 서얼(약자, 소수, 개인)에 대한 동류의식을 이야기 한다. 비록 잠깐의 언급 뿐, 그 동류의식에 주목할 만한 깊이나 넒이는 없지만, 나 또한 작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사실 우리 중 누구라도 적어도 어느 한 부분쯤은 서얼의 족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사람은 없을테니. 그러나 정작 내 실망의 주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텍스트에서 사람을 읽으려는 노력은 때로 위험하지만 그것을 분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저자의 말대로, 나 역시 그의 텍스트에서 소심하고 예민하고 낭만적인, 조금은 겉멋들린 지식인 한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본인이 인정했듯, 그는 진짜 어정쩡하고 희미했다. 일단 나는 말꼬리 잡기 혹은 뒤에 가서 뒤집기 식의 그의 글 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았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a가 옳다 혹은 a다 라고 앞에서 말해 놓고 뒤에 가서 혹은 긴 주석을 통해, 내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 틀렸다면 사과한다, 그러나 사실은 a가 틀렸다 혹은 a가 아니라 b이다라는 식이다. 예를 들어 동인 문학상 관련 자신의 과거를 밝혀 미리 면죄부를 주고선 혹은 비판의 꼬투리를 제거하고선 - 여기서 나는 소심하고 자기 방어적이고 비겁한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어떤 시인 이야기를 늘어 놓다가 사실은 그 시인의 사정이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아니면 미안하다라고 하다가, 끝에 가선 친구의 입을 통해 결국은 자신의 예상이 맞을 것이다라고 마무리하며, 결국은 그 시인을 깐다. 자신있게 내지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에둘러 까는 식이다.  

또한,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통찰과 사유를 활짝 펼친다기 보다, 주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여 그를 세세하게 반박함으로써 자신의 뭔가를 드러내려고 하는데, 그 뭔가가 뭔지는 확실하지도 않고, 실제로 있는 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좌파 우파 극좌파 극우파 등 자신과 타인의 소속과 색깔에 대한 지루하고 지엽적인 캐내기가 내겐 그저 피곤하기만 했다. 처음에 이런 느낌을 받아서인지 그의 글 전체에서 이런 식의 이절 삼절을 보고는 적잖이 짜증스러웠는데, 뭐 이건 그의 말대로 취향 문제다. 어쩌면 내가 아싸리한 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어정쩡한 내 모습과 닮은 그에게 동질감 보다는 불편함을 느끼는 앞뒤가 맞지 않은 변덕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양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스탈, 이런 사고방식의 글도 가치가 있고, 어쩌면 이 작가의 직업상 글의 성격이 그럴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책엔 김우창 김현 복거일 강준만 진중권 백낙청 김윤식 정과리 정운영 유시민 신경숙 은희경 김정란 같은 대중적인, 비대중적인 많은 사람들의 글과 생각이 언급되고 프랑스 이야기도 제법 나온다. 그(것)들에 대한 나의 무지함과 준비되지 않은 독자로서의 모자람도 책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사실 4부 책 읽기, 책 일기 같은 경우, 어렵고 생소해서 건성으로 훑기만 했다. 쓰고 보니 나도 백프로 까지 못하고 이절 삼절 했다. 암튼 내 취향은 아니다.  

*책 접기 

"사회적으로 한 개인에게 비난이 집중될 때, 그 개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물으면 만인과 개인이 어떤 철학적 기반을 갖는 집단에 속하는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정에 대한 욕망인지도모른다. 그거이 권력에 대한 의지와 분리돼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가장 세련된 형태의 권력의지일 뿐이다. 그리고 그 욕망이나 의지의 최소 형태 또는 가장 소극적인 형태는 적어도 주류에 속하고 싶다는 욕망, 주류에 속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그 욕망이나 의지의 배면에는 소외나 배제에 대한 소박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모든 개인에게는 그 자신만의 진실이 있다. 60억의 개인에게는 60억 개의 진실이 있을 수 있다. 그 진실들은 흔히 겹치지만, 적어도 그 무게중심은 흔히 다르고, 때로는 그것들이 상반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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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짐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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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를 주리를 틀어가며 읽었다. 2부 조금 읽다가 포기할까 했는데 만약 끝까지 안 읽었더라면 이 책은 영원히 나에게 그냥 별 두개짜리 지루한 소설로 남을 뻔 했다. 반전이다. 그리고 그 반전은 책을 다 읽었을 때 일종의 섬짓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조금 오바하자면 이런 것이다. 그 실체를 알 수 없었던 짐. 알고보니 바로 내 모습이었다.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나도 잘 몰랐던 나의 내밀한 본성이 파악되고 그래서 신기하고 쪽팔리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가. 그의 나약함과 유치한 허영심, 딴엔 진지함, 남들과 다른 자신에 대한 우쭐함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그의 선택이 이해 되면서, 한 젊은이의 로맨틱한 똥폼잡기를 마냥 까기도, 그렇다고 대단하다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감정. 다만 짐의 진정성 만큼은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 사실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그의 마지막 선택이, 말로의 말대로, 허깨비 같은 이상적 행위와 혼례를 올리기 위해 살아 있는 여인을 버리고 떠난 도도한 이기주의로 비난 받아야 할지, 자신에게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에 대한 죄의식과 책임으로 칭송 받아야 할지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언제까지나 독자에게 해명되지 않은 미스테리로 남게 될 우리들 중 한 명, 알 수 없어 매력적인 캐릭터, 짐을 창조해 낸 -그것도 백년전에- 인간 본성 심층부 탐사 전문가인 조셉 콘라드에게 홀딱 빠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말이다.     

 

*책 접기 

"아무런 환상도 가지지 않고, 그래서 안전하게 살고, 그래서 이득도 보고, 그래서 멍청하게 지내는 것은 존경받을 만한 일이지. 그러나 자네들도 한때는 삶의 강렬함이나 자질구레한 일들의 충격속에서 자아내어진 매혹적인 빛 같은 것을 체험했을 거야. 그 빛은 싸늘한 돌을 때려서 만든 섬광처럼 경이롭지만 딱하게도 너무 단명하는 법이야." 

"진리가 이길것이라는 말이 있잖은가? 하지만 진리도 기회를 얻어야 이기는 법이라고.법칙이 있음도 의심할 수 없지. 마찬가지로 주사위를 던질 때는 어떤 법칙이 우리의 운명을 규정하는 법이야. 고르고 세심한 균형을 유지해 주는 것은 인간이 하인처럼 부리는 정의가 아니고 우연이나 운명이나 행운같은 것들로서 모두 참을성 많은 시간과 연대 관계에 있지." 

"잔인하고 끔찍한 파국에 처해 보아야만 비로소 우리에게서 진실을 짜낼 수 있는 법이니까." 

"허영심은 늘 우리의 기억을 상대로 음침한 속임수를 쓰는 법이며, 모든 열정의 진실은 그것을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게 할 약간의 거짓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천둥을 머금은 구름처럼 사람들의 머리 위에 걸려있던 인간 운명의 돌발적인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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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6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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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와의 두번째 만남. 이번엔 짐이란 청년을 소개시켜 준다. 일단 선원이란 직업, 그리고 배에서의 생활이 가깝게 와 닿는다. 그러나 흥미를 끄는 것도 잠시. 서술은 지나치게 자세함에도 불구하고 추상적이며, 매끄럽지 않은 번역 또한 지루함을 보탠다. 무엇보다 그 지리한 지면의 할애에도 불구하고 쉽게 이해하기 힘든 짐이란 캐릭터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지나치게 섬세한 인간이라는 말로의 친절한 설명을 읽고도 마저 못 눈 똥 처럼 찝찝하니 말이다. 말로의 말대로, '어떻게' 보다는 사건의 본질인 "왜?"가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탈출은 무서워서 그랬다 치자. 이해할 수 있다. 나라도 그랬다. 그러나 솔직하게 시인하지 못하고 어설픈 변명 -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동료의 외침에 그냥 순간적으로 뛰어내렸다- 을 늘어놓는 찌질함에서 기어이 재판을 받겠다는 대범함으로의 급전환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어설픈 허영심인가? 아니면 진정한 용기인가? 그것이 진정한 용기라면, 짐은 나약함과 용기를 동시에 지닌 인간 존재의 표상인가? 아무 개연성 없어 보이는 브라이얼리의 자살은 또 왜? 아직까지는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지루하지만 꾹 참고 2부로 넘어간다.  

*책 접기 

"지극한 행복은 이 지상의 어디에서든 -뭐라고 해야 할까- 황금 잔에 담아 마실 수 있지만 그 맛은 마시는 사람에 달려 있어서 각자는 원하는 만큼 그 속에 도취할 수 있는 법이지." 

"그에게는 섬세한 감성, 섬세한 감정 및 섬세한 동경이 있었는데, 일종의 승화되고 이상화된 이기성이기도 했지. 이렇게 말해서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너무 섬세하고 섬세해서 아주 불행했던 거야. 조금만 더 거친 성격이었다면 그런 마음고생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한숨 짓거나 불평하거나 아니면 너털웃음을 웃으며 자신과 화해 했을 테니까. 좀 더 거친 성격이었다면 아무 상처를 받을 수 없을 만큼 무지했겠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내게는 전혀 흥미가 없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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