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얼단상 - 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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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책을 읽었다. 장정일의 <공부>에 언급 되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서얼단상>이라는 제목과 '한 전라도 사람의 세상 읽기'라는 부제가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다. 전라도 사람은 좋을 땐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 처럼 하다가, 한 번 수 틀리면 태도가 급변 한다느니 경상도 사람은 치고 박고 했더라도 헤어지면 그걸로 끝이지만 전라도 사람은 꼭 뒤돌아서 뒤통수를 친다느니 하는 것이 어릴 적 부터 귀에 못 떼까리 앉도록 들어 왔던 이야기였고, 그 결과 무의식적으로 배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깨끗하게 박살내 줄, 전라도 사람의 통쾌한 반박을 속 시원하게 들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책은 내 예상과 달랐다. 작자 스스로 밝혔듯 작자는 전라도 사람이라는 태생적 한계 -막상 작자는 서울 태생, 아버지 고향이 전라도- 와 그 정체성을 매개로 한, 모든 서얼(약자, 소수, 개인)에 대한 동류의식을 이야기 한다. 비록 잠깐의 언급 뿐, 그 동류의식에 주목할 만한 깊이나 넒이는 없지만, 나 또한 작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사실 우리 중 누구라도 적어도 어느 한 부분쯤은 서얼의 족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사람은 없을테니. 그러나 정작 내 실망의 주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텍스트에서 사람을 읽으려는 노력은 때로 위험하지만 그것을 분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저자의 말대로, 나 역시 그의 텍스트에서 소심하고 예민하고 낭만적인, 조금은 겉멋들린 지식인 한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본인이 인정했듯, 그는 진짜 어정쩡하고 희미했다. 일단 나는 말꼬리 잡기 혹은 뒤에 가서 뒤집기 식의 그의 글 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았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a가 옳다 혹은 a다 라고 앞에서 말해 놓고 뒤에 가서 혹은 긴 주석을 통해, 내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 틀렸다면 사과한다, 그러나 사실은 a가 틀렸다 혹은 a가 아니라 b이다라는 식이다. 예를 들어 동인 문학상 관련 자신의 과거를 밝혀 미리 면죄부를 주고선 혹은 비판의 꼬투리를 제거하고선 - 여기서 나는 소심하고 자기 방어적이고 비겁한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어떤 시인 이야기를 늘어 놓다가 사실은 그 시인의 사정이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아니면 미안하다라고 하다가, 끝에 가선 친구의 입을 통해 결국은 자신의 예상이 맞을 것이다라고 마무리하며, 결국은 그 시인을 깐다. 자신있게 내지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에둘러 까는 식이다.  

또한,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통찰과 사유를 활짝 펼친다기 보다, 주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여 그를 세세하게 반박함으로써 자신의 뭔가를 드러내려고 하는데, 그 뭔가가 뭔지는 확실하지도 않고, 실제로 있는 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좌파 우파 극좌파 극우파 등 자신과 타인의 소속과 색깔에 대한 지루하고 지엽적인 캐내기가 내겐 그저 피곤하기만 했다. 처음에 이런 느낌을 받아서인지 그의 글 전체에서 이런 식의 이절 삼절을 보고는 적잖이 짜증스러웠는데, 뭐 이건 그의 말대로 취향 문제다. 어쩌면 내가 아싸리한 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어정쩡한 내 모습과 닮은 그에게 동질감 보다는 불편함을 느끼는 앞뒤가 맞지 않은 변덕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양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스탈, 이런 사고방식의 글도 가치가 있고, 어쩌면 이 작가의 직업상 글의 성격이 그럴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책엔 김우창 김현 복거일 강준만 진중권 백낙청 김윤식 정과리 정운영 유시민 신경숙 은희경 김정란 같은 대중적인, 비대중적인 많은 사람들의 글과 생각이 언급되고 프랑스 이야기도 제법 나온다. 그(것)들에 대한 나의 무지함과 준비되지 않은 독자로서의 모자람도 책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사실 4부 책 읽기, 책 일기 같은 경우, 어렵고 생소해서 건성으로 훑기만 했다. 쓰고 보니 나도 백프로 까지 못하고 이절 삼절 했다. 암튼 내 취향은 아니다.  

*책 접기 

"사회적으로 한 개인에게 비난이 집중될 때, 그 개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물으면 만인과 개인이 어떤 철학적 기반을 갖는 집단에 속하는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정에 대한 욕망인지도모른다. 그거이 권력에 대한 의지와 분리돼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가장 세련된 형태의 권력의지일 뿐이다. 그리고 그 욕망이나 의지의 최소 형태 또는 가장 소극적인 형태는 적어도 주류에 속하고 싶다는 욕망, 주류에 속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그 욕망이나 의지의 배면에는 소외나 배제에 대한 소박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모든 개인에게는 그 자신만의 진실이 있다. 60억의 개인에게는 60억 개의 진실이 있을 수 있다. 그 진실들은 흔히 겹치지만, 적어도 그 무게중심은 흔히 다르고, 때로는 그것들이 상반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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