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단어 인문학 산책 - EBS 이택광의 어휘로 본 영미문화
이택광 지음 / 난장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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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따끈 따끈한 신간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구지 서둘러 사 읽을 필요는 없었단 생각. 왠지 있어 보이는 표지에, EBS란 타이틀에 의지한 막연한 기대치가 아무래도 좀 높았던 듯.  

꼬꼬영 + 이규태식 가벼운 칼럼 정도 되는 느낌이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absurd편의 <이방인>인데, 부조리라는 우리말 -한자라고 해야하나?- 자체도 어렵고, <이방인>을 두 번이나 읽어도 도대체 뫼르소란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아무 이유 없어~'라는 유행어가 번쩍 떠오르면서, 우리 인생 자체가 원래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는 것이고, 어쩌면 뫼르소 자체가 그런 부조리한 - 기존 시각에서 봤을때 부조리한 거겠지만 - 인간(인생) 자체를 상징하는 건 아닌지 하는,  바보 도 터지는 생각 비슷한 것을 했다. 아마 '부조리'에 대한 내 이해 회로의 어떤 핵심 장치를 이 책이 툭 건드려 준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저자의 마음은 이해 하겠는데,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는 버거운 듯. '인문학 산책'이라는 제목을 달기엔 뭔가 허접하고, 그렇다고 확실한 영단어 책도 아니고. 기차 타고 여행 갈 때, 화장실에서 볼 일 볼 때 가볍게 읽으면 딱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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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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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번엔 연애소설이라. 박민규가 쓰는 연애 소설은 어떻게 다를까 하지만 뭐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느낌으로 실로 간만에 연애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연애 소설 읽는게 왜 이리 힘든지. 가능하면 내리 쭉 달아 읽는 평소 습관과 달리, 읽는 간간이 의도적인 휴식(?)을 취했다. 인터넷도 하고, 먹다 남은 닭도 먹고, 오지 않는 쪽잠을 청하기도 하는 식으로. 그렇게 흐름을 끊어가면, 좀 덜 감정적이 될까 싶어서.  

뭐꼬 이거, 껍데기만 연애소설이지, 추적 60분, ' 대한민국의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고발!!!' 뭐 이런 거 아이가, 겨우 19살 짜리들의 사랑이 뭐 이리 무겁고 칙칙하노, 온 천지에 감정 과잉이네, 소설 쓰고 싶은 남자와 친구, 연인인 여자, 그 남자의 죽음과 남겨진 자들의 결합, 맥주, 오므라이스, 팝송과 클래식, 생일, 와 자꾸 무라카미가 생각나노, 어쨌든 박민규 글빨 하나는 쥑이네 등등등.. 역시나 의도적인 꼬투리를 잡아가며 방어적으로 읽었다. 그러면 좀 덜 감정적이 될까 싶어서.  

소설이 현실에 돋보기를 너무 가까이 들이대면 고통스럽다. 비현실적이네 개연성 없네 하며 비판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거리는 유지해 주기 바라는 이율배반은 뭐란 말인가. 더구나 그 현실이라는 것이 남이 아닌 나의 현실일때, 더구나 그 현실이 내겐 상처일때, 그 고통은 배가 된다. 땀구멍까지 생생하게 잡아내는 고화질 테레비가 시청자에겐 미덕이지만, 늙은 여배우에겐 잔인함이 되듯이.  

쉽게 말하자. 나도 못생기고 뚱뚱해서 마음 놓고 사랑하지 못했던 여자였다.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좆밥 중 한 명이었다. 수술도 하고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좆밥의 시절은 잊어버리고 잘 살고 있었는데, 이 책이 난데없이 다 붙은 상처 따까리를 다시 떼냈다. 그래서 냉정을 잃었고 울었다.         

<하하하>에서 이순신이 뭐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슬프고 어두운 걸 조심해. 그게 가장 나쁜거야" 모든 문장에 밑줄을 치고, 모든 페이지를 접고 싶었던 이 책. 아파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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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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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생각했다. 박민규, 뭔가 무지하게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답답한 세상과 답답한 인류와 답답한 자신에 대해서 말이다. 탁구로 치자면 드라이브, 스매시, 푸쉬, 쇼트 등 다양하고 현란한 기술로 정신없이 치고 때려 독자의 얼을 빼놓는 느낌이랄까. 국가대표급이다. 어떻게 리시브해야 할까. 흠...  

사람들이 아니 내가 왜 박민규에 반했는지 이유를 생각해 봤다. 일단 표현 발상 모두 신선하고 재밌다. 그리고 이제는 잊혀진 삼미야구라든지, 신화사 탁구공이라든지, 유리겔라라든지 뭔가, 박민규 세대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대적 정서를 환기시켜, 공감대를 증폭시키고 그 속에서 소속감 그리고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주인공들은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거나 나보다 모자란 사람들이라 거부감도 없다. 그들을 통해 내가 세상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도무지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를 복잡 다단 미묘한 감정들 - 억울함 + 무력감 + 회의 + 반항 + 자책감 + 기대 + 포기 + etc, etc...- 을, 한 두 문장  길어야 한 단락 정도로 정확하게 집어낸다. 거기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 아마 그것이 가장 큰 이유 아닐까?  

은하영웅 전설과 카스테라에서 이미 맛 보았던 그의 퐌타지가 핑퐁에서는 똑 떨어지는 느낌으로 세련되게 잘 쓰였다. 내가 이미 어느 정도는 그의 스타일에 길이 들어서인지 몰라도, 탁구계라든지, 세끄라탱이라든지, 탁구치는 쥐와 새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주제를 효과적으로 잘 표현했다. 어떤 스매시를 해도 마치 기계처럼 리씨브를 하고 빠르지도 않은 공을 같은 지점에 언제나 어김없이 기계적으로 떨어뜨려, 끝없는 랠리를 통해 상대를 지쳐 나자빠지게 하는, 스키너 상자의 새와 쥐를 보면서 순간 소름 돋는 느낌이랄까? 그런 걸 잠시 느꼈다.   

어떻게 탁구 하나로 세상과 인간과 소통에 대한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끄집어 낼 수 있을까? 작가가 위대해 보인다. 삼미가 내게, 한바탕 울고 난 후 다시 뭔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따뜻한 위로와 힘을 주었다면, 핑퐁은 다소 어둡고 무기력한 갑갑함을 준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의지도 의견이랄 것도 없는 조건 반사의 삶을 살아가고, 이유도 모르는 우연 속에서 치르게 된 탁구 시합도 상대의 과로사로 인해 게임 오바된다. 그들의 무기력함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 삼미와는 다른 그들의 마지막 선택이 왠지 더 좋았다는.  

마지막으로 몇 가지 아쉬운 점. 이 책은 장편이라기 보다는 여러 편의 단편이 그냥 묶여 있는 느낌이다. 실제로 존 메이슨의 소설이 세 편이나 등장하고, 치수와 마리, 모아이와 할아버지, 헬리를 기다리는 사람들, 아내를 빌려주는 에스키모, 세끄라탱과 학생회장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며, 그 하나 하나가 다 재밌고, 각각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랄까. 샛길로 살짝 살짝 빠져도 그 나름의 맛이 있지만, 훌륭한 샛길이 너무 많다 보니, 최종 목적지가 주는 재미가 반감된다. 아무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나 보다. 또 한가지, 삼미에서 그랬듯, 작가는 너무 자주, 직접적으로 말한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쓰다 달다 해도, 무엇보다, 실망하지 않고 계속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가를 만났다는 게 좋다. 그가 한국 작가라는게 더 좋고.             

*책 접기 

"끝끝내 버튼을 누르지 않았던 까닭은-치수 때문도, 혹시 남아 있을 내 삶의 희망 때문도 아니었다. 눈물을 닦으며 다시 수업에 열중할 마흔한명의 <다수인척>때문이었다. 스스로는 단 한번도 나를 괴롭힌 적이 없다고 믿고 있는 그러니까, 인류의, 대표의, 과반수. 조용하고 착한, 인류의 과반수. 실은 더 잘해주고 싶었을, 인류의 대다수"   

"너도, 그리고 나도 실은 그래서 인류의 모든 걸 지녔다고 말할 수 있지. 디디티를 살포하던 인간이 그 결과를 알았을까? 에스키모는, 자신이 지닌 결과의 원인을 알 수 있을까? 즉 인간이란 누구나 인류의 원인이자 결과란 얘기지. 그리고 서로를 모르는 거야. 말이 돼?" 

"인간의 해악은 9볼트 정도의 전류와 같은거야. 그것이 모여 누군가를 죽이기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거지. 그래서 다들 다수인 척 하는거야. 이탈하려 하지 않고, 평형으로, 병렬로 늘어서는 거지. 그건 길게, 오래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야. 전쟁이나 학살은 그 에너지가 직렬로 이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만 볼트의 파괴자가 남아 있을까? 학살을 자행한 것은 수천 볼트의 괴물들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전쟁이 끝난 후에 남는 건 모두 미미한 인간들이야. 독재자도 전범도 모두가 실은 9볼트 정도의 인간들이란 거지. 요는 인간에게 그 배치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이기가 있다는 거야. 인간은 그래서 위험해. 고작 마흔 한 명이 직렬해도 우리 정도는 감전사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생존해야 해. 우리가 죽는다 해서 우릴 죽인 수천 볼트의 괴물은 발견되지 않아. 직렬의 전류를 피해가며, 모두가 미미하고 모두가 위험한 이 세계에서 그래서 생존해야 해. 자신의 9볼트가 직렬로 이용되지 않게 경계하며, 건강하게 탁구를 치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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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밀란 쿤데라 전집 15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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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반가운 마음에 일단 사고 읽었다. 당연히 소설인 줄 알았는데 웬걸 에세이다. 형식이야 어떻든 간에,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깊고 우아하다. 이 책은 그의 소설론인 동시에, 한 소설가가 소설이라는 커튼을 통해 바라 본 인간 개론이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작가가 곰브로비치를 책 속에 인용했듯, 이 책은 밀란 쿤데라 스스로의 '소설 역사의 개인적 판본'이기도 한데,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중부 유럽인으로서의 특수한 자기 정체성- 사실 우리에겐 서유럽 아니면 동유럽이지 중부 유럽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하지 않는가- 의 시각과 함께, 많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플로베르, 카프카, 스탕달, 보르헤스, 윌리엄 포크너, 세르반테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등등- 마치 책 속에 밀란 쿤데라의 작은 서평집이 한 권 끼워져 있는 느낌 이랄까. 작품 속에 인용된 작품들을 모조리 다 읽은 후 읽었더라면 재미가 배가 되었을 듯 해 아쉬운 반면 그 작품들을 다 읽어 보고 싶은 강한 동기부여와 함께 곰브로비치, 브로흐, 무질등 생소한 작가 들을 새로 알게된 것이 예상밖의 보람이었다. 

예술가들에 대한 국가의 독점적 소유라든지, 주류 언어를 모국어로 갖고 태어나지 못한 작가들의 태생적 한계와 자국인 체코어를 버리고 선진 문화인 독일어를 선택한 작가에 대한 시선, 소설가 개인 철학의 소설 속 개입과 소설 속 역사에 대한 관점등은 평소에 관심 있던 부분이라, 거장의 사유를 공유할 수 있어 특히 좋았다. 평범한 독자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배우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앞으로 소설을 읽고 평가하는 나만의 잣대를 세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바로 이점이 나에겐 이 책의 제일 큰 효용이고 그 점에선, 에세이라기 보단 일종의 실용 서적에 가깝다.      

그리고, 쉽게 표나진 않지만, 글 전체에서 그의 소설에 대한 깊은 열정과 애정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독자들의 밀란 쿤데라를 향한 뜨거운 신뢰를 계속 이어지게 하는 근본적인 힘 아니겠나.     

*책 접기 

"소설가는 역사가의 하인이 아니다. 소설가를 매혹시키는 역사란, 인간 실존의 주위를 돌며 빛을 비추는 탐조등, 역사가 움직이지 않는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실현되지 않고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을 뜻밖의 가능성들에 빛을 던지는 탐조등으로서의 역사다."  

"오래전부터 나는 젊은 시절은 서정적 시기라고 생각해 왔다. 다시 말해서 한 개인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 자신한테 집중하고 있어서 주변 세계를 보지도, 이해하지도, 명료하게 판단하지도 못하는 시기라고 말이다. 이러한 가설을 근거로 보자면, 미성숙에서 성숙으로의 이행은 서정적 태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첫 만남을 위해 서둘러 가기 전에 단장을 하는 여자와 같이, 세상은, 우리가 막 태어나는 순간 우리에게 달려온 그 세상은 단장을 마친 상태, 가면을 쓴 상태, 선해석이 가해진 상태다." 

"독자는 독서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고유한 독자가 된다. 작가의 작품은 일종의 광학기구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 기구를 독자에게 줌으로써 이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기 자신 안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독자가 책이 말하는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인정하는 일은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대신에 한 현실이 느닷없이 모호한 상태로 드러나고 사물이 자기 본연의 명백한 의미를 잃으며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이 그 자신이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웃는다. 자 이게 유머다." 

"사회 현상의 실존적 영향력은 그것이 팽창할 때가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미약한 상태인 초창기에 가장 날카롭게 인지될 수 있다. 니체는 16세기에 교회의 타락이 가장 덜한 곳은 독일이었고 그렇게 때문에 바로 그곳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음을 지적한다. 오직 타락의 초기에만 타락을 참을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출생에서 죽음 사이를 잇는 선 위에 관측소를 세운다면 각각의 관측소에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멈춰 있는 사람의 태도도 변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람의 나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정말이지 이것은 분명하다. 아,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오직 이데올로기적 거짓 증거들만 눈에 보인다. 실존적 증거들은 명백한 것일 수록 덜 드러나 보인다. 삶의 나이는 커튼 뒤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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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의 매력 2
브루노 베텔하임 지음, 김옥순.주옥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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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이 옛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기본개념 잡기 과정이었다면 2편은 실전 문제 풀이 격이다. 1편 처럼 개념 설명을 위해 이야기들을 조각 조각 인용하지 않고, 헨젤과 그레텔, 빨간모자, 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재크와 콩나무등을 통째로 해부한다. -뭐든 통째로 먹는 게 제 맛이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엿장수 맘이겠지만, 엿장수 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작자는 단순하고 엽기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풍부한 상징과 함축적 의미의 살을 붙여내고, 이런 해석은 '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 를 자연스레 내뱉게 한다. 뿌리 이야기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들의 이야기, 아니 그 역순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가지 이야기에서 캐어 올린 다양한 뿌리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드는 재미가 쏠쏠했다. 단지 서양 사람이 쓴 글이라 - 작자는 오스트리아 출신인데, 오스트리아는 음악 뿐 아니라 정신분석학의 본물이기도 한 모양이다- 서양 이야기들만 언급되어 아쉬웠다. 우리 전래동화에 대한 유사한 책도 찾아서 읽어 보고 싶다.  

이젠 신데렐라가 다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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