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밀란 쿤데라 전집 15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밀란 쿤데라. 반가운 마음에 일단 사고 읽었다. 당연히 소설인 줄 알았는데 웬걸 에세이다. 형식이야 어떻든 간에,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깊고 우아하다. 이 책은 그의 소설론인 동시에, 한 소설가가 소설이라는 커튼을 통해 바라 본 인간 개론이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작가가 곰브로비치를 책 속에 인용했듯, 이 책은 밀란 쿤데라 스스로의 '소설 역사의 개인적 판본'이기도 한데,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중부 유럽인으로서의 특수한 자기 정체성- 사실 우리에겐 서유럽 아니면 동유럽이지 중부 유럽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하지 않는가- 의 시각과 함께, 많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플로베르, 카프카, 스탕달, 보르헤스, 윌리엄 포크너, 세르반테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등등- 마치 책 속에 밀란 쿤데라의 작은 서평집이 한 권 끼워져 있는 느낌 이랄까. 작품 속에 인용된 작품들을 모조리 다 읽은 후 읽었더라면 재미가 배가 되었을 듯 해 아쉬운 반면 그 작품들을 다 읽어 보고 싶은 강한 동기부여와 함께 곰브로비치, 브로흐, 무질등 생소한 작가 들을 새로 알게된 것이 예상밖의 보람이었다. 

예술가들에 대한 국가의 독점적 소유라든지, 주류 언어를 모국어로 갖고 태어나지 못한 작가들의 태생적 한계와 자국인 체코어를 버리고 선진 문화인 독일어를 선택한 작가에 대한 시선, 소설가 개인 철학의 소설 속 개입과 소설 속 역사에 대한 관점등은 평소에 관심 있던 부분이라, 거장의 사유를 공유할 수 있어 특히 좋았다. 평범한 독자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배우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앞으로 소설을 읽고 평가하는 나만의 잣대를 세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바로 이점이 나에겐 이 책의 제일 큰 효용이고 그 점에선, 에세이라기 보단 일종의 실용 서적에 가깝다.      

그리고, 쉽게 표나진 않지만, 글 전체에서 그의 소설에 대한 깊은 열정과 애정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독자들의 밀란 쿤데라를 향한 뜨거운 신뢰를 계속 이어지게 하는 근본적인 힘 아니겠나.     

*책 접기 

"소설가는 역사가의 하인이 아니다. 소설가를 매혹시키는 역사란, 인간 실존의 주위를 돌며 빛을 비추는 탐조등, 역사가 움직이지 않는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실현되지 않고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을 뜻밖의 가능성들에 빛을 던지는 탐조등으로서의 역사다."  

"오래전부터 나는 젊은 시절은 서정적 시기라고 생각해 왔다. 다시 말해서 한 개인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 자신한테 집중하고 있어서 주변 세계를 보지도, 이해하지도, 명료하게 판단하지도 못하는 시기라고 말이다. 이러한 가설을 근거로 보자면, 미성숙에서 성숙으로의 이행은 서정적 태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첫 만남을 위해 서둘러 가기 전에 단장을 하는 여자와 같이, 세상은, 우리가 막 태어나는 순간 우리에게 달려온 그 세상은 단장을 마친 상태, 가면을 쓴 상태, 선해석이 가해진 상태다." 

"독자는 독서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고유한 독자가 된다. 작가의 작품은 일종의 광학기구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 기구를 독자에게 줌으로써 이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기 자신 안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독자가 책이 말하는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인정하는 일은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대신에 한 현실이 느닷없이 모호한 상태로 드러나고 사물이 자기 본연의 명백한 의미를 잃으며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이 그 자신이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웃는다. 자 이게 유머다." 

"사회 현상의 실존적 영향력은 그것이 팽창할 때가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미약한 상태인 초창기에 가장 날카롭게 인지될 수 있다. 니체는 16세기에 교회의 타락이 가장 덜한 곳은 독일이었고 그렇게 때문에 바로 그곳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음을 지적한다. 오직 타락의 초기에만 타락을 참을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출생에서 죽음 사이를 잇는 선 위에 관측소를 세운다면 각각의 관측소에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멈춰 있는 사람의 태도도 변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람의 나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정말이지 이것은 분명하다. 아,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오직 이데올로기적 거짓 증거들만 눈에 보인다. 실존적 증거들은 명백한 것일 수록 덜 드러나 보인다. 삶의 나이는 커튼 뒤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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