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은 언제 시작될까?
에이브러햄 J. 트워스키 지음, 최한림 옮김, 찰스 M.슐츠 그림 / 미래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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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넘 덥다. 집중도도 떨어지고, 뭔가 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다 골랐다. 피너츠 만화 한 꼭지에, 정신과 의사인 작가의 짧은 코멘트 하나씩. 만화로 해석해 보는 심리 분석 혹은 상담 비스무리한 것 쯤 되겠다. - 분석이라 하기엔 좀 무디고, 상담이라 하기엔 구체적 해결책이 없다. 전문가와 상담하시오가 결론이니까 - 덤으로 영어 공부도 할 수 있다.  

어떤 만화는 주제와 완전 일치, 어떤 만화는 따로 노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만화 캐릭터를 통해 심리를 이야기 하는 형식 자체는 신선하다.  단지, 만화를 소제목 밑에 바로 배치해서, 글을 읽기 전에 독자 스스로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시각적, 시간적 여유를 주었음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책을 세 번 읽었는데, 처음은 편집된 순서대로, 두번째는 만화만, 세번째는 글만 읽었다. 그런데 글, 그림 모두 따로 따로 봤을 때 훨씬 더 전달력이 좋았다. 어쨌든, 수능 파이날 핵심 요약 정리편처럼, 인생의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한 심리 처세술(?)의 핵심만 쏙쏙 뽑아 놓은 느낌이랄까. 심화학습이 없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실용 서적이다.          

내일이 아닌 모레가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건 어떠냐는 대단한 발상전환의 마시, 컨버터블과 호수를 가지는 게 삶의 비결이라는 어둡지만, 진짜 똑똑이 찰리 브라운, 하자 없는 자기 인생에 스스로 메달을 주겠다는 자신감 만빵 루시. 피너츠 만화를 제대로 한 번 읽어 보고 그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찰리와 루시 중간쯤 되는 캐릭터로 살고 싶은데, 자꾸만 찰리 쪽으로 기울어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태어날 때 부터 루시인 사람들이 부럽다. 이런 생각도 안 좋은건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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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이야기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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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수선한지라 일부러 책을 들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누구나 마음 속에 미운 년놈 한 명 쯤 있지 않겠나. 약발이 떨어지고 증오의 감정이 또 스멀스멀 피어 오르길래 스님 글에서 위로나 좀 받고 싶었다. 경전에서 뽑은 글 한 토막에 스님의 짧은 덧글이 한 세트다.  

일단 구구절절이 다 좋은 말이다. 근데 중생에게 바라는 부처님의 요구 수준이 너무 높다. 살생하지 말라 하셨으니 소고기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모기가 피를 빨아도 피보시 한다치고 대주고 있어야 할 것이며, 몸이 불구가 되면 내 업보 탓이려니 해야 하고, 부모 죽인 원수라도 원한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용서해야 하고, 누가 나를 죽이려 해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 순순히 죽어줘야 한다. 경전 속 인물들은 하나 같이 그런 초절정 자비와 수양으로 아라한이 되고 부처가 되었다. 물론 스님 말씀대로, 이야기 자체의 사실성을 따지기 보다, 그만큼 무수한 겁을 통해 공덕을 쌓아야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즉 한평생 끊임없이 선업을 쌓도록 노력하고, 악업을 짓지 않도록 말조심, 행동 조심, 생각 조심하라는 뜻일게다.  

이 모든 부처님 말씀을 믿고 따르려면, 일단 윤회사상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잘은 모르겠으나, 달랑 지옥,연옥,천국으로 구분하는 저쪽의 상대적으로 단순한 원타임 사후 세계관(?)과 달리, 불가에선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아수라도, 인간도, 천상도의 여섯 세계가 있다 하고, 윤회를 반복하며 개인이 쌓은 업보에 따라 어느 방(?)에 입실할지가 결정되는 모양이다. 정말로 입실 기준(?)이 그런 것이라면, 부처님 말씀을 따라야 하지 않겠나. '세상에 공짜 점심 없다' '자업자득' '인과응보'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나고' 뭐 이런류의 가치관을 현생 뿐 아니라 전생과 후생까지 확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억압하는 자, 착취하는 자, 고통을 주는 자에게, 적어도 현생에서는 아무런 저항이나 비난이나 증오할 여지 조차도 없는 것인가? 다 내가 전생에 지은 업보라고 생각하고 꾸욱 참는 수 밖에? 너무 피동적이고 어리석은 짓 아닌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죽었다 돌아와 속시원히 말해준 자 아무도 없으니.  

불가의 인연설(?)이 사실이라해도, 촘촘한 인연의 그물에 갇혀 버둥거리는 중생들 -정확히 말해 나- 이 불쌍하기만 하다. 그 잔인하고 무서운 인연의 그물을 친 자 누구인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분노와 의심의 구름은 여전히 걷히지 않건만, 내가 만난 현생의 악생왕도 모두 다 나의 업보라고 애써 최면을 걸어본다.  

마음이 편한 것 같기도 하고 심란한 것 같기도 하다.    

*책 접기 

"바라나여 .... 즉 주림과 목마름, 더위와 추위, 생로병사와 독한 짐승의 침해 등 여러 원수가 많지만, 너는 그것을 갚을 수 없다. 그러면서 굳이 악생왕의 원수만은 갚으려고 하는가? 바라나여, 원수를 없애려거든 먼저 네 마음속 번뇌부터 없애거라. 번뇌의 원수야말로 끝없이 몸을 해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원수는 아무리 악독할지라도 한 몸만을 해치지만, 번뇌의 원수는 청정한 법신까지 해친다. ......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원수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바로 네 마음속의 번뇌에 있다. 너는 지금 시시각각으로 너를 침해하고 있는 번뇌의 도적은 물리치려 하지 않고, 왜 악생왕만을 치려고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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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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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 읽지는 않았지만, 나는 요즘 강명관 교수의 책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난다.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았던 신선함(?)을 제공하는 그의 책읽기가 즐겁다. 단지 흥미 차원을 넘어 옛일을 통해 오늘을 생각케 하는 실마리를 툭 툭 던져주는 그의 생각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또한 그의 책이 가지는 힘이다. 거기다 문체 또한 매력적이다. 현대적이면서도 옛스럽고, 간결하면서도 풍부하다. 저자 또한 만만찮은 책벌레임을 짐작케 한다. 암튼 느낀 점 몇 가지.   

1. 이번엔 책의 역사다. 조선시대 책의 인쇄, 유통과 그 소비자(?)들의 유별난 책사랑과 책읽기를 시대순 인물들을 통해 풀어낸다. 일단 내용을 떠나 디자인이 고풍스럽게 멋지다. 빛깔 고운 표지 뿐 아니라 책 하단에 인물에 대한 간략한 이미지와 함께 도움말을 달고 - 금속 활자 만드는 과정, 활자 변천 과정에 대한 삽화는 이해에 매우 도움 되었고, 이덕무의 풀죽은 듯한 뒷모습은 서자란 신분적 한계에 대한 슬픔을 표상하는 듯 하여 찡하다. - 세로 가장자리에도 앞에서 보면 '조선을 만들다' 뒤에서 보면 '책벌레들' 이 나타나도록 세심하게 인쇄했다. 한 마디로 예쁜 책이다. 뭐 디자인은 여기까지 하고... 

2. 지금과 달리 가진 자의 전유물이었던 "책". 지식과 정보는 소수 권력자에 의해 독점 되었다. 지금도 뭐 고급 지식과 정보는 그렇겠지만 말이다. 내가 과연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경화세족은 고사하고 마 양반으로도 태어날 자신 없다. 거기다 지방에서 여자로 태어난다면? 십중팔구, 종년 삼월이나 잘해야 소작농의 아내쯤 될텐데 언감생심 책이라니 꿈이나 꾸겠나. 그래서 일단 감사했다. 지금 태어난 것을. 적어도 원하는 책은 맘대로 볼 수 있지 않나...   

3. 이건 뭐 중국, 정확하게 베이징 빼고는 이야기가 안된다. 하긴 조선 전기엔 책 자체가 온통 주자학에 관한 것이었고, 사상의 본물 자체가 중국이니 말해 무엇하랴. 후기에도 서학이나 천주학뿐 아니라 모든 신학문이 중국을 통해 유입되었으니 여기서 또 한 번 좌절. 이거 뭐 옛날엔 중국, 오늘은 미국 없인 되는 게 없구만. 양놈들이나 떼놈들이나 콧대가 높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지않나? 인정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씁쓸하다. 촌스러운 민족주의의 발로인가? 아무튼, 베이징에 유리창이 아직도 있다 하니 기회되면 꼭 한 번 들러보리라 다짐하며...  

4. 역시 세상은 엘리트들의 것인가? 천재들의 화려한 이력을 읽다보니, 심정적으로는 아니라고, 민중의 힘이란게 있지 않느냐고, 내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라고 무던히 부정하지만 이런 저런 책을 읽을수록 역시나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세상은 작동하고, 나같은 사람들은 그들에 비하면 그저 벌레같은 삶을 살다 죽을 뿐이라는 생각만 자꾸 드니, 지나친 패배주의, 열등의식인가?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5. 한국인에게 긍정적 이미지로 각인된 허균이나 정조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견해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채호에 대한 평가도 고미숙과는 좀 다른 듯해 흥미로웠다. 역시 만가지 세상에 만가지 사람들의 만가지 생각이다.  

6. 자기 방에 있는 책만 다 읽더라도 우리나라 모든 교수들이 세계적 석학이 될꺼라는 자조섞인 농담이 인상깊다. 내 방에 있는 책만 다 읽더라도 적어도 벌레처럼 살다가 죽진 않을 수 있을까? 

7. 무조건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고, 책을 읽지 않는 풍조를 비판한다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과 책벌레들에 대한 이 책. 왠지 그 이유만으로도 정이 담뿍 가는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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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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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상류 사회. 그 진창의 구덩이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출세욕에 불타는 가난한 법대생. 그에게 가문의 운명을 걸고 헌신하는 가족들. 돈만 밝히는 하숙집 주인,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한 이웃들, 그 속에 꼭 있기 마련인 반항자와 배신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광적인 부성애의 고리오, 그리고 그의 싸가지 없는 두 딸년들 - 막판엔 진짜 이 한심한 년들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혼자서 부글부글-  작가는, 그들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 - 주로 광기, 허영,욕망이 두드러지는- 을 섬세하게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게 포착해 낸다.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제 삼자에 대한 비뚤어진 증오로 불만을 표출하는 보케르 부인- 고리오와의 결혼 가능성이 없어지자 근거없이 그를 모략한다- 과 라스티냐크 - 레스토 부인에게 거절당하자, 역시 악의적으로 고리오를 증오한다-의 이상 심리, 출세욕과 양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미워할 수 없는 청년, 라스티냐크, 그리고 보트랭의 입을 빌어 지적한, 관료제나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발자크의 예리한 시선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이해하기 힘든, 광적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고리오의 딸들에 대한 미친 사랑. 딸들에게 무릎 꿇고, 애무하듯 만지고,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이디푸스처럼, 지 눈 지가 찔렀지. 타이틀 롤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억지스러움으로 인해 도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 인물인지 고리오에겐 그닥 공감할 수 없었다는.        

1800년대 파리의 시대상과 인물들을 오늘의 한국으로 그대로 옮겨 온다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작품 속 모든 주/조연들이 -오바하는 고리오 빼고- 군더더기 없는 연기를 펼친, 한 편의 슬프고도 웃긴 드라마였다. 파리와의 대결에 나선 라스티냐크의 뒷이야기는 to be continued.... 쯤 될려나.   

*책접기 

"인간의 감정이란 가장 좁은 곳에서나 가장 넓은 곳에서나 똑같이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법이지. 나폴레옹도 저녁을 두 번 먹지는 않았어. 성 프란체스코 교회 기숙생인 의대생보다도 애인이 더 많지도 않았어. 여보게, 우리의 행복이란 우리 발바닥에서부터 후두부까지 사이에 있는 거야. 일 년에 백만 루이를 쓰건 백 루이를 쓰건, 우리 마음속에서 본질적으로 느껴지는 정도는 같은 거라네."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군대 안에 맹종이 있듯이 관청에도 그런 것이 있게 마련이다. 관료 제도는 양심을 질식시키고 인간성을 없애며 때론 인간을 행정 기구의 나사나 태엽처럼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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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느 (구) 문지 스펙트럼 10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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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어보는 발자크 소설이다. <사라진느> <미지의 걸작> <추방된 사람들> 이렇게 비교적 짧은 세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읽는 간간이 -특히 사라진느- 나는 mbc의 '서프라이즈'란 프로를 떠올렸는데, 아마 작품 속에 녹아있는 그로테스크한 환타지와, 극적인 스토리, 짧은 세 편의 단편이 주는 유사성 때문 아닌가 싶다. 확실히 이 소설엔, 사람들의 호기심을 묘하게 자극하는 아름답고 기괴한 무언가가 있다.  

세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사라진느'에 등장하는 랑티 백작부인처럼 뭔가 미스테리하면서도, 아름답고 세련된 그래서 너무 고차원적이라고나 할까. 한 마디로, 생활 소설이라기 보다 예술 소설에 가깝다. 사물과 인간의 양면성 -무도회와 어두운 숲, 잠비넬라의 남성성과 여성성, 노인과 젊은이등-의 대비되는 이미지와 함께, 신과 예술의 대한 인간 광기를 짧고도 강렬하게 전달하는데, 예술인이 아닌 생활인인 나로서는 아무래도 공감도가 좀 떨어졌다.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아! 예술가들이 느끼는 이런 치열한 열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나로서는 평생 단 한 번도 못 느껴 볼 감정 이겠구나' 하고 궁금해 볼 밖에.  

예술 말고 생활을 다룬 발자크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보고 싶다. 좋을꺼란 생각이 왠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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