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리의 상류 사회. 그 진창의 구덩이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출세욕에 불타는 가난한 법대생. 그에게 가문의 운명을 걸고 헌신하는 가족들. 돈만 밝히는 하숙집 주인,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한 이웃들, 그 속에 꼭 있기 마련인 반항자와 배신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광적인 부성애의 고리오, 그리고 그의 싸가지 없는 두 딸년들 - 막판엔 진짜 이 한심한 년들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혼자서 부글부글-  작가는, 그들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 - 주로 광기, 허영,욕망이 두드러지는- 을 섬세하게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게 포착해 낸다.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제 삼자에 대한 비뚤어진 증오로 불만을 표출하는 보케르 부인- 고리오와의 결혼 가능성이 없어지자 근거없이 그를 모략한다- 과 라스티냐크 - 레스토 부인에게 거절당하자, 역시 악의적으로 고리오를 증오한다-의 이상 심리, 출세욕과 양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미워할 수 없는 청년, 라스티냐크, 그리고 보트랭의 입을 빌어 지적한, 관료제나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발자크의 예리한 시선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이해하기 힘든, 광적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고리오의 딸들에 대한 미친 사랑. 딸들에게 무릎 꿇고, 애무하듯 만지고,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이디푸스처럼, 지 눈 지가 찔렀지. 타이틀 롤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억지스러움으로 인해 도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 인물인지 고리오에겐 그닥 공감할 수 없었다는.        

1800년대 파리의 시대상과 인물들을 오늘의 한국으로 그대로 옮겨 온다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작품 속 모든 주/조연들이 -오바하는 고리오 빼고- 군더더기 없는 연기를 펼친, 한 편의 슬프고도 웃긴 드라마였다. 파리와의 대결에 나선 라스티냐크의 뒷이야기는 to be continued.... 쯤 될려나.   

*책접기 

"인간의 감정이란 가장 좁은 곳에서나 가장 넓은 곳에서나 똑같이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법이지. 나폴레옹도 저녁을 두 번 먹지는 않았어. 성 프란체스코 교회 기숙생인 의대생보다도 애인이 더 많지도 않았어. 여보게, 우리의 행복이란 우리 발바닥에서부터 후두부까지 사이에 있는 거야. 일 년에 백만 루이를 쓰건 백 루이를 쓰건, 우리 마음속에서 본질적으로 느껴지는 정도는 같은 거라네."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군대 안에 맹종이 있듯이 관청에도 그런 것이 있게 마련이다. 관료 제도는 양심을 질식시키고 인간성을 없애며 때론 인간을 행정 기구의 나사나 태엽처럼 만들어 버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