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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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교수의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가, 신윤복의 그림을 매개로 한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책은 김홍도의 작품을 통해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더 나아가 한국 미술 아름다움의 강조로 확장된다.  

나는 미술엔 완전 문외한이고, 좆도 모르다 보니, 중국과 일본 한국 미술(문화)에 순위를 매길 수도 없고 매기지도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김홍도라는 뛰어난 화가의 상징적 케이스와 그 외 소수 작품만 가지고, 일본이나 중국 미술과의 합당한 비교 분석 없이, 한국의 미가 훨씬 더 우수하다는 식의 은근한 일반화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예술 작품에 깃들인 음양오행 철학을 논하고, 태극기의 우수성을 말하면서, 정작 음양오행 사상과 8괘 같은 것들이 중국의 것이라는 것은 왜 지나치는가. 물론 문화 사대주의에 길들여져 서구인의 눈으로만 한국 작품을 바라보는 일반 대중들이 안타깝고, 우리 문화도 이렇게 멋지다는 것을 강조하고픈 작가의 의도는 짐작되나, 일본인의 우리 고미술에 대한 가치판단이 우리와 다르듯이 - 저자 말 대로 그림보다는 별 것 아닌 도자기에 더 열광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 우리도 그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본, 중국, 혹은 수 많은 나라들의 문화 예술이 있지 않겠나. 일본은 일본의 맛이, 한국은 한국의 맛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예를 든, 중국 산수화에만 관심을 기울이던 그 유명 미술 관계자에게 한국 작품은 이러 이러한 것이니 이런 저런 관점에서 봐 달라고 구지 설명하지 않더라도,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누구의 눈에도 아름답게 보이는 예술 작품이 있다면 거기엔 분명 뭔가 그럴만한 힘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책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저자가 말하는 철학이 담긴 유려한 선이라든지 여백의 미 같은 것도 난 솔직히 잘 모르겠고, 백성이 성리학 국가인 조선에서 하늘이었다든지, 조선 왕들이 백성들에게 끼쳤던 덕이 그렇게 컷었는지도 역시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책 표지이기도 한 호랑이 그림은 정말 멋지다. 재미삼아 핸드폰으로 호랑이 얼굴을 찍었는데, 사진일지라도 그 눈에서 나오는 기운이 정말 보는 사람을 완전히 압도해서 섬뜩할 지경이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저자의 예찬 수준은 아닐지라도, 김홍도의 천재성은 정말 대단했나 보다.  

암튼, 책 읽고 남는 건 이거다. 그림 대각선 길이의 1~1.5배 되는 거리에서,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 방향으로, 옛사람의 마음과 눈으로 최대한 천천히 감상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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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쟁탈전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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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할배의 독특한 서술 방식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다 나름 자신했건만 웬걸 이번엔 정말 지루했다. 그의 스타일이자 매력 중 하나인, 이야기의 주 흐름과 별 상관 없는 방대하고 끝없는 수다, 좋게 말해 다양한 철학적 사유들이 이번엔 좀 도가 지나쳐, 호흡이 자꾸 끊기는 탓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강렬한 영상미도 이번 작품에선 그닥. 개인적 흥미와 배경 지식 모두 떨어지는 '리스본 공방전'이라는 소재와, 소설의 탄생 과정을 작중 주인공의 집필 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다소 제한적이고 전문적인 전개 방식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작가의 분신인 듯한 주인공 실바는 교정자라는 다소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는 <리스본 쟁탈전>이라는 작품의 교정 중, 참을 수 없는 강한 유혹을 느껴, 실제 사실과 달리 십자군이 리스본 쟁탈전에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최종 교정본을 넘기고, 이 의도적 조작을 알게 된 출판사 편집자 마리아로부터, 그러한 역사적 가정하에 새로운 <리스본 쟁탈전>을 쓸 것을 제안 받는다. 정확한 서술을 위해 실바가 관련 자료를 뒤지고, 현장 답사를 하고, 자신과 마리아의 분신인 모게이므와 오우로아나와를 둘러싼 사랑과 전쟁 이야기를 지어내는 과정에서, 실제로 허구와 역사 사이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허구를 지어내는 작가라는 직업인이 바라 본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순도 100%의 진실인가? 알려진 사실과 숨겨진 사실 사이에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지는 않았는가? 하는 물음 자체는 가치 있으나, 그 물음을 던지는 방식은 너무 길고 지루하다.       

*책 접기 

"난 그냥 책을 좀 읽었을 뿐이예요. 난 그냥 재미로, 또는 조금씩 지식을 쌓으려고 책을 읽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냥 보는 것과 제대로 보는 것, 제대로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뭔지 깨닫고 있죠....심지어 우리 의식이 어떤 인식수준에서 다른 인식수준으로 변하는 것에 진정한 지식이 달려 있다는 생각도 해요." 

"우리가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네요. 당연하죠, 이건 공성전이예요. 우리들 각자가 서로를 포위하고 포위당해요. 우린 자기 성벽을 지키면서 상대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싶어해요. 사랑이란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거예요. 사랑은 모든 포위공격이 끝나는 걸 의미한다고요....솔직히 난 사람들을 크게 둘로 나누는 건 그렇다고 말하느냐 아니라고 말하느냐 하는 점이라고 확신해요. 당신이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나 역시 부자와 가난한 사람, 약자와 강자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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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왕과 양키 -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마크 트웨인 지음, 조애리 옮김 / 미래사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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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다보니 6세기 영국 아더왕의 시대로 순간 이동해 버린 19세기 미국 코네티컷 출신 행크 모르간의 좌충우돌 모험담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아무래도 중세 이야기다 보니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깨고, 우리의 이 똘똘하고 깨인 주인공은, 위험에 처할 때 마다 중세 사람들의 무지와 미신을 과학 지식과 기술력으로 멋지게 누르고, 오히려 절대적인 권력자(마법사)지위를 획득하면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을 세우려는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행크는 중세의 폐단을 절대 왕권제와 교회 권력의 횡포라 규정하고, 신교와 공화정 수립을 목표로, 교육과 과학 기술의 보급을 통해 사람들을 개화시켜 나가는데, 그 스스로 일반 농민으로 가장해 핍박받는 민중들 속으로 직접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체험한다. 작가는 행크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법의 부조리함, 노예제도의 비인간성, 부패한 교회, 기사들의 우스꽝스러움, 절대왕권의 무의미함을 비꼬아 풍자한다. 특히 신과 같은 존재인 아더왕이 신분을 입증하는 화려한 복장과 그를 아는 사람들의 인정 없이는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며 오히려 행크보다 싼 값에 노예로 팔리는 대목은 압권이다. 이는 중세 권력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19세기 미국에 대한 풍자임을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으며, 또한 오늘날 절대 권력자들과 교회의 역할자들 - 언론,교육 등 - 에게도 적용 가능한 비판 정신이다. 그러나 결국 이런 획기적인 시도들은 행크의 믿음과 달리 실패로 끝나고 행크는 결국 멀린으로 대표되는 비이성적, 봉건적 악습의 마법에 걸려 길고 긴 잠에 빠진 후 19세기에 다시 깨어나지만, 결국 샌디와 안녕 교환수가 기다리는 영원의 세계로 떠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그 속에 내재된 잠재적 악, 혹은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뼛속 깊이 뿌리 박힌 잘못된 신념과 가치관은 결코 변할 수 없는가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질문이다. 농부로 변장한 아더왕은 아무런 죄 없이 단지 사소한 이유 혹은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평생을 감옥살이 하거나 억울하게 죽어가는 노예들의 고통을 직접 보고 가슴 아파 하지만, 이도 잠시뿐, 그는 다시 왕의 본성으로 돌아와 노예제 폐지에 반대한다. 왕과 귀족과 교회에 무거운 세금을 바치고 그들의 종 노릇을 평생 하면서 착취만 당하던 민중들은 오히려 죄 없는 자신의 이웃들을 고발하고 목 매다는 주체가 된다. 오랜 기간에 걸친 교육으로 서서히 변화를 준비했던 행크의 치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교권의 파문이라는 위기가 닥치자, 사람들은 본성으로 쉽게 되돌아가 행크에게 등을 돌리게 되며 이는 행크가 꿈꾸던 유토피아 건설을 불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는 그들 자신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작가는 결국 행크의 실패를 통해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NO"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과 답이 맘에 든다.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 관습은 지금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을 뿐. 아더왕의 순진한 백성들처럼.

*책 접기 

"그들은 가문과 직위를 빼놓고는 어떠한 것에도 가치를 두지 않았다...이삼백 년만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인간들의 국가를 벌레들의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지구상에서 교회가 패권을 잡기 전까지 인간은 고개를 버젓이 들고 다녔고 인간으로서의 자긍심과 독립 정신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인간이 이룩한 일은 무엇이나 그 자신이 직접 이루어낸 일이었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때 교회가 꿍꿍이속을 가지고 전면에 나섰다. 교회는 매우 약았고 음흉했다. 왕들에게는 신적인 권리가 있다고 조작해 열렬히 지지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비호를 받아들였다. 대신 평민에게는 겸손과 상관에 대한 복종, 자기 희생의 미덕, 참을성, 압제하에서도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설교해댔다. 또한 세습적인 지위와 귀족 정치를 고안해 내서 지구상의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복종하고 숭배하도록 가르쳤다. 그 해독은 심지어 내가 태어날 당시까지 일부의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인간의 정신적인 욕구와 본능은 육체적인 욕구나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색깔이나 모양,형태가 자신의 정신적인 세계와 깊이에 어울리는 종교를 선택했을 때만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나는 통일된 교회를 가장 두려워 한다. 교회가 하나의 교파로 통일되면 상상하기 힘든 강력한 권력을 교회나 그 관련자가 갖게 되고, 권력이라는 것이 항시 그러하듯이 서서히 이기적인 집단으로 변질되며 인간의 자유는 막을 내리고 인간의 사고도 반신불수가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다면 역사의 행렬 맨 끝에 있어야 할 이 상류층 소수들은 교묘한 술책을 써서 선두에 서서 깃발을 휘날리며 행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수들은 스스로를 국가로 칭했고 말없는 다수는 너무도 오랫동안 이를 묵인해 주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 스스로도 현재의 상태를 정당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여기게 되었다. 신부들은 그들의 선조 때부터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상태가 신의 의지라고 집중 발설해 댔기 때문에 더 이상 현상태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고 모두가 존경스러울만큼 온순하게 되어 버렸다." 

"인간을 붙들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시대의 관습이었다. 우리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 말을 한다. 어리석은 일이다. 본성과 같은 것은 없다. 우리가 본성이라는 그릇된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실상은 유전과 관습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고도 견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고 관습적으로 내려온 것일 따름이다.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들도 수억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종족이 그렇게 지겹게 그리고 헛되이 아담이나 메뚜기 또는 원숭이로부터 연결시킨 선조들의 축적된 생각의 묶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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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1
인고 발터 지음, 최성욱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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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순으로 샤갈의 간략한 연대기와 - 정말 간략하다. 하긴 자서전도 아니니 더 이상을 바라는 것도 무리겠지만-  작품 설명 - 나같은 그림 쌩초짜는 70% 정도는 알아 듣고 30%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이해되지 않는 수준- 그리고 샤갈 어록(?) -'나의 삶'이라는 자서전에서 발췌한 듯- 을 담은 책이다. 확실한 도록도 아니고 확실한 자서전도 아니니 그림과 연대기 양쪽으로 좀 어정쩡하다고나 할까. 특히 작품 설명이 해당 그림 옆에 배치되지 않아, 페이지를 앞 뒤로 제껴가며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암튼, 전혀 샤갈의 그림 같지 않은 그의 초기 작품부터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변화해 가는 작품들을 비교적 순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에 적당히 만족 하기로 하고.     

정처없는 유랑 생활의 운명을 지닌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과, 그 스스로도 전쟁과 혁명속에서 러시아(벨로루스)를 등지고 독일과 프랑스, 미국으로 이리 저리 옮겨야 했던 떠돌이의 삶을 살았다. 사랑했던 아내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고향과 아내 벨라에 대한 그리움을 동화같은 그림 속에 담아 냈던 화가. 그림 뿐 아니라, 조각, 벽화, 스테인드 글라스, 판화, 의상 디자인, 오페라 디자인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재능과 열정을 불사른 예술가. 간간이 그가 남긴 말들을 읽고 있자니 화가라기 보단 다분히 철학자적인 냄새까지 풍긴다. 인간 샤갈의 삶도 좀 더 알아보면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화려한 색깔로 따뜻한 그림을 그려 낸 사람이라면, 분명 좋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이 책에 실린 작품 중에서는 '생일'이란 작품이 가장 맘에 든다. 보고 있으면 행복해 지는 그림이다.  

*책 접기 

"그녀는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만든 달콤한 케이크와 구운 생선, 따뜻하게 데운 우유, 색색이 아름다운 천, 심지어 이젤을 만들 나무판까지 작업실로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냥 창문을 열어 두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그녀가 하늘의 푸른 공기와 사랑과 꽃과 함께 스며들어 왔다. 온통 힌색으로 혹은 온통 검은색으로 차려입은 그녀가 내 그림을 인도하며 캔버스 위를 날아다녔다. 그녀는 나의 예술의 거대한 중심 이미지이다." 

"샤갈은, 오로지 샤갈만이 은유가 성공적으로 드러나는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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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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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과 윌리엄 포크너를 읽고, 어려운 곱셈 암산도 척척, 더구나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초능력까지 겸비한 다섯 살 짜리 천재 소녀 마틸다. 실제로 이런 다섯 살 짜리가 옆에 있다면 소름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이 소녀의 능력은 놀랍다. 더구나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이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티내지 않고 겸손하기까지 하다는 것. 이런 조숙한 마틸다와 달리, 마틸다의 부모는 마틸다에게는 티클 만큼의 관심도 없다. 사람들을 속여 중고차를 팔고, 자신의 사업 후계자로서 아들만 쳐주는(?) 비열한 아버지와, 외모 가꾸기, 게임에만 열중하는 무식한 엄마. 한 술 더 떠, 마틸다의 교장 선생님은 육상선수 출신의 엄청난 뚱뚱보 - 로알드 할배의 사진을 보니 완전 말라깽이던데, 혹시 로알드 달은 뚱뚱함 자체에 대한 혐오가 있는게 아닐런지. 그의 작품 속 사악하거나 미련한 인물들은 모두 엄청난 뚱뚱보로 묘사되는데 아이들에게 그릇된 이미지를 심어 줄까 약간 우려도 된다- 로, 아이들을 혐오하고 자신이 가진 교장이라는 지위와 물리적 힘으로 약자인 아이들과 선생님을 괴롭히는 무자비한 권력자로 군림한다. 더구나 제니퍼 선생님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재산을 가로챈 고모였음이 밝혀지면서 사악함은 절정에 달한다.  

책에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부모와 교장 선생의 강자로 군림하는 폭력적 모습과, 반대로 그 엄청난 힘 앞에서 찍소리 못하고 억압당한 제니퍼 선생님을 통해, 절대 권력에 짓밟힌 약자의 무기력함과 나약함이 그려지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 보면, 아이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애들이 무슨 힘이 있는가. 그들 앞에서 어른들은 절대 강자이며, 부당함을 알고도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인 것이다. 단지 나이가 많고 크고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약자에게 신처럼 군림하려는 지배 욕망은 우리 누구에게나 잠재적으로 내재되어 있고, 이런 욕망에 휘둘릴 때, 마틸다와 같은 비정상적인 아이 캐릭터가 생겨나는 것은 아닐런지.  

잊고 지냈던 비열한 어른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되살아나면서도 마틸다의 통쾌한 복수극이 그렇다고 또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이 복잡한 감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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