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쟁탈전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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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제 사라마구 할배의 독특한 서술 방식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다 나름 자신했건만 웬걸 이번엔 정말 지루했다. 그의 스타일이자 매력 중 하나인, 이야기의 주 흐름과 별 상관 없는 방대하고 끝없는 수다, 좋게 말해 다양한 철학적 사유들이 이번엔 좀 도가 지나쳐, 호흡이 자꾸 끊기는 탓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강렬한 영상미도 이번 작품에선 그닥. 개인적 흥미와 배경 지식 모두 떨어지는 '리스본 공방전'이라는 소재와, 소설의 탄생 과정을 작중 주인공의 집필 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다소 제한적이고 전문적인 전개 방식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작가의 분신인 듯한 주인공 실바는 교정자라는 다소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는 <리스본 쟁탈전>이라는 작품의 교정 중, 참을 수 없는 강한 유혹을 느껴, 실제 사실과 달리 십자군이 리스본 쟁탈전에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최종 교정본을 넘기고, 이 의도적 조작을 알게 된 출판사 편집자 마리아로부터, 그러한 역사적 가정하에 새로운 <리스본 쟁탈전>을 쓸 것을 제안 받는다. 정확한 서술을 위해 실바가 관련 자료를 뒤지고, 현장 답사를 하고, 자신과 마리아의 분신인 모게이므와 오우로아나와를 둘러싼 사랑과 전쟁 이야기를 지어내는 과정에서, 실제로 허구와 역사 사이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허구를 지어내는 작가라는 직업인이 바라 본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순도 100%의 진실인가? 알려진 사실과 숨겨진 사실 사이에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지는 않았는가? 하는 물음 자체는 가치 있으나, 그 물음을 던지는 방식은 너무 길고 지루하다.       

*책 접기 

"난 그냥 책을 좀 읽었을 뿐이예요. 난 그냥 재미로, 또는 조금씩 지식을 쌓으려고 책을 읽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냥 보는 것과 제대로 보는 것, 제대로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뭔지 깨닫고 있죠....심지어 우리 의식이 어떤 인식수준에서 다른 인식수준으로 변하는 것에 진정한 지식이 달려 있다는 생각도 해요." 

"우리가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네요. 당연하죠, 이건 공성전이예요. 우리들 각자가 서로를 포위하고 포위당해요. 우린 자기 성벽을 지키면서 상대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싶어해요. 사랑이란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거예요. 사랑은 모든 포위공격이 끝나는 걸 의미한다고요....솔직히 난 사람들을 크게 둘로 나누는 건 그렇다고 말하느냐 아니라고 말하느냐 하는 점이라고 확신해요. 당신이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나 역시 부자와 가난한 사람, 약자와 강자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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