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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왕과 양키 -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ㅣ 마크 트웨인 대표선집 4
마크 트웨인 지음, 조애리 옮김 / 미래사 / 1995년 4월
평점 :
절판
어찌하다보니 6세기 영국 아더왕의 시대로 순간 이동해 버린 19세기 미국 코네티컷 출신 행크 모르간의 좌충우돌 모험담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아무래도 중세 이야기다 보니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깨고, 우리의 이 똘똘하고 깨인 주인공은, 위험에 처할 때 마다 중세 사람들의 무지와 미신을 과학 지식과 기술력으로 멋지게 누르고, 오히려 절대적인 권력자(마법사)지위를 획득하면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을 세우려는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행크는 중세의 폐단을 절대 왕권제와 교회 권력의 횡포라 규정하고, 신교와 공화정 수립을 목표로, 교육과 과학 기술의 보급을 통해 사람들을 개화시켜 나가는데, 그 스스로 일반 농민으로 가장해 핍박받는 민중들 속으로 직접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체험한다. 작가는 행크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법의 부조리함, 노예제도의 비인간성, 부패한 교회, 기사들의 우스꽝스러움, 절대왕권의 무의미함을 비꼬아 풍자한다. 특히 신과 같은 존재인 아더왕이 신분을 입증하는 화려한 복장과 그를 아는 사람들의 인정 없이는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며 오히려 행크보다 싼 값에 노예로 팔리는 대목은 압권이다. 이는 중세 권력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19세기 미국에 대한 풍자임을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으며, 또한 오늘날 절대 권력자들과 교회의 역할자들 - 언론,교육 등 - 에게도 적용 가능한 비판 정신이다. 그러나 결국 이런 획기적인 시도들은 행크의 믿음과 달리 실패로 끝나고 행크는 결국 멀린으로 대표되는 비이성적, 봉건적 악습의 마법에 걸려 길고 긴 잠에 빠진 후 19세기에 다시 깨어나지만, 결국 샌디와 안녕 교환수가 기다리는 영원의 세계로 떠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그 속에 내재된 잠재적 악, 혹은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뼛속 깊이 뿌리 박힌 잘못된 신념과 가치관은 결코 변할 수 없는가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질문이다. 농부로 변장한 아더왕은 아무런 죄 없이 단지 사소한 이유 혹은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평생을 감옥살이 하거나 억울하게 죽어가는 노예들의 고통을 직접 보고 가슴 아파 하지만, 이도 잠시뿐, 그는 다시 왕의 본성으로 돌아와 노예제 폐지에 반대한다. 왕과 귀족과 교회에 무거운 세금을 바치고 그들의 종 노릇을 평생 하면서 착취만 당하던 민중들은 오히려 죄 없는 자신의 이웃들을 고발하고 목 매다는 주체가 된다. 오랜 기간에 걸친 교육으로 서서히 변화를 준비했던 행크의 치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교권의 파문이라는 위기가 닥치자, 사람들은 본성으로 쉽게 되돌아가 행크에게 등을 돌리게 되며 이는 행크가 꿈꾸던 유토피아 건설을 불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는 그들 자신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작가는 결국 행크의 실패를 통해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NO"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과 답이 맘에 든다.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 관습은 지금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을 뿐. 아더왕의 순진한 백성들처럼.
*책 접기
"그들은 가문과 직위를 빼놓고는 어떠한 것에도 가치를 두지 않았다...이삼백 년만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인간들의 국가를 벌레들의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지구상에서 교회가 패권을 잡기 전까지 인간은 고개를 버젓이 들고 다녔고 인간으로서의 자긍심과 독립 정신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인간이 이룩한 일은 무엇이나 그 자신이 직접 이루어낸 일이었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때 교회가 꿍꿍이속을 가지고 전면에 나섰다. 교회는 매우 약았고 음흉했다. 왕들에게는 신적인 권리가 있다고 조작해 열렬히 지지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비호를 받아들였다. 대신 평민에게는 겸손과 상관에 대한 복종, 자기 희생의 미덕, 참을성, 압제하에서도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설교해댔다. 또한 세습적인 지위와 귀족 정치를 고안해 내서 지구상의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복종하고 숭배하도록 가르쳤다. 그 해독은 심지어 내가 태어날 당시까지 일부의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인간의 정신적인 욕구와 본능은 육체적인 욕구나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색깔이나 모양,형태가 자신의 정신적인 세계와 깊이에 어울리는 종교를 선택했을 때만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나는 통일된 교회를 가장 두려워 한다. 교회가 하나의 교파로 통일되면 상상하기 힘든 강력한 권력을 교회나 그 관련자가 갖게 되고, 권력이라는 것이 항시 그러하듯이 서서히 이기적인 집단으로 변질되며 인간의 자유는 막을 내리고 인간의 사고도 반신불수가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다면 역사의 행렬 맨 끝에 있어야 할 이 상류층 소수들은 교묘한 술책을 써서 선두에 서서 깃발을 휘날리며 행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수들은 스스로를 국가로 칭했고 말없는 다수는 너무도 오랫동안 이를 묵인해 주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 스스로도 현재의 상태를 정당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여기게 되었다. 신부들은 그들의 선조 때부터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상태가 신의 의지라고 집중 발설해 댔기 때문에 더 이상 현상태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고 모두가 존경스러울만큼 온순하게 되어 버렸다."
"인간을 붙들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시대의 관습이었다. 우리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 말을 한다. 어리석은 일이다. 본성과 같은 것은 없다. 우리가 본성이라는 그릇된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실상은 유전과 관습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고도 견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고 관습적으로 내려온 것일 따름이다.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들도 수억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종족이 그렇게 지겹게 그리고 헛되이 아담이나 메뚜기 또는 원숭이로부터 연결시킨 선조들의 축적된 생각의 묶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