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 행정가와 CEO를 위한 리더십의 8가지 원리
노무현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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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니 그 분의 사진이 있다. 가만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코 끝이 찡하다. 이제 살아있는 그 분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죽음에 대한 방관자로서의 죄책감과 끝까지 믿어주고 지켜주지 못한데 대한 미안한 마음들이 새로이 되살아난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뒤로 하고 책을 펼쳤다. 글로 표현된 그 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리더쉽 관련 책을 찾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존경하는 그 분이 생각하고 실천했던 리더쉽이라면 충분히 배울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리더쉽 책은 처음이라 다른 책들과의 상대적 비교는 안되지만, 리더쉽에 관한 내용만 순수하게 놓고 본다면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인상보다는, 원론적 내용에 그치는 평범한 수준을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해수부 관련 정책들, 부산 항만 공사 설립이라든지, 가덕도 매립 등 모범적 예로 들어진 사례들이 업무상 나에게도 친근한 분야라 생생하게 다가오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재임기간 동안의 사업을 이야기 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사례들이 자주 중복되어 인용되었고, 사기업과 국가 행정 조직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 보니, 사조직에서 어떻게 바람직한 리더쉽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에 관한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조언을 원했던 내 기대수준엔 조금 못 미치지 않았나 한다. 이 글이 씌어진 2002년이 아무래도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후반부로 갈수록 리더쉽보다는 전체적인 국정 구상과 대한민국의 비젼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 리더쉽이란 초점에 조금 빗나가지 않았나 하는 것도 나로선 아쉬운 부분이었다.   

신뢰와 대화를 바탕으로 비젼을 제시하여 조직원을 발전시키고, 전략적 판단과 강한 추진력, 합리적 설득으로 조직의 역량을 강화한다는 그 분의 원칙에 대체적으로 공감하며 읽었으나, 늦은 밤 야근과 일요일 출근도 마다않고,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주말부부를 하고, 수십편의 개혁안과 보고서를 지식경영란에 올리는 직원들을 보면서, 조직의 잠재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리더도 좋지만 야근의 고충과 상부에서 지시하는 업무 외 활동에 다면평가등을 감안하여 개인 시간까지 할애해야 하는 구성원들의 솔직한 마음을 이해하고, 업무와 업무외 활동의 과중한 부담을 줄여줄 방법을 고민하는 리더가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그 모든 노력과 시간의 희생이 자발적인 참여이고, 조직과 자신의 발전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할 말 없지만 말이다. 문제는 그런 분위기를 끌어내는 것이 리더의 역할일텐데, 내가 느낀 조직의 생리란, 조직의 유지, 발전을 위해 조직원들은 끊임없이 소모 당할 뿐이다. 나 스스로도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누구에게 비젼을 제시하고 발전을 격려할 수 있겠나? 솔직함이 조직원의 지지와 동의를 끌어내는 최고의 방법이라 하지 않았나 말이다.  

인간과 권력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권위형 리더와 민주형 리더가 결정된다고 한다. 100% 공감한다. 과연 어느 것이 정답일까? 인간은 믿어주면 믿어주고 나를 낮추면 나를 올려주는 존재일까? 믿어주면 배신하고 나를 낮추면 나를 우습게 여기고 깔보는 존재일까? 그 분은 전자라고 굳게 믿고 민주형 리더를 역설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인 배신과 깔보기라는 반응은 그를 성공한 살아있는 지도자로 만들지 못하고 성공한 죽은 지도자로 남게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에서 나는 또 갈등한다.      

세상엔 다양한 종류의 리더쉽이 있고, 그 많은 리더쉽의 상차림 중, 리더의 입맛과, 조직의 입맛, 조직원의 입맛에 딱 맞는 접시를 골라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가리들은 돈도 많이 받고, 책도 찾아 읽고, 술도 마시고, 고민도 하는 것 아니겠나. 내 접시는 과연 무얼까?          

*책 접기 

" 신뢰형성에 필요한 신뢰대상의 특징으로 일반적으로 네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신뢰대상의 능력이다...둘째는 일관성이다...셋째는 정직성에 바탕을 둔 개방성이다... 넷째는 공정한 배려이다." 

"나는 업무 파악을 위해 크게 세 가지 방법을 썼다. 첫 번째는 업무자료를 많이 읽어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업계나 학계에 계신 분들과 자주 만남을 갖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실무자와 대화하면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리더가 업무에 정통한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른 어떤 인간적인 장점도 업무에 정통한 토대 위에서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통하려면 읽고, 만나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전략적 사고는 우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다음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일의 선후와 경중을 분명히 하면서 단계별 과정을 자고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과정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저항과 장애에 대한 극복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단계에 걸쳐서 목표와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한 번 쯤 다른 각도에서,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를 늘 삶 속에서 실천하고 또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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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2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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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성격은 책 읽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결론이 궁금하기도 하고, 비슷비슷한 변종 괴물들에 대한 묘사와 끝없이 계속되는 미텐메츠의 위기 탈출기를 읽고 있노라니 중간에 호흡이 너무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라서 살짝 지루하기도 했는데, 저자 말대로 조금 더 짧게 쓸 시간이 부족했던 것일까? 개인적으로 조금 더 압축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주인공이 그토록 찾아 헤메는 걸작의 작가라든지, 그림자 제왕과 부흐하임 도시의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지라 깜짝 반전이 주는 재미는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비교적 끝까지 뒷심있게 이야기를 잘 끌어나간 느낌이다.  

1편에서 작자의 놀라운 상상력이 빚어낸 부흐하임과 여러 캐릭터들에게 넋을 놓았다면, 2편에서는 비유와 유머로 녹여낸 작가의 현실 풍자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읽을 수 있었다.  

평생 한 번도 오름을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타고날 때 부터 저절로 오름과 별들의 알파벳을 이해하는 천재 작가도 있다. 딱 들어맞는 표현을 위해, 수많은 어휘들을 섭렵하고, 작품을 위해 때론 목숨을 거는 체험을 하더라도, 결국은 자신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야 하는 창작의 고통도 뒤따른다. 설사 위대한 작품을 썼다 하더라도 우연과 부당함의 논리에 좌우되는 출판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가능성 또한 보장할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들은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다 죽으며, 책 에이전트들은 작가의 재능 따위는 염두에도 없다. 오로지 돈이 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선과 기부 등 좋은 이미지로 대중 앞에 등장해서, 예술(트럼 나팔 연주회)을 이용해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하고 정신을 세뇌한 후 차례 차례 시장 지배력을 확보해 가는, 부흐하임의 지배자이자 스스로 차모니아의 문학이 되고자 하는 권력욕의 화신인 스마이크의 악마적 광기를 보고 있노라면, 출판업계의 생리 나아가 우리 정치,경제, 사회, 문화가 어떻게 일인 혹은 소수의 치밀한 계획하에 조종 당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유명한 작가의 전작품을 외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 부흐링 족은, 작품의 질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결여된, 베스트 셀러엔 무조건 열광하고, 알려지지 않은 작품은 이유없이 경시하는 오늘날 경박한 독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지하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했으며, 그 자신 살아있는 책의 제왕인 그림자 대왕의 마지막 선택은 결국 이 작품이 책과 애서가들에 대한 예찬인 동시에, 책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욕망은 책을 생명과 문명을 파괴하는 흉기로 만들 수도 있음에 대한 유쾌한 경고이기도 하다.   

지금도 세상 어딘가 부흐하임의 지하 가죽 동굴에선, 부흐링 족들이 열심히 중얼거리며 책을 읽고 있을 것만 같다. 거기엔 발터 뫼르스라는 이름의 부흐링도 한 명 있지 않을까. 책읽기 자체만으로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그들처럼, 나에게 며칠 동안은 다른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될 만큼 든든한 포만감을 느끼게 해 준 작가 말이다. 

*책 접기 

"부흐링들은 언젠가는 그들이 전부 암기한 작가들의 성격을 띠게 됩니다...원래 우리는 빈 백지처럼 아무런 독자적인 성격을 갖추지 않고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우리는 각자 선택한 작가들의 특성을 받아들여 마침내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그것들을 그냥 읽기만 하면 됩니다. 탐독하면서 즐기는 거지요. 책을 주워 삼키는 일, 그거야말로 정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그걸로 배도 부를 수 있고요. 나는 어떤 작가와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팔자가 좋은 거지요." 

"문제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흠없는 문학은 필요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범한 것, 덤핑 책, 파본, 대량 서적들이란 말이다. 많이, 점점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다. 점점 더 두꺼우면서도 내용은 별것 없는 책들말이다. 중요한 건 잘 팔리는 종이지 그 위에 쓰여 있는 말들이 아니거든." 

"어떤 책이 얼마나 잘 팔리고 팔리지 않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 혹은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한 작가를 인지하는가 안 하는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런 것이 규범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우연과 부당함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냥 계속 기어 올라가는 거다. 마치 소설을 쓸 때 처럼. 처음에 아주 비약적으로 한 장면을 쓰는 일은 매우 쉽다. 그러다가 언젠가 네가 피곤해져서 뒤를 돌아보면 아직 겨우 절반밖에는 쓰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앞을 바라보면 아직도 절반이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그때 만약 용기를 잃으면 너는 실패하고 만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일을 끝내기는 어렵다." 

"공정한 벌은 없습니다."  

"작가란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있는 거지, 체험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만약 네가 무엇을 체험하려면 해적이나 책 사냥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네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냥 써야 한다. 만약 네가 그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창조할 수 없다면 다른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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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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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좀 더 일찍 읽지 못했을까? 삼십대 중반도 넘은 아줌마가 되버린 지금 말고, 문학 소녀를 꿈꾸던 중딩이나 고딩시절, 아니 적어도 이십대 때에만 읽었더라도 지금보단 훨씬 더 재밌고 흥미진진하고 가슴이 콩닥콩닥 설레였을텐데 말이다. 주위에 정말로 책을 사랑하는 문학 소년/소녀들이 있다면, 당장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다. 뭐 구지 소년/소녀들이 아니더라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 쯤 읽어 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책으로 시작해서 책으로 끝나는 책은 처음이다. 책을 소재로 해서 이렇게 환상적인 가공의 세계와 매력적인 인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다만 그 재주가 놀라울 따름이다. 공룡 작가 지망생, 책 사냥꾼, 책 연금술사, 검은 사나이, 그림자 대왕과 외눈박이 부흐링 족 및 부흐하임의 지하 묘지에 살고 있는 각종 괴물들, 갖가지 보석과 짐승의 가죽으로 제본된 책, 향기나는 책, 사람을 죽이는 책, 심지어 살아 숨쉬고 날아다니는 책까지. 이 말도 안되는 상상의 세계와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캐릭터들을 읽고 있노라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한 마디로 책에 대한 사랑을 넘어 광기의 수준에 이른, 책의, 책에 의한, 책을 위한 책이라고 할까.   

무엇보다, 부흐하임 사람들에게 감정 이입되어, 책에 흠뻑 취할 수 있는 대리 만족 같은 느낌들이 너무 좋았다. 마치 트럼나팔 콘서트에 도취된 미텐메츠처럼, 마구 마구 책을 사고 싶은, 그리고 아직 발견되지 못한 채 꿈꾸고 있는 책들을, 내 손으로 깨우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며 2편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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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6 - 이탈리아 먼나라 이웃나라 6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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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공부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 읽게 됬다.  

이탈리아 편이라고는 하지만 내용의 3/4이상이 로마사에 할애 되고 있다. 덕분에 기대치 않았던 로마사도 아주 재밌게 읽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들을 한 번에 쏵 정리해 주는 느낌이랄까.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며, 시칠리아의 히에론 왕과 용병, 한니발, 케사르 등 군주론에서언급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군주론를 다시 들춰 찾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라쿠스 형제들은 귀족들의 이권 독점에 맞서 창고와 식량을 운반하는 길과 다리를 만들어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농민들에게 식량을 비싼 값에 싼 값에 백성들에게 팔고, 부자들에게 높은 과세율을 적용하는 등 로마의 개혁에 앞장섰지만, -뉴딜 정책의 원조쯤 되는 것 같다- 이에 불안을 느낀 귀족들은 형은 깔로 찔러 죽이고, 동생은 유권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호민관 선거에서 낙선 시켜 버린다. 자신들의 편에서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하던 이들에게, 왜 결국 백성들은 마지막에 등을 돌려 버렸을까? 결정적 순간에, 자신을 지지해줄 것이라 믿은 백성들에게 배신당한 그라쿠스 형제의 예를 들어 공포와 무력을 사용하는 강력한 군주의 필요성을 설파한 마키아벨리에게 뭐라 반박할 수 있을까. 어리석은 자여, 그대 이름은 백성? 

이탈리아 역사도 교황권을 장악 하려는 여러 외세의 침략과 도시 국가간의 경쟁, 통일 후 내전, 다인종 민족 구성 등 정말 정신없이 복잡하지만, 시리즈 특유의 핵심 요약과 재밌는 그림으로 전혀 따분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단순히 로마, 스파게티, 피자, 느끼한 남자들의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던 이탈리아에게 이렇게 복잡 다단한 역사가 있었다니, 이제부턴 이탈리아가 좀 새롭게 보일 것 같다.   

새삼 느낀 점 - 역사는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  

새삼 알게 된 점 - 모든 제도나 학문의 기초는 이미 인류 문명 시작 이래로 거의 완벽하게 다져졌고, 그리스 로마 이후 역사는 이를 반복하고 응용한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역사에서도 통하누나.

두 말 할 필요 없고, 쉽고 간단한 정리 하나는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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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제3판 개역본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 까치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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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깔끔한 번역과 자세한 주석 덕분에 예상보다 읽기 어렵진 않았다. 단지 책에서 인용된 복잡한 이탈리아 역사와 인물에 대한 배경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훨씬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이 기본적으로 악하다는 전제하에, 철저하게 군주의 입장에서, 권력 쟁취와 유지를 위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국가 통치론을 설파하는데, 전통적으로 군주에게 요구되는 미덕의 추구보다, 폭력과 위선 등도 마다하지 않는 악덕을 기술적으로 사용하면서 겉으로는 도덕적 이미지 조작을 통해 백성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다소 뜻밖의 얍삽한 (?) 견해를 피력한다. 당시 일반 민중에 대한 그의 시각이 어땠는지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는 않으나, 아마도 그런 조작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무지하고 나약한, 그러나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는 그들의 지지가 필수적인, 피통치자로서만 인식한 듯 하다. 어쨌든, 이 책은 자신을 관직에 등용 시켜 줄 군주를 위한 일인 맞춤형 보고서였지, 일반 백성용은 아니었으니, 훗날 피지배자의 무리에 속한 나로서는 읽기에 다소 껄끄러울 수 밖에 없겠지만, 책의 본래 집필 의도로 보면, 완벽하게 잘 쓰인 실용 정치서인 것이다. 이렇게까지 조목 조목 짚어 코치해 주는 신하가 있으면 왕으로서야 얼마나 든든한 일이겠는가. 

정치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글 전반에 깔린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개인의 능력과 운의 문제, 본국의 점령국 통치술, 자국 군대와 용병의 차이, 군주의 잔인함과 인자함 사이의 선택, 아첨과 대중의 마음을 얻는 법등에 대한 이 옛사람의 생각은, 비단 이탈리아의 한 군주 뿐 아니라, 오늘날 세계와 한국의 정치, 나아가 일반 인간 관계와 처세에도 빗대어 생각해 볼 만한 많은 생각 꺼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시대와 역사를 관통해, 결국 힘의 우열 속에서 잡아 먹느냐 잡아 먹히느냐, 혹은 지배하느냐 지배당하느냐 하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도, 그의 견해에 반은 공감, 반은 공감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결론 밖엔 나지 않는다. 정말 이런 야비한 방법이 큰나라가 작은 나라를, 힘센자가 약한자를 지배하는 통치술이란 말인가. 진정한 덕과 선으로 통치하는 지도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대인가. 인간은 은혜 베푼 자 보다, 공포를 느끼는 자에게 더 복종하게 되어 있는 비열한 존재란 말인가. 국가 전체의 안위를 위해, 군주의 도덕과 국민의 도덕은 달라도 된다는 논리는 정말 맞는건가. 에씨. 잘 모르겠다. 그래서 대가리 해 먹기 어렵다고들 다들 하는건가.   

*책 접기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주어야 합니다." 

"정치적 문제를 일찍이 인지하면 문제가 신속히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식하지 못하고 사태가 악화되어 모든 사람이 알아차릴 정도가 되면 어떤 해결책도 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타인이 강력해지도록 도움을 준 자는 자멸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세력은 도움을 주는 자의 술책이나 힘을 통해서 커지는데, 이 두가지는 도움을 받아 강력해진 자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항상 탁월한 인물들의 방법을 따르거나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모방하려고 애쓰는데, 그 이유는 비록 그들의 역량에 필적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느 정도의 명성은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노련한 궁구사 목표물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활을 쏘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활의 위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높은 지점을 겨냥하게 되는데, 이는 그 높은 지점을 화살로 맞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표물을 맞히기 위해서는 그 지점을 겨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고 위험하면 성공하기 힘든 일은 없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던 모든 사람들이 개혁자에게 적대적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가해행위는 모두 일거에 저질러야 하면, 그래야 그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작게 일으킵니다. 반면에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그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일견 미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느끼게 하고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둘 다를 얻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굳이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저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 자신을 아첨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듣더라도 당신이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당신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에 대한 존경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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