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제3판 개역본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 까치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깔끔한 번역과 자세한 주석 덕분에 예상보다 읽기 어렵진 않았다. 단지 책에서 인용된 복잡한 이탈리아 역사와 인물에 대한 배경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훨씬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이 기본적으로 악하다는 전제하에, 철저하게 군주의 입장에서, 권력 쟁취와 유지를 위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국가 통치론을 설파하는데, 전통적으로 군주에게 요구되는 미덕의 추구보다, 폭력과 위선 등도 마다하지 않는 악덕을 기술적으로 사용하면서 겉으로는 도덕적 이미지 조작을 통해 백성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다소 뜻밖의 얍삽한 (?) 견해를 피력한다. 당시 일반 민중에 대한 그의 시각이 어땠는지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는 않으나, 아마도 그런 조작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무지하고 나약한, 그러나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는 그들의 지지가 필수적인, 피통치자로서만 인식한 듯 하다. 어쨌든, 이 책은 자신을 관직에 등용 시켜 줄 군주를 위한 일인 맞춤형 보고서였지, 일반 백성용은 아니었으니, 훗날 피지배자의 무리에 속한 나로서는 읽기에 다소 껄끄러울 수 밖에 없겠지만, 책의 본래 집필 의도로 보면, 완벽하게 잘 쓰인 실용 정치서인 것이다. 이렇게까지 조목 조목 짚어 코치해 주는 신하가 있으면 왕으로서야 얼마나 든든한 일이겠는가. 

정치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글 전반에 깔린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개인의 능력과 운의 문제, 본국의 점령국 통치술, 자국 군대와 용병의 차이, 군주의 잔인함과 인자함 사이의 선택, 아첨과 대중의 마음을 얻는 법등에 대한 이 옛사람의 생각은, 비단 이탈리아의 한 군주 뿐 아니라, 오늘날 세계와 한국의 정치, 나아가 일반 인간 관계와 처세에도 빗대어 생각해 볼 만한 많은 생각 꺼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시대와 역사를 관통해, 결국 힘의 우열 속에서 잡아 먹느냐 잡아 먹히느냐, 혹은 지배하느냐 지배당하느냐 하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도, 그의 견해에 반은 공감, 반은 공감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결론 밖엔 나지 않는다. 정말 이런 야비한 방법이 큰나라가 작은 나라를, 힘센자가 약한자를 지배하는 통치술이란 말인가. 진정한 덕과 선으로 통치하는 지도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대인가. 인간은 은혜 베푼 자 보다, 공포를 느끼는 자에게 더 복종하게 되어 있는 비열한 존재란 말인가. 국가 전체의 안위를 위해, 군주의 도덕과 국민의 도덕은 달라도 된다는 논리는 정말 맞는건가. 에씨. 잘 모르겠다. 그래서 대가리 해 먹기 어렵다고들 다들 하는건가.   

*책 접기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주어야 합니다." 

"정치적 문제를 일찍이 인지하면 문제가 신속히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식하지 못하고 사태가 악화되어 모든 사람이 알아차릴 정도가 되면 어떤 해결책도 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타인이 강력해지도록 도움을 준 자는 자멸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세력은 도움을 주는 자의 술책이나 힘을 통해서 커지는데, 이 두가지는 도움을 받아 강력해진 자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항상 탁월한 인물들의 방법을 따르거나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모방하려고 애쓰는데, 그 이유는 비록 그들의 역량에 필적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느 정도의 명성은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노련한 궁구사 목표물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활을 쏘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활의 위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높은 지점을 겨냥하게 되는데, 이는 그 높은 지점을 화살로 맞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표물을 맞히기 위해서는 그 지점을 겨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고 위험하면 성공하기 힘든 일은 없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던 모든 사람들이 개혁자에게 적대적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가해행위는 모두 일거에 저질러야 하면, 그래야 그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작게 일으킵니다. 반면에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그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일견 미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느끼게 하고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둘 다를 얻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굳이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저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 자신을 아첨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듣더라도 당신이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당신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에 대한 존경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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