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2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급한 성격은 책 읽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결론이 궁금하기도 하고, 비슷비슷한 변종 괴물들에 대한 묘사와 끝없이 계속되는 미텐메츠의 위기 탈출기를 읽고 있노라니 중간에 호흡이 너무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라서 살짝 지루하기도 했는데, 저자 말대로 조금 더 짧게 쓸 시간이 부족했던 것일까? 개인적으로 조금 더 압축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주인공이 그토록 찾아 헤메는 걸작의 작가라든지, 그림자 제왕과 부흐하임 도시의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지라 깜짝 반전이 주는 재미는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비교적 끝까지 뒷심있게 이야기를 잘 끌어나간 느낌이다.  

1편에서 작자의 놀라운 상상력이 빚어낸 부흐하임과 여러 캐릭터들에게 넋을 놓았다면, 2편에서는 비유와 유머로 녹여낸 작가의 현실 풍자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읽을 수 있었다.  

평생 한 번도 오름을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타고날 때 부터 저절로 오름과 별들의 알파벳을 이해하는 천재 작가도 있다. 딱 들어맞는 표현을 위해, 수많은 어휘들을 섭렵하고, 작품을 위해 때론 목숨을 거는 체험을 하더라도, 결국은 자신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야 하는 창작의 고통도 뒤따른다. 설사 위대한 작품을 썼다 하더라도 우연과 부당함의 논리에 좌우되는 출판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가능성 또한 보장할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들은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다 죽으며, 책 에이전트들은 작가의 재능 따위는 염두에도 없다. 오로지 돈이 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선과 기부 등 좋은 이미지로 대중 앞에 등장해서, 예술(트럼 나팔 연주회)을 이용해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하고 정신을 세뇌한 후 차례 차례 시장 지배력을 확보해 가는, 부흐하임의 지배자이자 스스로 차모니아의 문학이 되고자 하는 권력욕의 화신인 스마이크의 악마적 광기를 보고 있노라면, 출판업계의 생리 나아가 우리 정치,경제, 사회, 문화가 어떻게 일인 혹은 소수의 치밀한 계획하에 조종 당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유명한 작가의 전작품을 외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 부흐링 족은, 작품의 질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결여된, 베스트 셀러엔 무조건 열광하고, 알려지지 않은 작품은 이유없이 경시하는 오늘날 경박한 독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지하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했으며, 그 자신 살아있는 책의 제왕인 그림자 대왕의 마지막 선택은 결국 이 작품이 책과 애서가들에 대한 예찬인 동시에, 책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욕망은 책을 생명과 문명을 파괴하는 흉기로 만들 수도 있음에 대한 유쾌한 경고이기도 하다.   

지금도 세상 어딘가 부흐하임의 지하 가죽 동굴에선, 부흐링 족들이 열심히 중얼거리며 책을 읽고 있을 것만 같다. 거기엔 발터 뫼르스라는 이름의 부흐링도 한 명 있지 않을까. 책읽기 자체만으로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그들처럼, 나에게 며칠 동안은 다른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될 만큼 든든한 포만감을 느끼게 해 준 작가 말이다. 

*책 접기 

"부흐링들은 언젠가는 그들이 전부 암기한 작가들의 성격을 띠게 됩니다...원래 우리는 빈 백지처럼 아무런 독자적인 성격을 갖추지 않고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우리는 각자 선택한 작가들의 특성을 받아들여 마침내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그것들을 그냥 읽기만 하면 됩니다. 탐독하면서 즐기는 거지요. 책을 주워 삼키는 일, 그거야말로 정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그걸로 배도 부를 수 있고요. 나는 어떤 작가와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팔자가 좋은 거지요." 

"문제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흠없는 문학은 필요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범한 것, 덤핑 책, 파본, 대량 서적들이란 말이다. 많이, 점점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다. 점점 더 두꺼우면서도 내용은 별것 없는 책들말이다. 중요한 건 잘 팔리는 종이지 그 위에 쓰여 있는 말들이 아니거든." 

"어떤 책이 얼마나 잘 팔리고 팔리지 않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 혹은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한 작가를 인지하는가 안 하는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런 것이 규범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우연과 부당함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냥 계속 기어 올라가는 거다. 마치 소설을 쓸 때 처럼. 처음에 아주 비약적으로 한 장면을 쓰는 일은 매우 쉽다. 그러다가 언젠가 네가 피곤해져서 뒤를 돌아보면 아직 겨우 절반밖에는 쓰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앞을 바라보면 아직도 절반이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그때 만약 용기를 잃으면 너는 실패하고 만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일을 끝내기는 어렵다." 

"공정한 벌은 없습니다."  

"작가란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있는 거지, 체험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만약 네가 무엇을 체험하려면 해적이나 책 사냥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네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냥 써야 한다. 만약 네가 그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창조할 수 없다면 다른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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