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3 -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3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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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과 다소 중복된 주제들인 과거청산, 민간인 학살, 박정희, 조봉암, 양심적 병역 거부등에 대해 다루고 있어, 좋게 말하면 한 번 더 되새김질해 좋고, 나쁘게 말하면 전편들에 비해 신선도는 좀 떨어진다.  

3편에서 가장 인상깊은 주제는 아무래도 '간첩'이 아닐까 싶다. <나는 공산주의자다>에서 허영철 선생은 '간첩'이란 용어 자체가 '적국이나 제3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남북한 처럼 같은 조국에서 쓰기엔 틀린 표현이고, 따라서 자신은 간첩이 아닌 '남파 공작원'이라 하셨지만, 암튼 통칭 우리가 '간첩'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대한 민국 근대사에서 정권 유지 목적과 사법부의 묵인 아래 어떻게 생산되고 처리(?)되어 왔는지에 대한 새롭고(?) 의외인(?) 사실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지금도 어릴 적 읽은 만화책에서 도깨비와 악마 등으로 묘사되던 김일성과 간첩들, 버스 안에 붙여져 있던 때려잡자, 자수하자는 식의 반공방첩 표어들의 이미지가 생생한 가운데, '간첩' 이란 존재 자체가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무시무시한 금기라는 무의식 속에, 그들은 나의 의식 속에선 아예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이전에 읽은 책 <나는 공산주의자다>의 허영철 할아버지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의 저자 서경식의 두 형인 서승, 서준식의 억울하고 기막힌 사연들을 단편적이고 간헐적인 방식으로 접했을 뿐이지, 다른 근대사 사안들에 비해, 언론이나 책을 통해 이렇게나마 본격적으로- 사실 본격적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간첩'의 역사에 대해 접한 것은 처음이다. 모르기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고, 뭔지 모르게 무섭기도 무섭고 그랬던 것 같다.     

1950/1960년대의 남파 간첩은 그렇다쳐도, 1970/1980년대 정권 유지 목적으로 조작, 생산, 희생 되었던 국내외 학생들과 지식인들, 나포 선원들등에 대한 마녀 사냥식 묻지마 고문과 판결로 인한 억울한 죽음과 희생을 생각하니 그저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무법천지가 불과 몇 십년 전이었다니, 우습지만 그나마 늦게 태어난 걸 죽도록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모든 국민들이 그 분들의 희생과 가해자의 잘못에 대해 충분히 알고 책임과 배상 조치를 강구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 되어야 하지만,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부끄럽고 한심하다.    

왜 이 시점에서 로알드 달의 <달리는 폭슬리 Galloping Foxley>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끝까지 주인공의 반격을 허용하지 않는 능글맞고 뻔뻔하고 가증스런 폭슬리.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왠지 국가라는 시스템 자체가 고통과 폭력을 동반하며 약자를 향해 무자비하게 돌격하는 폭슬리처럼 느껴진다. 우리 지금 뒤를 돌아보며 반성할 시간도 갖지 못할 만큼 너무 미친 듯이 달리고 있지 않나. 멈추면 폭발하는 버스를 탄 것도 아닐텐데, 개인의 삶도 국가의 삶도 여기서 멈추면 끝장이라는 강박증을 모두가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해본다.     

*책 접기 

'진상규명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사회와 개인, 개인과 개인, 그리고 국가와 사회, 국가와 개인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의 과정을 통해 국가와 그 대리인들이 범한 범죄와 그 범죄를 저지르게 된 상황이 공개되고, 또 피해의 사실들과 피해자들의 고통이 알려지면 우리는 사회 내에서 타인이 겪은 고통에 대한 공감과 그러한 고통을 가져온 배경과 상황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이 가졌던 공포와 무관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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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다 2
허영철 원작, 박건웅 만화 / 보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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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체의 강한 그림체도 허영철님의 굴곡진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그 분의 옆 얼굴을 그린 부분은 가만히 오랫동안 들여다 보고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처진 눈매와 주름 가득한 얼굴, 거친 피부 하나 하나에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묻어 나는 듯하다.   

2부까지 다 읽고나니, 혁명가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허영철씨의 삶도 삶이지만, 그 뒤에 가려진, 운명의 우연과 임의성으로 인해, 혁명가의 부모, 혁명가의 아내, 혁명가의 자식으로 살아야 했던 분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들에게 혁명가 허영철의 존재는 사상의 자유를 지키려는 '옳음'을 떠나 분명 하나의 억압이었을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특히 가족에게 억압이 된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다.  

모든 비전향 장기수 분들과 가족분들 모두가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길 바란다. 옳고 그름을 떠나,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고 지켜줄 수 있는 옳은 국민과 옳은 국가가 되길 역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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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다 1 평화 발자국 4
허영철 원작, 박건웅 만화 / 보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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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에 대해선 한홍구의 <대한민국사>처럼 몇 몇 다른 책에서 잠시 접하는 정도였는데, 이번에 지인 덕분에, 36년의 투옥 생활을 마치고 1991년 석방되신,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님의 이야기를 만화책으로 접하게 되었다.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는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아니 책을 다 읽고 나니 역사가 그를 한 번도 비껴가지 않았다기 보다는, 그 스스로 역사를 한번도 피해가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지 싶다. 허영철이라는 한 개인의 역사 속에 오롯이 투영된, 일제 강점과 해방, 전쟁, 그리고 군부 독재시대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서전보다는 오히려 역사책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할까. 때문에 관련 부분 역사책을 다시 들춰 읽기도 했다. 물론 역사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소하지만 더 실감나는, 일터에서, 길에서, 투쟁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작지만 큰 이야기들도 간간히 녹아 있다.  

허영철 할아버지는 혁명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혁명가로서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고 노력하는 것이라 했는데, 그의 천로역정을 보면, 실로 평생을 쫒기어 도망다니는 삶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 도망과 고문의 고통, 36년이라는 고독의 긴 세월 속에서 단 한 번도 후회하거나 회의하지 않았다고 하니 혁명가로 태어나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자신의 사상에 대한 이런 강한 신념은, 본인도 밝혔듯이 북에서 활동시 이상향의 건설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겪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할 수 있다는,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하나로 뭉쳐지는 사람들 사이의 강한 유대감 같은 것들은 겪어 보지 못한 자는 결코 알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조지 오웰도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말하지 않았나. 자신은 분명히 계급없는 평등사회 건설의 가능성을 카탈로니아에서 발견했었다고. 대선의 노풍도, 촛불시위도, 탄핵반대도 그런 감정의 연장선상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자신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죽음이 두렵고 행동이 비겁해진다는 말도 가슴에 박힌다. 그래서 확실히 나는 영원한 비겁쟁이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분들의 희생을 밟고 말이다. 사상의 자유가 무엇이길래, 누구는 36년을 버려가며 지키려 하고, 사상의 자유가 무엇이길래, 누구는 36년을 뺏아가며 탄압하는지. 전부를 걸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양심을 끝까지 지켜 낸 한 인간의 초인적 의지는 존경을 넘어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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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 이방인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장호연 옮김 / 마티(곤조)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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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사랑하고 세금을 싫어하는 수다쟁이 대머리 할아버지가 SF의 형식을 빌어 세상과 인간에 대해 풀어놓은 장광설'이 이 책에 대한 한 줄 요약 쯤 되겠다. 그리고 한 줄 더 붙인다면, '너무 무거워 누워 읽기엔 꽤 불편한 책'    

늑대 소녀처럼, 인간이지만 화성인의 손에서 화성인으로 길러진 마이클 벨런타인 스미스란 남자가 지구로 귀향해, 다양한 지구인들, 특히 쥬발 허쇼 - 발음상 완전 딱이다. '쥬발 허쇼'보다 더 쥬발 허쇼 캐릭터에 착 달라 붙는 이름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  라는 정신적 안내자의 도움으로, 서경식씨 표현으로 하자면 지구인과 화성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디아스포라'로서 겪는 정체성 고민을, 지구의 관습과 문화를 배우면서 극복(공감)하고, 마침내 '온세상 교회'라는 일종의 종교를 통해, '당신은 신입니다'라는 메세지를 지구인들에게 전하고 떠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화성이라는 무대, 막대한 부를 가진 남자 주인공, 영의 이탈과 초능력, 종교에 대한 풍자 등 커트 보네거트의 <타이탄의 미녀>와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한데, 정치,사회, 종교,예술,전쟁 등에 대한 두 작가의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블랙 유머라는 표현 방식의 유사성 때문인 듯 하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쥬발 허쇼의 입을 빌어 밝힌 그의 글쓰기 목적 - 고객들을 감동시키고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무료한 시간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은 적어도 나에게는 항상, 그리고 충분히, 달성되는 셈이다.    

강간을 당하는데는 여자 책임도 있다는 둥, 여자의 자유를 풀어놓은 고양이의 자유에 비유하는 둥, 딱히 페미니스트가 아닌 나도 할배가 도대체 왜 이런 망언(?)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이번 책엔 여성 비하적인 부분이 많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독립적이고 전지전능한 여성 캐릭터들을 충분히 접했는지라, 구지 남성 우월주의적 편향적 사고로 해석하지 않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 강한 팬심 때문인가?   

역시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스와핑이나 쓰리썸같은 파격적 성관계가 등장 하는데 이 작품에선 그 행위의 의미나 동기를 좀 더 심화학습(?)하여, 구지 '편협한 중산층 마인드로 무장한 엄격한 도덕률'이라든지, 몸에 배인 관습적 선과 악의 무의미함 따위를 떠올리지 않아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가장 친밀해지는 방법으로서의 섹스를 열린 맘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해준다. 특히 종교가 오리지널한 생각 없는 사람들이 케케묵은 속임수를 가져다 그럴듯하게 끼워 맞춘 다음 새롭게 칠을 해 벌인 사업이란 것을 보여주는 그만의 다양한 풍자들 - 교회에서 슬롯머신 기계를 돌려 잭팟이 터지게 한다거나, 갖가지 쇼의 기술을 동원하는 예배들 등등- 을 읽고 있노라면 그 우스꽝스러움에 웃음이 나다가도 한편으로는, 종교라는게 뭐 그리 신성한 것이라고, 구지 그러지 말란 법도 없잖아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암튼 기분이 묘해진다. 마음껏 비웃어 주고 싶은 욕구의 대리 만족과 함께 그 비웃음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종교가 무엇인지 되묻게 되는 뭐 그런 감정들.   

비록 허구이긴 하지만, 서로를 충분히 공감할 때까지 기다림을 채운 후, 때가 되면 물을 나누는 물형제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충만하고 행복한 느낌일까를 상상했다. 어쩌면 질투 없이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 서로를 완전히 공감하고, 신이라 칭송하며 온전히 믿고 아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신랑이 곧 현실을 일깨워준다. 아무리 서로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 100% 공감이란 있을 수 없다고. 특히나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일 때 공감이란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다른 주제들도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 내겐 인간 사이의 진정한 '공감'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안타깝게도 물형제는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책 접기   

'허쇼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정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누구도 배고픔을 이겨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악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그것을 '선'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스스로에 대한 가장 소름끼치는 농담이야." 

"세상을 어지럽히는 헛소리 중에서도 최악은 바로 '이타주의'라는 말이네.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해. 고통스럽게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설령 그 선택이 '희생'처럼 보일지라도, 실은 탐욕을 부려 불편을 겪는 것을 모면해 보려는 수작일 뿐. 두 가지를 한꺼번에 가질 수 없으면 무엇을 취할지 결정해야 하는 거니까. 평범한 녀석들은 푼돈이 생기면 맥주를 마실까 자식 녀석한테 줄까 고민을 하지.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까 직장을 관둘까로 고민을 하고. 하지만 항상 피해를 최소로 하고 즐거움을 최대로 하는 쪽을 선택하는 법이네. 크게 보면 불한당이나 성자나 선택하는 것은 마찬가지야." 

"사람들이 왜 웃는지 알아냈어요. 그건 상처받기 때문이예요. 상처받는 것을 멈추려면 웃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올바름은 웃음 속에 있습니다. 나는 웃음이 고통과 슬픔과 패배에 대항하는...용감한 행위...나눔의 행위라고 공감합니다." 

"예쁜 소녀를 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네. 예술가는 예쁜 소녀를 보고 거기서 미래의 노부인의 모습을 볼 줄 아네. 그보다 나은 예술가는 노부인을 보고 거기서 과거의 예쁜 소녀의 모습을 볼 줄 알지.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노부인을 보고 그녀를 정확하게 묘사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거기서 과거의 예쁜 소녀를 보게 한다네. 그뿐이 아니네. 약간의 감수성만 있으면 누구나 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영락한 육체 속에 갇혀 아직도 살아 있음을 볼 수 있지. 그렇게 가혹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녀의 가슴 속에는 열여덟 살 소녀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면서 말이야." 

"모호함이야 말로 무능한 자들의 좋은 피난처라네." 

"유아론과 범신론이라. 그 둘이 만나면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지. 어떤 불편한 사실도 무시할 수 있고, 모든 이론을 화해시킬 수 있으며, 마음에 드는 어떤 사실이나 망상도 끼워 넣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솜사탕 같은 거야. 모든 맛이 들어있지만 실체는 없는." 

"그대는 신입니다...개인이 책임을 떠맡자는 것을 용감하게 선언하는 말입니다....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은 신을 자신들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고집했어요. 신의 이름을 빌어 나태한 우매함을 합리화하고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거죠. 노력은 본인 스스로의 몫이다. 모든 고난은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는 말을 귀담아 듣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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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의 철학 - 혼합의 시대를 즐기는 인간의 조건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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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읽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를 통해 저자를 알게 되었고,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 보리라 오래 벼른 끝에 읽었으나, 도발적 철학의 무도회를 제공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집필 의도에는 못 미치는, 그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철학 에세이 수준인 듯 하여, 다소 실망스러웠다. 나름 실망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전작에 의거한 저자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얼마 전에 읽은 책들의 영향 - 저자가 기본 전제로 깔고 가는 것들에 대한 서경식식 따져 묻기와 회의 + 상대적으로 분석적이고 깊이있는 마이클 샌덜의 접근 방식- 때문인 듯 하다.  

제목대로 두 글자로 된 우리 인생의 주요 주제들에 대한 저자의 철학을 접할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너무 사변적이고 -철학이 원래 그런거겠지만- 철학자로서의 깊이있고 독특한 사유도 있는 반면 말 그대로 자기만의 철학인 것 같아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또 공감이 된다 싶으면 너무 일반적이고 빤한 내용이라 3부 '관계의 현실' 같은 경우는 도덕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한 권의 책에 25가지의 주제를 모두 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그저 그런 부페보다 확실한 일품 요리가 낫다고, 주제의 다양성보단 깊이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주제별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생명 - 생명을 폭력적이고 공포를 유발하는 존재로 보는 시선 자체는 신선했으나, 생명이 살려고 애쓰는 성질 자체를 '자유의지'로 보는 시각엔 동의할 수 없다. 개체의 치열한 생존 본능을, 방향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로 보는 것은, 생명에 자율성이란 가치를 부여 함으로써, 그 고귀함을 좀 더 부각시키고자 하는 억지스런 확대 해석으로 느껴진다.    

자유 - 자유에도 한계가 있고 바로 그 한계가 현실에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자유의 모순적 측면엔 동의하나 자유로우면 행복은 자연스레 따라오고, 따라서 자유의 가치가 행복에 앞선다는 단순논리엔 동의할 수 없다.  

유혹 - 유혹하는 자의 관점이 아니라, 유혹 당하는 자의 관점에서, 유혹은 이미 자신 속에 내재된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다.  

고통 -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말로 행해지는 마음의 상처와 음모도 고통이다. 법은 왜 육체적 고통만 금지하는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극복이 곧 생명의 도이다.'  

희망 - '결국 그는 실천하면서 희망했기에 그가 바라던 대로 친구를 만나 재회의 악수를 할 수 있었고, 꿈에서 보았던 파란 바다에 면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낭만 - '옛날은 항상 의미의 부활로 우리의 낭만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시기 - '남을 괜히 흘려보거나 음모를 꾸미는 일은 없다. 그저 자신의 개화에 열중할 뿐이다. 꽃들이 시샘해서 하는 일이라곤 자신을 키우는 일 뿐이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꽃들은 자기 성숙으로 경쟁한다.' 

질투 - '시기는 "능력"에 대한 것이고, 질투는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욕 - '어떤 사람이 웃음으로 해방을 맛보고 즐거울 수 있으며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반드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심층적이든 피상적이든- 그 웃음으로 억압을 당하고 모욕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희극적 웃음은 사회의 중심에서 이탈하는 징표를 보이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교정의 전략이다. 웃음은 이탈을 경고하고 다시 사회에 포섭하고자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욕은 이것을 역으로 사용한다. 다른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듦으로써 그를 사회 밖으로 이탈시키는 것이다. 즉 사회적 배제의 전략인 것이다.' 

행복 - '행복은 삶의 느낌표와 말없음표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순간의 커다란 행복감과 작지만 탄탄한 행복의 지속이 그것이다......모든 행복은 최고의 걸작이다. 하지만 아주 작은 실수, 아주 작은 망설임, 아주 작은 무게, 그리고 아주 작은 우스꽝스러움으로도 망쳐버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말없음표는 작고 별로 표가 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지속될 수 있다. 물론 지속되기 위한 기획과 의지 그리고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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