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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다 1 ㅣ 평화 발자국 4
허영철 원작, 박건웅 만화 / 보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비전향 장기수에 대해선 한홍구의 <대한민국사>처럼 몇 몇 다른 책에서 잠시 접하는 정도였는데, 이번에 지인 덕분에, 36년의 투옥 생활을 마치고 1991년 석방되신,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님의 이야기를 만화책으로 접하게 되었다.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는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아니 책을 다 읽고 나니 역사가 그를 한 번도 비껴가지 않았다기 보다는, 그 스스로 역사를 한번도 피해가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지 싶다. 허영철이라는 한 개인의 역사 속에 오롯이 투영된, 일제 강점과 해방, 전쟁, 그리고 군부 독재시대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서전보다는 오히려 역사책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할까. 때문에 관련 부분 역사책을 다시 들춰 읽기도 했다. 물론 역사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소하지만 더 실감나는, 일터에서, 길에서, 투쟁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작지만 큰 이야기들도 간간히 녹아 있다.
허영철 할아버지는 혁명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혁명가로서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고 노력하는 것이라 했는데, 그의 천로역정을 보면, 실로 평생을 쫒기어 도망다니는 삶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 도망과 고문의 고통, 36년이라는 고독의 긴 세월 속에서 단 한 번도 후회하거나 회의하지 않았다고 하니 혁명가로 태어나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자신의 사상에 대한 이런 강한 신념은, 본인도 밝혔듯이 북에서 활동시 이상향의 건설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겪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할 수 있다는,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하나로 뭉쳐지는 사람들 사이의 강한 유대감 같은 것들은 겪어 보지 못한 자는 결코 알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조지 오웰도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말하지 않았나. 자신은 분명히 계급없는 평등사회 건설의 가능성을 카탈로니아에서 발견했었다고. 대선의 노풍도, 촛불시위도, 탄핵반대도 그런 감정의 연장선상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자신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죽음이 두렵고 행동이 비겁해진다는 말도 가슴에 박힌다. 그래서 확실히 나는 영원한 비겁쟁이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분들의 희생을 밟고 말이다. 사상의 자유가 무엇이길래, 누구는 36년을 버려가며 지키려 하고, 사상의 자유가 무엇이길래, 누구는 36년을 뺏아가며 탄압하는지. 전부를 걸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양심을 끝까지 지켜 낸 한 인간의 초인적 의지는 존경을 넘어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