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의 철학 - 혼합의 시대를 즐기는 인간의 조건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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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읽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를 통해 저자를 알게 되었고,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 보리라 오래 벼른 끝에 읽었으나, 도발적 철학의 무도회를 제공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집필 의도에는 못 미치는, 그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철학 에세이 수준인 듯 하여, 다소 실망스러웠다. 나름 실망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전작에 의거한 저자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얼마 전에 읽은 책들의 영향 - 저자가 기본 전제로 깔고 가는 것들에 대한 서경식식 따져 묻기와 회의 + 상대적으로 분석적이고 깊이있는 마이클 샌덜의 접근 방식- 때문인 듯 하다.  

제목대로 두 글자로 된 우리 인생의 주요 주제들에 대한 저자의 철학을 접할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너무 사변적이고 -철학이 원래 그런거겠지만- 철학자로서의 깊이있고 독특한 사유도 있는 반면 말 그대로 자기만의 철학인 것 같아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또 공감이 된다 싶으면 너무 일반적이고 빤한 내용이라 3부 '관계의 현실' 같은 경우는 도덕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한 권의 책에 25가지의 주제를 모두 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그저 그런 부페보다 확실한 일품 요리가 낫다고, 주제의 다양성보단 깊이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주제별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생명 - 생명을 폭력적이고 공포를 유발하는 존재로 보는 시선 자체는 신선했으나, 생명이 살려고 애쓰는 성질 자체를 '자유의지'로 보는 시각엔 동의할 수 없다. 개체의 치열한 생존 본능을, 방향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로 보는 것은, 생명에 자율성이란 가치를 부여 함으로써, 그 고귀함을 좀 더 부각시키고자 하는 억지스런 확대 해석으로 느껴진다.    

자유 - 자유에도 한계가 있고 바로 그 한계가 현실에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자유의 모순적 측면엔 동의하나 자유로우면 행복은 자연스레 따라오고, 따라서 자유의 가치가 행복에 앞선다는 단순논리엔 동의할 수 없다.  

유혹 - 유혹하는 자의 관점이 아니라, 유혹 당하는 자의 관점에서, 유혹은 이미 자신 속에 내재된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다.  

고통 -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말로 행해지는 마음의 상처와 음모도 고통이다. 법은 왜 육체적 고통만 금지하는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극복이 곧 생명의 도이다.'  

희망 - '결국 그는 실천하면서 희망했기에 그가 바라던 대로 친구를 만나 재회의 악수를 할 수 있었고, 꿈에서 보았던 파란 바다에 면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낭만 - '옛날은 항상 의미의 부활로 우리의 낭만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시기 - '남을 괜히 흘려보거나 음모를 꾸미는 일은 없다. 그저 자신의 개화에 열중할 뿐이다. 꽃들이 시샘해서 하는 일이라곤 자신을 키우는 일 뿐이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꽃들은 자기 성숙으로 경쟁한다.' 

질투 - '시기는 "능력"에 대한 것이고, 질투는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욕 - '어떤 사람이 웃음으로 해방을 맛보고 즐거울 수 있으며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반드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심층적이든 피상적이든- 그 웃음으로 억압을 당하고 모욕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희극적 웃음은 사회의 중심에서 이탈하는 징표를 보이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교정의 전략이다. 웃음은 이탈을 경고하고 다시 사회에 포섭하고자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욕은 이것을 역으로 사용한다. 다른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듦으로써 그를 사회 밖으로 이탈시키는 것이다. 즉 사회적 배제의 전략인 것이다.' 

행복 - '행복은 삶의 느낌표와 말없음표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순간의 커다란 행복감과 작지만 탄탄한 행복의 지속이 그것이다......모든 행복은 최고의 걸작이다. 하지만 아주 작은 실수, 아주 작은 망설임, 아주 작은 무게, 그리고 아주 작은 우스꽝스러움으로도 망쳐버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말없음표는 작고 별로 표가 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지속될 수 있다. 물론 지속되기 위한 기획과 의지 그리고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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