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제목에서 풍기는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느낌과 달리,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작가의 접근방식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큰 재미나 감흥은 없었지만 신선은 했다고 할까. 개천에서 용된 유명인사들의 화려한 성공담을 적당히 깔아 독자들을 말랑 말랑하게 녹인 후, 성공 비법 몇 가지를 알려주고, 그대로 따라만 하면 당신도 용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의욕과 희망으로 가슴 벅차오르게 해주는 그런 책은 적어도 아니었단 말이지.  

내가 아무리 잘나고 노력해봤자 내 통제밖에 있는 환경적, 시대적, 문화적 기회와 행운이 주어지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저자는 확실히 짚어준다. 이 책 어디에도 나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달콤한 성공의 환상같은 것은 없다. 난다 긴다는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분석하여 쓴 책의 결론이 결국은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운칠기삼' 인 것이다. 사탕발린 소리가 아니어서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허무하고 무기력해진다.    

나름 내가 찾은 이 책의 효용(?)은 이거다. 이런 운명의 임의성, 우연성앞에 성공한 자, 성공하지 못한 자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업적에 대해 겸손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혜택받지 못한 자들에게 빚진 기분으로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자기계발서 보다는, 오히려 존 롤스의 정의론의 개념과 더 가까운 느낌이다. 쌀농사 문화에 기반한 아시아인의 근면과 끈기를 배우는 것까지는 좋지만, 여름 방학을 실컷 즐기고 상대적으로 널널한 학교 생활을 즐기는 중/상류층 아이가 아니라, 왜 마리타같은 하류층 아이들만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 등교하고 밤 늦도록 숙제를 해야 하는 한국식(?) 교육 방법이 성공을 위한 유일한 출구로 주어지는지 생각하면 여전히 화가 난다. 정녕 이것을 기회의 균등이라 할 수 있을까? 

역시 인생은 아무리 몸부림치고 지랄해 봤자 결국 운칠기삼이란 말인가.  

*책접기 

"그들은 역사와 공동체, 기회, 유산의 산물이다. 그들의 성공은 예외적인 것도 신비로운 것도 아니다. 그들의 성공은 물려받거나, 자신들이 성취했거나 혹은 순전히 운이 좋아 손에 넣게 된 장점 및 유산의 거미줄 위에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을 성공인으로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요소였다. 아웃라이어는 결국, 아웃라이어가 아닌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동안 한국 소설을 읽지 않다가 다시 좀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요새 누가 잘 나가는지 봤더니 박민규, 김연수, 성석제, 김영하 등이 대세인 것 같았다. 별 기대 없이 일단 맛만 살짝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 했다가 박민규한텐 나름 꼽혔고, 이 책도 일종의 맛보기용으로 주문했다. 달착지근하고 말랑말랑한 연애소설류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낯 간지런 책 제목과 표지 디자인, 뒷면의 독자 서평 등이 별로 끌리지 않아 책장에서 꽤 오랫동안 굴러 다녔는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이것들이 마치 가벼운 연애 소설인 척 독자들을 낚기 위한 떡밥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대한민국사>이후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줄 달달한 기분 전환용으로 골랐는데 웬걸, <대한민국사>를 읽었을 때보다 오히려 마음은 더 무겁고, 어쩌면 이 책을 읽으려고 내가 <대한민국사> 시리즈를 읽었나 할 정도로, <대한민국사>에 언급된 거의 모든 근현대사 - 일제시대 소작쟁의, 징병,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해방, 간첩조작, 광주학살, 6월 항쟁, 기자 해직, 해적 출판, 분신 정국, 김근태,권인숙 고문사건, 전대협 대표 방북, 간첩 조작, 파독 광부,간호사 등등- 나아가 나치학살, 라지브 간디 피살, 베를린 장벽 붕괴까지, 폭력적인 체제의 파도에 휩쓸린 조개껍질 같은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네 쌍 -나와 정민, 이길용과 상희, 베르크씨와 안젤라, 강시우와 레이- 의 표면적 사랑 이야기 외에도 등장 인물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나도 '나'처럼 이 책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지 깨닫고 깜짝 놀랐다고나 할까.   

솔직히 처음엔,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위해, 등장 인물들의 삶을 굵직굵직한 한국 근현대사에 너무 인위적으로 끼워 맞춘 듯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며 읽었지만 뒤로 갈수록 그런 거부감은 사라지고, 후반부엔 나름의 반전(?)까지 더해지며 오히려 뒤로 갈수록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보기 드문 작품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왠지 코바늘 레이스 뜨기가 떠올랐다. 김연수는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그만의 섬세한 코바늘 기술로 하나의 촘촘한 레이스를 완성했다. 작품 속 인물들이 그러하듯, 우리 모두 촘촘히 연결되어 떠졌고, 지금도 떠지고 있는 역사라는 거대한 레이스. 그 레이스의 폭력 속에서, 모든 것이, 자신의 정체성조차 모호해져버린 한 남자의 희비극적 삶과 연결된 나. 어쩌면 그 자리에 내가 떠질 수도 있었다는 우연성에 대한 오싹한 공포. 그래서 이 작품은 아무래도 내게 거대한 레이스 코뜨기의 이미지로 기억될 것 같다. 

한홍구식의 표현이라면, 이 책은 '경대친구' 세대인 작가가, 소설의 '나'를 통해 '한때 내가 살았던 어떤 뜨거운 시절에게' 던지는 작별인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한 번을 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잊지말자는 메세지와 함께.   

체제와 폭력, 역사와 인간, 사랑과 희망을 생각케 하는 좋은 책이었다.  

*책 접기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 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인생은 광활하고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무한한 삶,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일생, 즉 하나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쳐버렸을 것이다"   

"전태일의 친구들 사이에 내 자리가 없듯이 느티나무회에도 너를 위한 자리는 없는 거지.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  

"그의 삶은 세차게 밀려오는 새로운 시대의 파도에 본의 아니게 휩쓸린 조개껍질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 무슨 의지가 있었겠으며, 만약 아무런 의지가 없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프락치 활동을 했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런 논리로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1980년대식의 죄의식일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런유의 사랑이란 누구에게든, 어떤 식으로든 연민을 배설해야만 견딜 수 있는 시대의 소산에 불과한 것이라고"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번 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때로 그들은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 다른 세계다.....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미 FTA나, 부대 총기 사고, 삼성과 중앙일보 대화 도청 등 비교적 최근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어 외려 더 낯선 느낌과 - 무심하게 지나쳤으니 옛날 일이라 몰랐다 할 수도 없다- 저자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민간인 학살, 병영 국가, 국가 보안법, 사학 비리, 박정희 정권 등에 대한 나름 심화학습 외에도 -주제가 자꾸만 중복되다 보니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아 있으나, 아예 심화학습이라 생각하고 관련부분들은 전편들을 찾아 다시 읽었다- 4부 '그때 그 사람들'을 통해서, 암흑의 8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저자 표현대로 너무나 과도한 시대의 짐이 지워졌던 386세대의 한 사람으로서의 개인적 소회랄까 응어리랄까, 현장에 있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복잡다단한 심경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편이었다.-개인적으로는 다소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이 부분이 책의 전체적 통일성을 해친다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대한민국사 시리즈를 모두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새로운 사실들, 새로운 인물들, 새로운 관점들을 접하게 되어, 좀 과장하자면 심봉사 눈 뜨이는 식의 충격적 재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대한민국이 부끄럽고 한심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 왜 사람들 -특히 대부분의 소설가들- 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될까 하고 신랑이 말하길래, 아마도 나의 지난날을 똑바로 안다는 것, 내 조상들의 지난날을 똑바로 안다는 것은, 내 정체성과 바로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고향을 그리워하듯 자연스레 역사로 관심이 기우는 것은 아닐까 하고 답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스스로도 알려 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현대사.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고 지금도 진행 중인 대한민국 현대사. 솔직히 책 몇 권 읽었다고 내 삶의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작해야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면, 관심을 좀 더 가지는 정도나, 한 번 쯤 의심해 보고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는 정도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한민국사 시리즈가 내게 준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우리의 부끄럽고 아픈 역사 속에서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일제에, 미군정에, 군사 정권에 희생되고 투쟁하신 많은 분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싸우고 있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께 빚지고 살고 있다 죄스런 마음을 지니게 해 준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로알드 달 지음, 권민정 옮김 / 강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이번 단편집은 전작 <맛>과 <세계챔피언>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조금 더 무겁고 어두운 색깔이랄까. 아마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 깊었던 작품인 '백조'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이유없는 억압과 폭력이 주는 섬뜩함과 그에 대항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피터가 상황을 벗어나는 엉뚱하고 환상적인(?) 마무리는 영화 <구타 유발자들>에서 벌어지는 묻지마식 폭력과 복수, 그리고 전작 '달리는 폭슬리'에서 묘사 되었던 무자비한 권력자를 연상시키면서 폭력과 억압, 해방, 복수 같은 단어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 외에도, 폴 오스터의 <공중 곡예사>와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한,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 아, 진짜 날마다 촛불 보고 집중력 연습하면 투시력이 생길 것만 같다. 미친 척 하고 한 번 도전해 봐?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그럴 듯하게 썼다.- 달이 소설 소재를 수집하는 방식을 짐작케 하는 '밀덴홀의 보물', 옛날에 어디 영환지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혹시 아니면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 '동물들과 이야기하는 소년', 로알드 달이 작가가 된 계기와 소소한 발견 -'달리는 폭슬리'가 작가 자신이 학창시절 경험한 이야기며, <나의 삼촌 오스왈드>에서 등장한 럼주 통에서 썩어간 시체 에피소드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한 이야기- 의 재미를 주는 '행운'등 모든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고른 수준으로 재밌고,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삼촌 오스왈드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맛>에서 제일 재밌게 읽었던 단편이 '손님' 이었고 그 주인공이었던 오스왈드가 주인공이라 해서 성인용 장편에 대한 부푼 기대와 함께 당장 읽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천하의 난봉꾼 청년 오스왈드가 엄청난 돈을 벌게 된 모험과 성공담이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돈벌이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는지, 물론 지금에야 비아그라니 인공수정이니 하는 개념들이 아주 익숙한 시대지만, 잘 모르긴 해도 이 작품이 씌어졌던 1940-1950년대에는 생소한 분야였을텐데 말이다. 이 기발한 착상으로 그럴듯 하게 썰을 풀어 나가는 달은 역쒸, 타고난 사기꾼(?) 기질의 소유자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워낙 소재가 기발한지라, 이 책은 소재에서 칠팔십은 먹고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비록 달의 다른 작품들처럼 재밌게 술술 읽히기는 하지만, 이 기발한 돈벌이 계획이 독자들에게 공개된 이후에도 여전히 긴장감을 조성하는 치밀한 구성이라든가, 다양한 이야기 전개, 남자 둘과 여자 하나로 이루어진 팀 속에서 어느 둘이 편 먹고 튀는 예상된 배신등에 있어 아쉬운 점도 많다. 철저하게 부도덕한 이 신흥백만장자의 자질을 고루 갖춘 주인공을 한 방 먹이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닌 어정쩡한 결말도 그렇고 말이다.  

대신 덤으로, 책에 등장한 수 많은 위인들과 그들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프로이드를 '농담거리'부류에 넣는다거나, 조셉 콘라드를 만난 사람들 중 제일 착한 사람으로 묘사한다든가, 동성애자이며 속물이고 반유대주의자, 허영심이 강한 프루스트에 대한 비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엉뚱한 일을 해내는 재주, 멋진 묘기를 부릴 줄 아는 감각, 재빠르게 행동하는 용기, 철저한 부도덕성. 이런 것들이 백만장자가 되기 위한 자질이라는데, 어디가서 좀 배우고 싶다. 나도 즐겁고 남도 즐거우면서 돈 벌 수 있는 방법도 말이다. 오스왈드처럼 마음껏 즐기며 살고 싶은 이 강한 욕구를 어찌하리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