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오류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토머스 키다 지음, 박윤정 옮김 / 열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느낌은, 내용을 떠나 구성면에서 꽤 짜임새 있게 잘 써진 책이란 것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책들이나, 더욱 흔하게는 다큐멘터리, 특히 한국 다큐멘터리를 보면, 부분 부분은 흡인력 있게 진행 되다가도, 다 보거나 읽고 나면, 그래서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라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한 마디로 각 부분들이 전체를 향해 일관성 있게 나아가지 못하고 따로 따로 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반면 이 책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독자에게 확실하게 전달되도록 잘 구성되어 있고, 6가지 생각의 함정들을 뒷받침하는 근거들도, 재밌고 풍부한 사례와 연구 결과들로 채워져 있다. 

 

구성 뿐 아니라, 내용 자체도 '뭐야, 이런 게 다 있었어?' 할 정도로 완전 새롭진 않지만,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생각의 오류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았다. 제목도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드는게, 책의 내용이 제목 한 줄에 모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생각의 오류>인 것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실들보다,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사실들이 우리를 더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으므로, 이런 생각의 오류들을 살펴보고, 좀 더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게 저자의 집필 의도가 아닐까 한다. 저자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생각의 함정 6가지를 따라가다 드는 생각 두 가지. 

 

-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내 생각과 기억마저 믿을 수 없다면, 도대체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  

- 정확한 수치는 잊어 버렸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판단은 옳고 남들은 틀렸다고 생각 한다고 한다. 나 역시도 겉으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연하게 대하면서도, 맘 속엔 그래도 내 생각이 맞다는 고집이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마침 이번 북한 사태에 대처하는 가까운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과 책 내용을 연관지어 보다보니, 집단 구성원 대다수의 생각이 아니라고 해서, 소수 의견을 은연중에 무시하고, 은근히 비아냥 거리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의 독단적인 모습과 나 자신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집단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던지, 자기 생각에 의문을 품기보다 확신하려 드는 인간의 본성과 같은 이 책의 내용이 내 생활을 되돌아 보게끔 하는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된 것이다.     

 

어쨌든, 책을 다 읽고 나서 정작 내 맘에 와 닿는 부분은 여기다.    

"심리학자 로버트 아벨슨의 말처럼, 우리 믿음은 소유물과 같다. 우리가 물건을 사는 이유는 그것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믿음을 간직하는 이유는 흔히 이 믿음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 때문이 아니라, 이 믿음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예전엔 세상의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요즘엔 내안의 진실이 무엇인지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이렇게 뜬금없는 결론이 나버리니, 책을 일관성 있게 아무리 잘 써 놓은들 무엇 하리오, 제 멋대로 받아들이는 독자들 천지이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펭씨네 가족
케빈 윌슨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대한 아주 좋은 리뷰를 어느 블로그에서 본 신랑의 요청으로 주문했으나, 결국 신랑은 읽지 않고나만 읽게 된 책. 어디가 그렇게 좋았던지 그 리뷰를 한 번 찾아 보고 싶기도 한 책. 결국 나만 낚였다(?) 는 느낌이랄까?

 

제목대로 행위 예술가인 팽 씨네 부부와, 어렸을 적 부터 그들 부부의 기이한 작품 활동의 도구가 되면서 성장한 아들 딸에 관한 이야기인데, 공공 장소에서 온 가족이 이상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와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 그 상황 속에 놓여진 대중의 반응을 비디오로 기록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그들의 독특한 행위 예술 자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 그들 부부의 예술관에 대한 깊은 할애없이 표면적인 퍼포먼스들만 몇 개 나열됨-  전체적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지 못했고, 따라서 이런 행위 예술로 인해,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엄청나게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부모의 예술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 자식들의 방황하는 삶을 향해서도 시종일관 빈정거림의 태도를 유지했던 것 같다.

 

줄거리 전개만 놓고 본다면, 그나마 후반부 부모가 실종 되면서 뭔가 추리 소설적 재미를 주며 또 다른 반전과 결말을 살짝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으나, 그런 것 보다는, 부모의 실종 사건에 대처하는 남매의 심리와 행동 묘사를 통해, 부모를 증오하고, 그들의 피해자이면서도, 어느 새 부모의 양식을 따라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과, 부모와의 관계를 진정으로 극복 해야지만, 자기 자신들만의 예술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다소 틀에 짜인 결말로 끝이 나더구만. 

 

솔직히 나는, 예나 지금이나 행위 예술은 낯설고, 어렵다. 미국엔 정말 팽씨 부부같은 극단에 다다른 사람들이 있는 건지도 궁금하다. 자신의 삶 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 예술가의 대단한 열정이라 경탄해야 할지, 삶에 대한 진정성을 어설픈 예술이란 이름으로 모독하는 또라이 같은 짓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암튼, 그 매개가 예술이든, 폭력이든, 지나친 사랑이든, 무관심과 학대든간에,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행사하는 권력의 그 엄청난 파괴력이 무섭고 싫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때로는 키들 키들 거리며, 때로는 눈물 뚝 뚝 흘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옹점이와 대복이, 할아버지, 복산이, 석공 등이 살고 있는 관촌으로 시간 여행을 훌쩍 다녀 온 기분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고향에 실존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몰라도, 바로 곁에서 지켜 보는 듯, 관촌의 모습과 인물 한 명 한 명의 삶이 너무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역사책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왠지 몰라도 읽는 사이 사이, 예전 TV 문학관의 희미한 농촌 이미지들이 언뜻 언뜻 떠올랐고, 한국적인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를테면 이런 작품을 두고 한국적 혹은 토속적이라고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생동감있는 인물 표현과 뛰어난 배경 묘사에 덧붙여 이 작품을 빛나게 하는 점이라면 단연코 아름다운 문체를 꼽을 수 있는데, 솔직히 문장의 60퍼센트 정도라도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작정하고 제대로 읽을려면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모르는 어휘를 하나 하나 찾아가면서 읽어야 될 만큼, 생소한 고어들과 순우리말, 사투리가 많이 쓰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다 이해하지 못한 채 단어들이 풍기는 전체적인 느낌만 가지고 어림짐작 읽는데도 이렇게 좋은데, 뜻을 완벽히 알고 읽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맘에 아쉽기도 했고, 또 우리말을 이렇게 아름답게 빚어낼 수 있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백산맥>의 전라도 사투리가 벌교 꼬막처럼 꼬들꼬들하니 참 맛깔나다는 생각을 했는데, <관촌수필>의 충청도 사투리도 그 못지 않았다고나 할까. 

 

떠나온 고향도 없고, 보고픈 사람도 없고, 가난이나 징병, 전쟁, 농사 같은 건 아예 겪어 보지도 못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국적인 그 무엇, 혹은 인간적인 그 무엇을 향한 애잔한 그리움과 향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 또 팔이 안으로 굽는 애정같은 감정들을 내도록 자아내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 또 모르긴 하겠다. 순수함이란 차원에서 그것이 오히려 이 작품의 미덕이 될지도- 봉건 질서가 무너져가는 과도기, 관촌 마을 전체의 도련님으로 귀하게 자란 주인공이 성인이 되어 돌아보는 고향과 고향 사람들에 대한 시선은 이렇다할 정신적 성장이나 깨달음없이, 시종일관 어린 왕자님으로서의 개인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화/근대화 이전의, 인정이 살아 있고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로웠던 농촌에 대한 그리움은, 결국 자신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행복했던 잃어버린 과거와 자신의 곁을 충직하게 지켜주던 사람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일 뿐, 그 속에 내재된 불합리한 신분 제도나 이웃들이 겪어야 했던 시대적 아픔과 고통 등에 대한 사유는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겐 이 이야기가 결국, 어느 도련님의 행복했던 과거 회상기에 그치는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
이승수 지음 / 산처럼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예전엔 독서 에세이도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특히 내가 읽은 책이 언급되는 경우, 책에 대한 나 자신의 느낌과 저자의 그것을 비교해 보는 짭짤한 재미가 있다. 내가 읽지 못한 책이라 하더라도, 저자를 통해  새로 흥미를 갖게 되거나, 전혀 몰랐던 좋은 책들을 소개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최근엔, 왠지 이 책 저 책 주섬주섬 주워 삼긴 남의 독서 감상문을 읽느니 차라리 그 시간과 노력으로 나만의 온전한 책 한 권을 읽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들고, 독서 에세이에 언급된 모든 책들을 다 읽은 정도의 충분한 독서량을 가져, 저자의 감흥에 100프로 공감하고 반감할 경지(?)에 다다를 때 까진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그닥 관심이 없던 차에 지인의 선물로 오랜만에 읽게 된 독서 에세이. 

 

다 읽고 역시나 같은 결론에 이르긴 했지만, 오며 가며 부담없이 가볍게 훌쩍거리기엔 괜찮을 듯 싶기도 하다. 중국 고전이나 국문학 등이 많이 등장하는 게 특색이라면 특색이랄까, 제목 처럼 인생사 하나 하나, 인간 오욕칠정 마디마디가 바로 문학이 탄생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해당 작품과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 같은데, 인생과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혹은 개별 작품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비평 보다는 대체로 두루뭉술한 여성적 감수성만으로 접근한 듯한 인상이어서, 개인적으로 별로 와 닿은 부분은 없었다. 

 

* 책 접기

" 지나고 나면 한 사람의 영웅이 남고 수많은 아픔이 묻혀버리는 것, 그것이 전쟁이다."

"남의 자유와 풍류를 빼앗는 일이 아니라면, 죽을 때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한 자락 풍류이다. 때로 가난하고, 고달프다 해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엔 그저 못생기고 뚱뚱한 한 찌질이 남자의 성장과 사랑이야긴가 보다 하고 심드렁히 읽기 시작했는데 뒤로 갈수록 윤곽이 드러나는 오스카 집안의 3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가족사와, 그 뒤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트루히요를 비롯한, 이 모든 사건들의 실질적 원인이 된 시대적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소설은 단순 애정 소설을 넘어 역사 소설로 탈바꿈한다. 

 

신기한 건, 이름조차 낯선 서인도 제도의 작은 나라를 배경으로 한 중남미 작가 -국적이 미국이니 미국 작가라고 해야 하나? 암튼- 의 소설이 너무도 친근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지명등만 스페인어로 되어 있을 뿐, 무대를 한국으로 고스란히 옮긴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시대적 배경과 정서가 우리와 닮았다고 느꼈다.

 

트루히요라는 군부 출신 독재자의 장기 집권, 독재자 일가의 폭정, 무력한 법과 질서, 실종과 암살, 무차별적 폭력과 고문, 권력에 빌붙은 경찰과 깡패, 국민들간에 팽배한 불신과 상실감, 아이티와 스페인이라는 외부 세력의 침입과 식민지 역사, 미국의 개입, 그로 인한 디아스포라 등등. 주요 플롯은 또 어떤가. 한 때는 명문가였던 한 집안의 삼대에 걸친 몰락, 남자를 통한 탈출 시도와 계속되는 실패, 그 모든 비극의 원인조차 모른 채, 그저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살아가는 후손들. 책을 읽는 동안 박경리의 토지를 비롯해 이런 저런 한국사 책들과 한국 소설들이 언뜻 언뜻 떠올랐다.  

 

온갖 비주류적 요소의 총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오스카 와오, 그가 만약 진정한 자존감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그의 어머니가 그랬듯, 여자에게 모든 걸 걸지만 않았다면 - 물론 인류의 영원한 정답인 사랑의 가치를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 어쩌면, 길고 더더욱 놀라운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오스카의 할아버지, 어머니, 누나 그리고 그 자신까지, 그들 모두의 선택을 십분 백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독재자가, 시대가, 그리고 역사가 개인에게 미치는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게 잘 보여준 역량은 아마 그 자신 변방을 떠도는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도미니카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연민과 애정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 그리고 벨라의 딸에게 거는 작가의 진심 어린 희망이 우리에게도 역시 통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어쩌면, 만약이지만 어쩌면, 내가 기대하는 만큼 이시스가 똑똑하고 용감하다면 아이는 우리가 겪고 배운 모든 것을 소화하고 고유의 통찰력을 보태 이 비극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그게 바로 사기가 충천한 날들이면 내가 소망하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의기소침하거나 처연한 날들에 대한 이야기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맨해튼 박사가 우리의 우주에서 스러지기 전에 대답한다. "결국이라고? 결국이란 없어. 아드리안. 세상에 진정한 결말이란 없거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