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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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때로는 키들 키들 거리며, 때로는 눈물 뚝 뚝 흘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옹점이와 대복이, 할아버지, 복산이, 석공 등이 살고 있는 관촌으로 시간 여행을 훌쩍 다녀 온 기분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고향에 실존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몰라도, 바로 곁에서 지켜 보는 듯, 관촌의 모습과 인물 한 명 한 명의 삶이 너무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역사책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왠지 몰라도 읽는 사이 사이, 예전 TV 문학관의 희미한 농촌 이미지들이 언뜻 언뜻 떠올랐고, 한국적인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를테면 이런 작품을 두고 한국적 혹은 토속적이라고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생동감있는 인물 표현과 뛰어난 배경 묘사에 덧붙여 이 작품을 빛나게 하는 점이라면 단연코 아름다운 문체를 꼽을 수 있는데, 솔직히 문장의 60퍼센트 정도라도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작정하고 제대로 읽을려면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모르는 어휘를 하나 하나 찾아가면서 읽어야 될 만큼, 생소한 고어들과 순우리말, 사투리가 많이 쓰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다 이해하지 못한 채 단어들이 풍기는 전체적인 느낌만 가지고 어림짐작 읽는데도 이렇게 좋은데, 뜻을 완벽히 알고 읽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맘에 아쉽기도 했고, 또 우리말을 이렇게 아름답게 빚어낼 수 있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백산맥>의 전라도 사투리가 벌교 꼬막처럼 꼬들꼬들하니 참 맛깔나다는 생각을 했는데, <관촌수필>의 충청도 사투리도 그 못지 않았다고나 할까. 

 

떠나온 고향도 없고, 보고픈 사람도 없고, 가난이나 징병, 전쟁, 농사 같은 건 아예 겪어 보지도 못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국적인 그 무엇, 혹은 인간적인 그 무엇을 향한 애잔한 그리움과 향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 또 팔이 안으로 굽는 애정같은 감정들을 내도록 자아내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 또 모르긴 하겠다. 순수함이란 차원에서 그것이 오히려 이 작품의 미덕이 될지도- 봉건 질서가 무너져가는 과도기, 관촌 마을 전체의 도련님으로 귀하게 자란 주인공이 성인이 되어 돌아보는 고향과 고향 사람들에 대한 시선은 이렇다할 정신적 성장이나 깨달음없이, 시종일관 어린 왕자님으로서의 개인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화/근대화 이전의, 인정이 살아 있고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로웠던 농촌에 대한 그리움은, 결국 자신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행복했던 잃어버린 과거와 자신의 곁을 충직하게 지켜주던 사람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일 뿐, 그 속에 내재된 불합리한 신분 제도나 이웃들이 겪어야 했던 시대적 아픔과 고통 등에 대한 사유는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겐 이 이야기가 결국, 어느 도련님의 행복했던 과거 회상기에 그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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