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지 않으면 떠날 수 있다 - 나를 찾아가는 사랑과 희망 여행
함길수 글.사진 / 터치아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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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은 보통 특별히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흔하디 흔한 해외여행을 아직도 한 번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무조건 '해외'라면 아무데나 좋으니 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끌리는 해외는 그냥 '아무데나'가 아니라는 걸 최근 몇 년 동안 책을 읽고서야 깨달았다. 찬란한 건축문화를 뽐내는 유럽도 물론 가고 싶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오지에 더 끌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오지여행을 견뎌낼 체력도 인내심도 바닥수준이면서 말이다.

 책을 온라인에서 처음 보고 제목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목차를 살펴보니 더더욱 나를 잡아 끈다. 라오스, 케냐,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인도 등 여행지 목록이 참 마음에 든다. 그런데 작가 이름이 너무나 낯익다. 그가 누구인지 떠올리려고 한참을 애썼다. 결국 기억이 나지 않아 검색의 힘을 빌렸지만 언젠가 '지라니합창단' 기사에서 보았던 이름이었다. 이 책을 쓴 작가 함길수가 지라니합창단의 후원자로서 인터뷰를 한 기사였다. 세계 3대 슬럼가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케냐 고로고초 지역의 아이들을 모아 꾸린 지라니 합창단은 우리 나라에서도 몇 번 공연을 펼친 바 있는 나름대로 이름난(?) 합창단이다.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지라니합창단 이야기를 조금 더 읽고 싶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라니합창단에 관한 분량은 몇 장 되지 않았다. 언제 나오나 읽는 내내 기다리기는 했지만 그러면서 읽어내려간 앞부분의 이야기들도 나쁘지 않았다. 이 책은 여행지의 정보를 전달하는 책은 아니다. 물론 여행정보만을 담고 있는 여행기는 없지만 이 책은 순전히 작가의 감상만을 위주로 삼은 책이다. 그래서 여행기라기보다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통해 명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여기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자연과 한몸이 되어 사는 사람들이다. 궁핍한 삶의 한 가운데 자리한 이들이지만 표정만은 하나같이 맑고 순수하기 그지없다. 특히 고단한 생활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해맑게 웃는 이들은 다름아닌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내 속에 들어앉아있는 욕심을 조용히 내려놓게 된다.  

나는 사진을 전혀 모른다. 하지만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사진을 보면서 했던 생각은 만약 내가 작가와 똑같은 곳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게 된다면 과연 어떤 사진이 나올까였다.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과 비교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적어도 무얼 찍었는지는 견줘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동일한 피사체를 찍더라도 그걸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도 조금은 작가의 시선과 마음에 동화가 된 것인지 왠지 나 역시 그들을, 그들이 몸담고 사는 풍경을 작가와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를 찾아가는 사랑과 희망 여행. 지금껏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찾는 여행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근사한 볼거리에 눈과 마음을 빼앗겨 나를 잊는 것보다는 꾸미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 본연의 순수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 훨씬 뜻깊은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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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줄, 일상의 즐거움
헬렌 니어링 엮음, 권도희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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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태주의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 권해줘서 읽었던 니어링 부부의 책을 읽고 그들 삶의 방식에 무척 감명을 받았었다. 그 뒤로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이들의 책도 읽게 되는 계기가 됐었다. 그런데 지금은 니어링의 책을 마지막으로 읽은 게 언제였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이 책은 헬렌 니어링이 그동안 자신이 읽었던 책에서 발췌한 글을 엮은 것이다. 전원 생활의 기쁨, 노동에서 오는 즐거움, 검소한 생활과 절약, 밭 가꾸기와 흙, 고독과 만족 등 열다섯 개의 분류 아래 새길 만한 구절들을 실었는데 헬렌 니어링이 어떤 글들에 감명을 받았는지를 한눈에 알게 된다. 또 그 글들은 다름 아닌 바로 헬렌 니어링 자신의 삶 자체이기도 하다.

 

p.16

시골 사람은 가족에게 필요한 물건을 상점에서 사거나 시장에서 장을 보아 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그가 먹는 양식은 항상 자신의 곳간에서 꺼낸 것이고 제철 음식이다. - 돈 안토니오 데 게바라,  <시골 생활의 행복에 대한 찬미>

 

p.171

멀리 산을 넘고 들을 건너 독특한 대리석이나 화강암을 구해오는 사람이 개성 있는 집을 짓는 것이 아니다. 정말 개성 있는 집을 짓는 이는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그 고장 특유의, 지금은 잊혀진 석재를 캐내 집을 짓는 사람이다. - 에드윈 본타, <집 짓기 입문서>

 

수년에 걸쳐 돌로 집을 짓고 그 곳에서 소박하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 니어링 부부가 이런 글귀를 만날 때마다 얼마나 큰 기쁨을 느꼈을지 생각하면 나 역시 벅차오른다. 책을 통해 본 그들 삶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것은 단지 자연과 최대한 닮아 있고, 자연을 최대한 덜 훼손하고, 물 흐르듯 자연의 순리에 몸을 내어 맡기는 삶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웅장한 건축물이나 예술적으로 가치있는 저명한 화가의 명화도 아니라 봄이면 꽃 피고 가을이면 단풍드는 자연 그 자체가 아닌가. 이 위대한 자연에 가장 닮아있는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입버릇처럼 귀농을 말하는 남편, 그 말에 언제고 그러마고 말했던 적이 한.때.나.마. 있었던 나이지만 이미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내가 과연 그들의 조화로운 삶을 본받아 실천할 수 있을까. 책 속에 모아놓은 구절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였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맞아. 나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며 반성하고 동경했다. 꿈꾸던 시골 생활은 내 삶이 다하도록 먼 꿈에 그치고 말지라도 절제하면서도 만족하는 삶을 살게 하는 지침을 이 책이 제공해준다.

 

그런데 이 책에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지금껏 우리 나라에서 출간된 니어링의 책들은 모두 재생종이였다. 그런데 어찌된 게 이번 책은 고급스러운 종이에다 다채로운 색의 삽화를 넣었고, 게다가 표지는 비닐로 덮여 광택이 나는 양장본이다. 이 책의 원서는 어떨까 찾아봤는데 그럼, 그렇지. 우리 나라에서 번역출간되면서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종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원서<Wise Words for the Good Life>(1999))) 헬렌 니어링이 알면 크게 노할 것이다. 예쁘게 물든 낙엽을 주우면 재생지로 된 책에다 넣고 말려야 곱게 마른다. 그래서 주로 니어링의 책에다 꽂곤 한다. 책갈피 줄이 붙어있긴 하지만 이 책만큼 단풍든 낙엽으로 된 책갈피가 어울리는 게 없는데 아쉽게도 이런 종이에는 아무것도 꽂을 수가 없다.

(내용은 별점 5점인데 종이가 이 따위라서 별 하나 빼고 말았다. 출판사 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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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 살아가는 동안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루프레히트 슈미트.되르테 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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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연명의술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최대한 베푸는 봉사활동. 또는 그러한 시설.

'등대의 불빛'이라는 뜻의 로이히트포이어 호스피스에는 특별한 요리사가 있다. 루프레히트 슈미트. 그가 호스피스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손님'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루프레히트는 아침마다 병실을 돌면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 묻는다. 사실 그곳 사람들은 그다지 배고프지 않다. 먹는다 하더라도 소화시킬 힘이 없어 토해내기 일쑤다. 하지만 먹고 싶은 음식을 기억해낸다는 것은 마지막 순간을 앞둔 그들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먹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행동일 테니까 말이다.

 






p.102
 
"먹는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예요! 먹을 수 있는 한 숨을 쉬고 자신을 느낄 수 있죠. 먹는 것은 우리 실존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예요."



  





p.142
 
스스로 무엇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죽음을 앞둔 이들의 자존감을 북돋우는 경험이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다른 사람의 뜻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위안이다.



 

하지만 루프레히트가 호스피스 입주민들에게 위안을 준 방식은 음식 대접뿐만이 아니다. 그의 기억에 남아있는 핀란드 출신의 노부인과의 사연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 부인은 호스피스에 들어올 당시 정맥주사로만 영양을 취했고 아무것도 삼킬 수 없었다. 그녀를 위해 자신이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자 너무나 아쉬웠다. 그는 실패와 노력 끝에 노부인에게 '핀란드 탱고' 음악을 담은 시디를 선물했고, 그 음악의 연주자가 마침 그 노부인이 좋아하는 연주자였던 것이다. 너무나 감동한 노부인은 친구를 통해 구한 핀란드 술을 요리사에게 선물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며칠 뒤 그 노부인은 세상을 떴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추억을 들추어 낼 수 있는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했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어떤 면에서 호스피스에서 요리사는 단지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람만은 아닌 듯하다. 음식을 통해 그동안의 삶을 돌이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어디 있을까. 그것은 꼭 음식이 아니라 음악이나 향기, 또는 하다못해 돌멩이 하나라도 충분할 것이다. 이 요리사는 자신이 대접하는 음식이 하는 입주민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태도는 참 다양하다. 초연한 사람, 우울해하는 사람, 격하게 분노하는 사람, 냉담한 사람, 블랙 유머로 일관하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

그곳에 머무는 '손님'들과 그 가족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호스피스의 '손님'이 된다면 어떤 사람이 될까. 요리사 루프레히트는 이 곳에서 수년간 일하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또 아침이면 촛불이 켜져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일 정도로(촛불이 켜져있으면 간밤에 세상을 등진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한 뜻이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숱하게 보아왔다. 나처럼 그도 죽음 앞에서 어떤 감정이 될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p.68
 
"때로 나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해보려고 해요. 하지만 상상은 한계가 있어요. 그건 그냥 상상일 뿐이죠. 사색에 불과해요. 나는 그럴 경우 공황 상태에 빠지는 대신 침착하길 바라죠. 모두가 그러기를 바라겠지만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 언제가 다할 것이라는 생각을 까맣게 잊고 산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 읽은 책을 통해 나는 생명을 부여받고 삶을 산다는 사실에 격하게 감사했다. 나를 포함해서, 자신의 삶에 늘 100%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지금 당장 내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감사하게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내가 누리고 있는 삶에 상당 부분 만족하고 살고 있다. 마치 이것이 영원할 것처럼 말이다. 인생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산다면 감사하는 만큼 1분 1초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p.120
 
우리의몸 속에 어느 날 멈춰설 게 분명한 시계가 째깍거리고 있지 않는다면 인생은 지옥일 거예요.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삶의 의욕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요."



 

 이쯤 되면 궁금해질 것이다. 요리사 루프레히트가 어떤 사람인지. 입주민과 그 가족들을 대하는 그의 섬세한 배려심은 너무나 감명 깊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속칭 '잘 나가는' 요리사인 그가 돌연 호스피스에 자리잡은 까닭이 무엇일까. 책을 읽는 내내 그가 호스피스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너무나 궁금했다. 아주 짧게 언급되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던 루프레히트의 배경에는 부모님의 훌륭한 가르침이 있었다 

 





p.168
 
루프레히트는 동료가 실수하면 속으로 비웃고 고소해하는 것이 어째서 가장 큰 즐거움처럼 되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손에 손을 맞잡지 않고 서로 적대적으로 일을 하는가.



  





p.170
 
"어릴 적 남을 밟고 성공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배웠어요. 싸우고 다투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요. 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어떤 투쟁의 파편 없이 전진하는 것! 그것이 젖먹이 시절부터 부모님 집에서 내면화한 태도였어요."



 

 책 내용이 워낙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경건하게 생각하게 만들다보니 아이가 잠자는 밤시간에 읽느라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마치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마냥 지금 내게 주어진 1초의 시간도 헛되이 쓰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생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며칠을 더 살지는 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 어쩌면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은 교만일지도 모르겠지만 삶의 끝이 언제인지 안다면 그것만큼 긴장감 없는 드라마가 있겠는가. 언제가 끝인지 모른다는 것은 당장 내일이라도 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매 시각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충만하게 가꾸어야 한다. 너무 식상한가?  하지만 늘 그렇듯 진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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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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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전작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올 가을 쯤에 읽었었다. 세칭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는 이어령이 딸의 영향으로 무신론자에서 크리스천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담은 책이었다. 나이 칠십이 넘어서 종교에 귀의하게 된 그 속사정이 궁금하여 아버님께 권하시는 책을 받아들었었다. 사실 이전까지 읽어본 이어령의 책이라곤 <젊음의 탄생>이 유일했다. 만족도가 썩 높지는 않았지만 그 책을 읽고서야 왜 사람들이 이어령, 이어령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독서량도 많고 박학다식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걸 계기로 이어령이라는 작가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번에 나온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에도 그래서 손이 가게 되었다. 더군다나 제목에서 주는 느낌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제목에 낚였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사실 엄마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의 고향이자 생명의 근원인 엄마라는 존재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일 것이다. 특히 나는 10년 전 엄마가 돌아가셔서 그 그리움의 깊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제목에 엄마와 관련된 단어가 포함되면 여지없이 집어들게 된다.

 

책은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 1장이 바로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이다. 다음 장에서는 작가의 사색이 담긴 글들, 문학인으로서의 회고, 라디오에서 한 인터뷰 전문이 이어진다. 작가가 열한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무척 애틋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회상하는 글들이 내 마음을 후벼팠다. 1930년대 출신인 작가가 말하는 어릴 적 고향 모습과 경험들은 요즘 사람들에겐 좀 낯설 수도 있겠지만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는 오히려 익숙했다. 특히 작가가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 갔던 외갓집 부근의 풍경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우리 외갓집 풍경과도 닮아있었다. 이제는 엄마도 안 계시고, 외할머니도 안 계신데다 나는 결혼한 이후 어릴 적 살던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서 일부러 여행을 계획하지 않으면 다시는 갈 수 없는 외갓집이 돼버렸다. 작가의 어릴 적 경험은 분명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기억 저편에서 잠자고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 내게 한다.

 

나는 여태껏 이어령을 문학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실제로 그의 소설이나 시가 있는 줄도 몰랐다.  책의 3장은 나의 문학적 자서전에서는 어떻게 해서 문학을 하게 되었는지 고백하는 내용이다. 실제 태어난 날과 호적에 오른 생일이 다른 그는 "모든 서루에 잘못 찍힌 나의 탄생을 바로집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탯줄의 언어"였고 그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말한다. 그의 고백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12월 29일에 태어나 애먼 살 먹는 걸 안타까워한 작가의 아버지가 1월 15일로 호적에 올렸다는 것이 나는 좀 낯설게 느껴졌다. 작가보다 훨씬 늦게 태어난 내 부모님 세대에도 실제 생일과 호적 생일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작가의 경우처럼 고상(?)하지 않다. 병이 나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 몇 달 키워보다 호적에 올리거나 농사일이 바빠서 늦게 출생신고를 하면서 벌금을 물지 않으려고 날짜를 조작(?)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이 꽤 유복했다는데 아마도 그런 성장환경 때문에 당장 먹고 입고 살 문제가 먼저였던 내 부모의 어린 시절 경험담과는 너무나 달랐고 낯설게 했다.

 

사실 제목을 보고서 이 책에서 기대했던 건 얻지 못했다. 대신 마지막 장에 실린 라디오 인터뷰 내용에서 제대로 건졌다. 나에게 생명을 준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과,  그 생명의 근원에 존재하는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 누구다 아는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당연하기에 그동안 너무 무감각했던 게 사실이다. 만약 나에게 아이가 없었다면 아직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무감각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작가가 책을 내며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의도했던 것이든 아니든 어쨌든 한 권의 책을 통해 내가 무언가 가슴 깊이 느낀 바가 있고 또 그것이 내 삶을 질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면 그게 바로 독서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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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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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며, 과거의 현재에 대한 위력은 연재가 재구성하는 과거의 의미에 의하여 제한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억은 옛 친구의 변한 얼굴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대문에 그것이 추억의 생환生還이란 사실을 나중에 깨닫기도 한다.

생각하면 명멸明滅하는 추억의 미로迷路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삶 역시 이윽고 또 하나의 추억으로 묻혀간다. 그러나 우리는 추억에 연연해하지 말아야 한다. 추억은 화석같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단히 성장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언제나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 '청구회 추억'의 추억 중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영인본에 실려있다는 이 글을 단행본으로 처음 만났다. 내가 대학 때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가장 처음에 나왔던 책이다.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글과 어울리는 그림도 싣고, 영역英易으로도 나란히 실었다.

이 이야기는 신영복 선생이 옥에 갇히기 2년여 전인 1966년 이른 봄 학회 후배들의 초대로 서오릉에 답청놀이에 나갔던 경험에서 시작한다. 그 곳에서 만난 입성 초라했던 국민학교 7,8학년 아이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아이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그러나 한두 마디로 그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만한 첫마디로 어떤 말을 건넬까 궁리하는 신영복 선생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참 좋다.

 

이 짧은 한나절의 사귐을 나는 나대로의 자그마한 성실을 가지고 이룩한 것이었다. - 본문 33쪽

 

아이들과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자신들 모임 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탁도 받고 헤어진 뒤, 그러나 얼마간 그들을 까맣게 잊고 지낸다. 아이들이 먼저 보내온 정성 깃든 편지를 받아들고서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그날의 행위가 결코 장난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자체가 '한갖 장난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고백하는 모습도 너무나 인간적이다.



아이들 다니는 학교 이름을 따 '청구회'라는 모임이름을 만들어주고 매주 토요일 오후에 만나는 모임을 거의 2년동안 지속하지만 갑작스러운 구속으로 연락이 끊기면서 추억도 거의 끝이 난다.

중앙정보부의 심문과정에서 청구회의 정체와, 선생이 지어준 청구회의 노래 가사 중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는 부분이 문제가 되어 심각한 추궁을 받았던 일은 당시 우리 나라의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일화이다.

때묻지 않은 아이들과의 가슴 따뜻한 만남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이들의 선한 마음에 전염이 되고, 어리다고 얕보지 않고 진정성 가득한 태도로 그들과 어울려준 선생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보부 직원들이야 물론 이 모임의 실체를 불순한 세력의 배후조종 쯤으로 생각했겠지만 말이다.(생각할수록 실소가 나오는 대목이다. ㅡㅡ;;)

청구회에 얽힌 추억을 신영복 선생이 구속된 뒤에 옥중에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그것도 하루 두 장 지급되는 재생지로 만든 휴지에 기록했다는 점은 그만큼 그것이 소중했던 추억이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지금까지 읽었던 신영복 선생의 책들이 에세이의 형식을 띠고는 있지만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에 반해 이 책은 특정 기간 동안의 사건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구성해서  다분히 문학적인 작품이었다. 아이들과의 인연이라는 이야기 내용에 어울리게 곁들인 그림 또한 질박한 선과 먹물 번진 화선지의 느낌이 가득해서 더없이 여운이 남는다.

나는 이때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가 한창 청소년기를 거치고 있었을 사회적 배경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가 있었다. 아마도 그 분들이 읽게 된다면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현재와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서로 만나 더 의미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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