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 살아가는 동안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루프레히트 슈미트.되르테 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호스피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연명의술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최대한 베푸는 봉사활동. 또는 그러한 시설.
'등대의 불빛'이라는 뜻의 로이히트포이어 호스피스에는 특별한 요리사가 있다. 루프레히트 슈미트. 그가 호스피스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손님'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루프레히트는 아침마다 병실을 돌면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 묻는다. 사실 그곳 사람들은 그다지 배고프지 않다. 먹는다 하더라도 소화시킬 힘이 없어 토해내기 일쑤다. 하지만 먹고 싶은 음식을 기억해낸다는 것은 마지막 순간을 앞둔 그들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먹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행동일 테니까 말이다.
![](http://static.se2.naver.com/static/img/reviewitem/img_bu_02.png) |
p.102
|
|
|
"먹는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예요! 먹을 수 있는 한 숨을 쉬고 자신을 느낄 수 있죠. 먹는 것은 우리 실존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예요."
|
![](http://static.se2.naver.com/static/img/reviewitem/img_bu_02.png) |
p.142
|
|
|
스스로 무엇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죽음을 앞둔 이들의 자존감을 북돋우는 경험이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다른 사람의 뜻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위안이다.
|
하지만 루프레히트가 호스피스 입주민들에게 위안을 준 방식은 음식 대접뿐만이 아니다. 그의 기억에 남아있는 핀란드 출신의 노부인과의 사연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 부인은 호스피스에 들어올 당시 정맥주사로만 영양을 취했고 아무것도 삼킬 수 없었다. 그녀를 위해 자신이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자 너무나 아쉬웠다. 그는 실패와 노력 끝에 노부인에게 '핀란드 탱고' 음악을 담은 시디를 선물했고, 그 음악의 연주자가 마침 그 노부인이 좋아하는 연주자였던 것이다. 너무나 감동한 노부인은 친구를 통해 구한 핀란드 술을 요리사에게 선물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며칠 뒤 그 노부인은 세상을 떴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추억을 들추어 낼 수 있는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했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어떤 면에서 호스피스에서 요리사는 단지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람만은 아닌 듯하다. 음식을 통해 그동안의 삶을 돌이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어디 있을까. 그것은 꼭 음식이 아니라 음악이나 향기, 또는 하다못해 돌멩이 하나라도 충분할 것이다. 이 요리사는 자신이 대접하는 음식이 하는 입주민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태도는 참 다양하다. 초연한 사람, 우울해하는 사람, 격하게 분노하는 사람, 냉담한 사람, 블랙 유머로 일관하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
그곳에 머무는 '손님'들과 그 가족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호스피스의 '손님'이 된다면 어떤 사람이 될까. 요리사 루프레히트는 이 곳에서 수년간 일하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또 아침이면 촛불이 켜져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일 정도로(촛불이 켜져있으면 간밤에 세상을 등진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한 뜻이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숱하게 보아왔다. 나처럼 그도 죽음 앞에서 어떤 감정이 될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http://static.se2.naver.com/static/img/reviewitem/img_bu_02.png) |
p.68
|
|
|
"때로 나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해보려고 해요. 하지만 상상은 한계가 있어요. 그건 그냥 상상일 뿐이죠. 사색에 불과해요. 나는 그럴 경우 공황 상태에 빠지는 대신 침착하길 바라죠. 모두가 그러기를 바라겠지만요."
|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 언제가 다할 것이라는 생각을 까맣게 잊고 산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 읽은 책을 통해 나는 생명을 부여받고 삶을 산다는 사실에 격하게 감사했다. 나를 포함해서, 자신의 삶에 늘 100%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지금 당장 내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감사하게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내가 누리고 있는 삶에 상당 부분 만족하고 살고 있다. 마치 이것이 영원할 것처럼 말이다. 인생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산다면 감사하는 만큼 1분 1초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http://static.se2.naver.com/static/img/reviewitem/img_bu_02.png) |
p.120
|
|
|
우리의몸 속에 어느 날 멈춰설 게 분명한 시계가 째깍거리고 있지 않는다면 인생은 지옥일 거예요.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삶의 의욕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요."
|
이쯤 되면 궁금해질 것이다. 요리사 루프레히트가 어떤 사람인지. 입주민과 그 가족들을 대하는 그의 섬세한 배려심은 너무나 감명 깊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속칭 '잘 나가는' 요리사인 그가 돌연 호스피스에 자리잡은 까닭이 무엇일까. 책을 읽는 내내 그가 호스피스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너무나 궁금했다. 아주 짧게 언급되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던 루프레히트의 배경에는 부모님의 훌륭한 가르침이 있었다.
![](http://static.se2.naver.com/static/img/reviewitem/img_bu_02.png) |
p.168
|
|
|
루프레히트는 동료가 실수하면 속으로 비웃고 고소해하는 것이 어째서 가장 큰 즐거움처럼 되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손에 손을 맞잡지 않고 서로 적대적으로 일을 하는가.
|
![](http://static.se2.naver.com/static/img/reviewitem/img_bu_02.png) |
p.170
|
|
|
"어릴 적 남을 밟고 성공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배웠어요. 싸우고 다투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요. 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어떤 투쟁의 파편 없이 전진하는 것! 그것이 젖먹이 시절부터 부모님 집에서 내면화한 태도였어요."
|
책 내용이 워낙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경건하게 생각하게 만들다보니 아이가 잠자는 밤시간에 읽느라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마치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마냥 지금 내게 주어진 1초의 시간도 헛되이 쓰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생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며칠을 더 살지는 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 어쩌면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은 교만일지도 모르겠지만 삶의 끝이 언제인지 안다면 그것만큼 긴장감 없는 드라마가 있겠는가. 언제가 끝인지 모른다는 것은 당장 내일이라도 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매 시각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충만하게 가꾸어야 한다. 너무 식상한가? 하지만 늘 그렇듯 진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