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좁은 공간을 벗어난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지워져버린다. 이에 비해 글은 시간과 공간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여행한다. 말은 살아있는 것이며, 글은 죽어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말 없이 글은 생생해질 수 없다. 고대에는 언제나 큰소리로 책을 읽으면서 독서를 했다. 그래서 감기에 걸린 사람은 아예 책을 펴들지 못했다. 글 읽기 수련의 첫 번째 단계도 큰 소리로 책을 읽는 훈련이었다. 정신적인, 또는 내면적인 독서인 묵독은 두 번째 단계의 훈련이었다.

말이 글보다 먼저 있었다. 신은 세계를 명명함으로써 세계를 창조했다. 그것은 창조주의 말씀이었다. 수천 년이 지난 뒤에야 등장하는 글은 말에서 생겨난 것이며, 글에게 생생한 힘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하다.

-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중에서 -

 

 

 

 

 

 

 

 

 

 

 

아주 오래 전,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전주는 더 이상 없다. 전주 한옥마을 거리도 인사동거리처럼 다양한 물건을 파는 상점과 프랜차이즈 식당 그리고 겉모습만 흉내 낸 전통가옥들이 즐비하다.  그래도 높은 빌딩이 하늘을 가리지 않았고, 자동차의 매연과 경적소리로부터는 잠시 벗어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천편일률적인 인테리어와 맛이 아니라 작고 아담한 카페 분위기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골목 골목마다 숨어있는 카페들이 얼마나 많은지... 저리 많은 가게들이 전부 유지가 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요일 오후 한옥마을 거리를 걸으며 불량식품을 사먹고, 악세사리를 구경하고, 베테랑 칼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천원짜리 시집을 두 권 샀다.

노점상에서는 주로 수공예 한지 제품이나 은 세공품, 수공예 가죽 장신구, 다양한 군것질거리를 파는데 모퉁이에 작은 좌판을 놓고 시집을 팔고 있었다.

 

 

 

 

심지어 먹을거리를 파는 좌판에는 긴 줄을 늘어 선 사람들이 보이는데, 시집은 외면을 받고 있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곁눈질 한번 하고 지나가려는데, 오히려 함께 간 아들 녀석이 시집이 천원이라며 신기해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천원짜리 시집을 구경했다. 판매하는 두 권의 시집을 2,000원에 구입하며 시인이 누구일까? 궁금해했더니 수줍어 하며 본인이 쓴 시집이란다.

아~시인이셨구나... 자기가 쓴 시집을 1,000원에 직접 팔고 있는 시인...가방에서 펜을 꺼내 시집에 사인을 청했더니 너무 쑥쓰러워하신다. 

"행복해 보여서 즐거워집니다" 평범한 문장인데도 괜시리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행히 우리가 시집을 사고 있는 동안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시집에 관심을 보였다.

초췌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시인의 표정만은 아이처럼 순박하고 순수해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몇 편의 시를 읽었다. 시인이 행복한 세상이 되면 좋으련만... 더 이상 시를 그리고 소설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니 전업시인으로 살아갈 시인의 삶이 밝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다.

자신의 시집을 천원에 팔아야 하는 사연은 무얼까 ? 따뜻한 차 한잔 아니면 바로 옆에서 팔고 있었던 붕어빵 한 봉지라도 사드릴 걸... 뒤늦은 후회를 했다.

 

 

 

일요일 늦은 저녁, 알라딘에서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발견했다. '남자와 여자', '사랑과 우정','웃음과 눈물','고양이와 개' 등등 대립되는 것 옆에 서 있을 때 사물은 비로소 뚜렷한 존재 이유를 드러낸다고 한다. '고양이와 개' 편을 읽으면서 완전히 공감했다.

 

고양이가 독립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나지만, 특히 개가 정신을 못차리고 좋아하는 설탕과 단 음식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행동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고양이의 독립적인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장 콕도는 자기가 개보다도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경찰 고양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고양이는 또한 고독한 존재이기도 하다. 개가 열심히 친구들을 찾아다니는데 반해 고양이는 동족들에게서 도망친다. 개는 사람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고통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강제로 비천한 일을 시키는 주인때문에 품위를 잃기도 한다.

-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중에서 -

 

 

 

전주 시인 덕택에 즐거운 기억이 하나 더 생겼다. 하지만 다음에는 시인이 자기 시집을 파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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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주에 서학동사진관이라는 예쁜 전시관이 있어요.
홍지서림 골목에는 헌책방이 여러 곳 있고요.

전주마실을 하셨군요~

시를 쓰고 시집을 파는 일도
시인한테는 독자를 눈앞에서 만나는
재미난 삶이 되지 않으랴 싶기도 해요.

미스코리아 뚱 2014-01-0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인의 강추로 전주를 두서너번 간적 있는데,,,예쁜수공예품들과 길거리 음식??재미있었던 기억나네요,,노란버스가 인상적이군요,,옆사람의 행복으로 즐거워진다는 말 공감,,공감,,반대로 우울하고 속상해보이면 너~무 속상속상 입니다,,요즘 제곁에 친구가 마음의 길을 잃어서 속상해요,,빨리 마음의 길을 잘 갔으면 좋겠어요,,예전처럼 행복해서 즐겁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