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한 1월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간 부산 감천벽화 마을에서 -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 천상병의 행복 -

 

찬 바람을 뚫고 오랜만에 환한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이었다.

바람은 서럽도록 차가운데 왜 햇볕은 따사롭게 느껴질까 ?

나이를 먹으면서 사소한 날씨의 변화에 예민해짐을 느낀다.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은 겨울에 몰아서 왔다는 친구는 이 겨울 추위를 몸서리치게 싫어한다. 나 역시 본래 가을, 겨울을 더 좋아하고 기다렸는데, 요즘은 봄과 여름이 좋아진다.

아마 내 삶의 나이가 여름을 지나 가을로 향해 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리라.

새로운 일에 열정적으로 도전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혹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게 순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난하지만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세계에서 살다가 시인 천상병을 떠올렸다.

어이없게 연류된 동백림 사건은 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고,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행려병자로 전락하게 된다. 시인이 몸과 마음이 망가져 자신을 잃고 세상을 떠도는 동안 주변 친구들은 유고시집 ‘새’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그 후 친구의 여동생 목순옥과 결혼해서 가난하지만 평온한 삶을 누리며 담백하고 순수한 시 세계를 고집한다.

희미한 기억 속에  천상병 시인의 삶을 극화한 드라마를 본 기억이 난다.

아내가 시인의 시 제목을 딴 '귀천'이라는 작은 전통 찻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그들은 늘 가난했다. 하지만 가난을 불평하지 않으며 오히려 가난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감사와 행복의 조건을 시로 표현했다는 것은 늘 놀랍다.

특히 돈이 없으면 어떤 것도 불가능해진 이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가난해진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는 공포에 가깝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천상병의 가난은 -

 

 

“이 초록별에서 우리 인간들이 만들 수 있는 삶의 가능성 가운데 지금 이것이 최선일까 ? 여러 가지 발견과 발명 덕분에 우리는 자연과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는데, 그 힘을 갖고 고작 이런 아귀 다툼이나 벌여야 할까 ?“

나는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낭비되는지 화가 날 지경이었다. 우리는 부질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음식을 낭비하고, 생산에 쓰여야 할 에너지를 낭비하고, 재능을 낭비하고 있었다. 인간의 삶은 얼마든지 훌륭하고 풍요롭고 보람찰 수 있는데, 이렇게 낭비되어 버리는 것들 때문에 정말 보잘 것 없고, 천박하고, 이기적이고, 분별없고, 어지럽게 되어 버렸다.

- 스콧 니어링의 희망 중 11쪽에서 -

 

 

자본이 힘이 되어버린 이 세상을 살면서 인간의 품위를 정신적인 차원에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생각의 끝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자본이 할 수 없는 영역, 설령 자본이 개입된다 하더라도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결국 순수한 예술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문학과 철학 그리고 음악과 미술... 가난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 갔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고고한 정신 세계가 빚어낸 아름다운 문학작품들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정신을 풍요롭게 만든다.

시인 천상병 역시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눈을 가졌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행복의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결핍을 먼저 떠올리며 살았다. 행복에 감사하기보다는 결핍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고, 때로는 노력의 댓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삶을 절망했다.

 

복의 일곱가지 조건

1.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 기제(베일런트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보다는 '그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

2. 교육

3. 안정된 결혼생활

4. 금연

5. 금주

6. 운동

7. 알맞은 체중

베일런트의 또 다른 주요 관심사는 인간관계의 힘이었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지를 결정짓는 것은 지적인 뛰어남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관계이다." 행복의 조건에 따뜻한 인간관계는 필수다. 베일런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사실이다."라고 대답했다.   -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 중에서 -

 

만약 행복의 8가지 조건을 만든다면꼭 '감사'를 넣고 싶다.

아침에 마시는 한잔 커피와 담배 그리고 막걸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행복 조건 0순위 아닐까 싶다. 감사가 크다면 고통에 대응하는 여유있는 마음도 생길 것이고 결혼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

나는 오늘 '하루'라는 시간을 선물받았고, 가족과 친구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기뻐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내가 사고 싶은 책을 살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내 일도 했다.

부족하지만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고, 지금은 따뜻한 곳에 앉아 책을 읽고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쓴다. 그리고 감사와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한 해가 한점 소리없이 조용히 가고 있다..

천상병의 시를 읽으며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나는 이 한해동안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왔을까 ?

니어링의 말처럼 천박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끊어내지 못해 감사를 잊고 지내지는 않았는지..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얼마나 놓치고 살았는지 생각해 본다.

삶의 우선 순위에 감사를 놓고 살고자 노력해야겠다.

 

디까지 방황하며 멀리 가려느냐 ?

보아라, 좋은 것은 여기 가까이 있다

행복을 잡는 방법을 알아두어라

행복이란 언제나 네 곁에 있다

- 괴테의 경고 -

 

산문 ‘생활의 8가지 행복’이란 행복론을 써서 모든 생활인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던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일생동안 행복했던 시간은 겨우 17시간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책에서 그 고백을 읽고 나는 무척 충격을 받았었다. 독일 문학의 거장이며 세계 4대 시성의 한 사람이기도 한 괴테가 평생을 통틀어 17시간 밖에 행복하지 못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불행은 노력하지 않아도 오는데 행복은 노력해도 잘 오지 않는다.’는 말을 몇 번이나 꼽씹어 보았다.    -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160쪽에서 -

 

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겨울 밤은 깊어 간다. 아름다운 시와 문장들을 읽으며 정신적 풍요를 경험한다. 그리고 천상병의 시처럼,, 어느 날 홀연히 구름이 손짓하며는 아름다운 소풍을 끝내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삶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수의 인간들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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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면서도 늘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는 하루를 누리셔요~

착한시경 2013-12-21 09:41   좋아요 0 | URL
넵^^ 감사합니다,,, 늘~ 그런 맘으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