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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레스토랑 1 - 정원사의 선물
김민정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9월
평점 :
우연한 기회로 미지의 세계에 가게 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낯선 세계에서 일어나는 신비로운 경험들은 흥미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주인공에 감정이입해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다가 '내가 주인공이었다면'하며 상상하기도 하고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기도 하는 등 즐겁고 충만한 시간을 보내게 해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 <피터팬>이 그런 것처럼, <기괴한 레스토랑>이 그런 것처럼.
<기괴한 레스토랑>은 회중시계를 든 말하는 토끼를 쫓다가 이상한 세계로 떨어진 앨리스처럼 오드아이를 가진 신기한 고양이를 쫓다가 기괴한 레스토랑으로 가게 된 시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연, 아니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계기로 미지의 세계에 가게 된 시아의 모험은 신비롭고 기묘한 매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아의 모험은 처음부터 험난하다. 그저 고양이를 따라 굴에 뛰어들었음이 다인 시아는 독특한 외향의 남자로 변한 고양이, 아니 요괴 루이의 협박으로 요괴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가 볼 수 있기를 소망하는 거대하고 화려한 요괴들의 레스토랑에 입성하게 되고, 졸지에 레스토랑의 주인 해돈에게 심장을 받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병들어 죽어가는 해돈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심장이 필요한데 그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 바로 시아라는 것. 시아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그 결과 한 달이라는 유예기간을 얻는다.
이제 시아에게 남은 시간은 한 달. 한 달 동안 레스토랑에 머물며 식당 일을 하면서 해돈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내기로 계약한 소녀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여러 직원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하며 답을 찾아 헤맨다. 해돈에게 인간의 심장이 치료약이라고 알려준 마녀와 함께 사는 것도, 해돈의 병이 나아야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요괴가 목숨을 위협해오는 것도, 모든 게 다 낯설고 기괴하기만 한 레스토랑에서 머무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는 상황 속에서 시아는 과연 답을 찾을 수 있을지, 긴장감 가득한 여정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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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레스토랑>의 재미있는 점은 곳곳에서 익숙한 부분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패러디라고 해야 할지 오마주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읽다 보면 다른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동물을 따라 굴속으로 뛰어들어 다른 세계에 가게 되는 부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하고, 요괴들을 위한 크고 화려한 레스토랑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온천여관을 떠올리게 한다. 또 루이가 인간 세계로 나가 해돈에게 바칠 심장을 가진 시아를 데려오는 것은 <별주부전>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러한 요소들은 장단점이 있는데, 익숙한 부분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초반부 시아의 모험에 빠져들기 전에 자꾸만 다른 작품들이 떠올라 몰입을 방해한다는 단점이 있다.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되면서 <기괴한 레스토랑>만의 독립적이고 신선한 이야기가 이어져서 몰입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좀 아슬아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적인 점은 요괴들이 품고 있는 저마다의 이야기와 그들이 시아와 함께 나누는 대화에 있다. 요괴들의 사정과 그들이 시아와 나누는 대화는 끝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과거 때문에 울지만 또 그 과거에서 위로를 얻는다는 말, 어둠은 싫어하는 것들만 가려 주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어 하는 것들까지 모두 가려 버린다는 말, 외로움을 파고드는 달콤한 감언이설 등 결말을 향해 지나가는 길이 아닌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 책 곳곳에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아가 한 요괴와 함께 나누는 '정의'에 대한 설전으로, 그들의 대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키는 것(방어)과 빼앗는 것(공격)의 차이,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자격,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일어나는 문제점 등 판타지 소설을 보며 생각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면서 이 책에 다시 한번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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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시아의 말과 행동을 응원하다가, 고작 열여섯밖에 되지 않은 소녀의 어리숙함에 고개를 내저으며 '만약 나였다면'하고 상상하다가, 시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레스토랑의 숨겨진 공간들을 창조해가면서 즐거이 읽었다. 낯선 세계에서 펼쳐지는 신비롭고 기묘한 모험은 모험 그 자체의 재미와 매력에 또 다른 재미와 매력들이 더해져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1권이 끝나자마자 바로 2권을 찾다가 2권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급 우울해졌을 정도였다.(총 3권이라는데, 2권과 3권은 언제 나오려나... 부디 목 빠지기 전에 나오기를)
그만큼 기묘한 분위기도 마음에 박혀드는 문장도 상상 그 이상의 전개도 모두 마음에 들었던 책.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면, 독특한 재미와 매력을 가진 책을 찾는다면 <기괴한 레스토랑>을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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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읽고 쓴 리뷰입니다.
어둠은 네가 싫어하는 것들만 가려 주는 것이 아니야. 네가 보고 싶어 하는 것들까지도 모조리 가려 버려. 그럼 그건 어떡해?
사람은 자신이 감춰 버린 본성을 다른 사람이 드러내면, 그 사람을 비판함으로써 자기 자신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만족감을 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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