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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티드 맨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냉전이 끝난 후 스파이 장르가 쇠퇴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렇지는 않네요. 물론 냉전 때처럼 인기가 있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스파이 소설의 거장을 꼽으라면 대개 프레드릭 포사이스나 존 르 카레를 꼽는데, 그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칭호가 과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원티드 맨은 존 르 카레의 최신작입니다. 띠지와 표지에 현대 유럽을 뒤흔들 비밀, 숨 막히는 추적, 독일, 영국, 미국 정보국은 초긴장 상태, 뭐 이런 문구가 나오는데 제가 보기에 원티드 맨은 그런 쪽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닙니다.
숨 막히는 첩보전 쪽보다는 인간성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첩보전도 거창하지 않습니다. 정보전 규모나 양상을 볼 때 소품이라는 인상이 드는 작품입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 넘치는 작품도 아닙니다. 차라리 등장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따라가며 왜 저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선의와 양심이 정보기관이라는 비인간적인 존재와 부딪쳐서 어떤 파열음을 내는지를 차분하게 그려 보이고 있습니다.
터키 출신으로 독일에 영주하고 있는 멜릭은 어느 날 부랑아 이사를 만나게 됩니다. 멜릭은 그가 탐탁찮아서 쫓아버리고 싶은데 어머니는 이사에게 연민을 느껴 집에 거둬들입니다. 멜릭과 어머니는 독일 시민이 되기 위해서 시민권을 신청한 상태라 출신이 모호한 불법체류자를 무한정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무료변론을 하는 자선단체의 변호사 이나벨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르 카레는 인물들의 행동 변화를 감정과 연결시켜 설득력있게 보여줍니다. 아니벨이 이사를 돕는 것은 신념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행가가 도움을 주는 것은 애정 때문이고, 멜릭 모자는 연민의 정 때문에 사건에 말려들어 갑니다. 그에 비해 모 정보기관 사람들의 주된 동인은 복수로 보여집니다.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그 쪽보다는 이 쪽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글을 읽다보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생각이 나네요. 이야기 자체는 다르지만 마지막에 느껴지는 감정은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