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의사 되다

비트 더 리퍼 ㅣ 밀리언셀러 클럽 115
조시 베이젤 지음, 장용준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부제 그대로 킬러 출신 의사가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 부제를 봤을 때는 모종의 임무를 띤 킬러가 병원에 위장 잠입해서 일어나는 이야기,
혹은 임무에 실패한 킬러가 병원에 숨어 사는 이야기로 짐작했는데 의대를 졸업한 진짜 의사네요.

작가가 의사라서 그런지 레지던트의 병원 생활이 꽤 리얼하게 그려집니다.
이게 진짜 현실인지는 조금 의심스럽습니다만, 읽을 때는 진짜 현실 같습니다.
이런 현실감이 조금은 떠 보이는 킬러 생활을 조이는 역할을 합니다.

비트 더 리퍼는 피터 브라운의 정신없는 의사 생활과 과거 킬러의 삶을 번갈아 보여줍니다.
마피아의 명령을 수행하던 킬러가 어쩌다 의사가 되었을까.
궁금해서 한달음에 읽었습니다.

막나가는 느낌이 조금 들지만, 기본적으로 유쾌한 소설입니다.
그렇다고 크게 재밌진 않습니다만 시간 보내기는 좋군요.
시간 보내기용이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들으시는데 꼭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닙니다.
여름 밤, 날은 덥고 땀은 나고 잠은 안 오는데 케이블 돌려봐도 재밌는 건 하지 않고,
심야라서 어디 나가 놀기도 곤란하고 이럴 때 읽으면 좋지요.

마지막의 클라이막스는 좀 그렇더군요. 약간 징그럽기도 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다른 식으로 위기를 탈출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저게 과연 가능할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영화화된다고 합니다.
영화 판권 계약이 된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황금가지가 꽤 적극적이죠.),
이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작품도 있고 그냥 묻혀버린 작품도 있던데 비트 더 리퍼는 어떨까요.(잠잠하다가 영화 개봉한 후에 확 뜨는 경우도 있던데 말이죠.)

별점은 삼과 삼분의 일

핵을 넘어

스완 송 1 - 운명의 바퀴가 돌다
로버트 매캐먼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1년 6월

스완 송은 스티븐 킹, 폴 윌슨과 함께 20세기 말 아메리카 호러 르네상스를 이룩했다는 작가의 출세작이라고 합니다. 앞의 두 작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스완 송에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폴 윌슨의 작품은 하나만-북스피어에서 나온 다이디 타운-읽었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하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다이디 타운을 워낙 재밌게 읽어서 저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폴 윌슨 작품은 더 안 나오나요? 누가 내줬으면 좋겠는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스완 송은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책 띠지에 스탠드를 넘어선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출판사 홍보문구니까(스탠드 낸 출판사는 다르게 말하겠죠.^^) 꼭 그렇게 볼 건 아닙니다만 제 취행에는 스탠드보다 이게 맞더군요. 그런데 두 작품 공히 정말 깁니다. 스완 송은 원고지로 5000매가 넘고 스탠드는 그것보다 더 분량이 많죠. 둘 다 재밌는 작품인데 너무 길어서 읽다가 지치는 감이 들어요.

스탠드는 바이러스로 세상이 멸망했죠. 스완 송은 핵전쟁입니다. 개인적으로 종말의 방법은 바이러스 쪽이 더 깔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핵전쟁 이후의 세상을 보는 것도 나름 즐겁네요.^^

스완 송은 핵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세상을 짧게 보여주고 바로 핵을 터트립니다. 그때 주인공 소녀 스완과 전직 프로레슬러 조시는 지하실에 갇혀 목숨을 구합니다. 그리고 작품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부랑자 시스터는 지하철에서 살아남고, 스완의 대척점에 서게 되는 롤런드와 매클린 소령은 대피소에서 목숨을 구합니다.

이후 이야기는 세 무리를 따라가며 진행되고 세 부류가 맞부딪치면서 끝이 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 죽어나가는데 작가가 정말 가차없이 죽이네요. 이 사람은 살겠지 싶은데 죽어요. 다행히 주인공 격인 인물들은 그나마 끈질기게 살아남네요.

책이 두꺼워서 다 읽으니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소년시대도 재밌다고 들었는데 다음에는 그걸 읽어야겠습니다.
로버트 매캐먼은 폴 윌슨처럼 한 권 나오다 마는 일은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티븐 킹처럼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소녀시대 책날개 예고에 스완 송이 세권 분권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두 권으로 나왔네요. 분권을 싫어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별점은 사와 삼분의 일 

좋은 데뷔작

스틸 라이프 ㅣ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출간하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한 작품입니다. 좋다는 소문이 워낙 많았고 수상 경력도 화려했거든요. 영국 추리작가 협회 신인상, 캐나다 추리작가 협회 신인상, 딜리스상, 앤서니상 신인상, 베리상 신인상. 이 정도면 신인상이란 신인상은 다 받은 것 같습니다.

좋은 데뷔작입니다. 상을 받을 만해요. 잔인하고 자극적인 스릴러에 질려 있었던 터라 고풍스런 느낌이 풍기는 이야기 전개가 좋았습니다. 저는 후더닛 미스터리를 좋아하는데 영미 시장의 주류는 스릴러나 하드보일드 쪽이라고 하더군요.  

스틸 라이프는 후더닛 미스터리인데 범인의 정체가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범인의 정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보다는 다양한 캐릭터와 그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에피소드에 있습니다.

퀘벡주의 조용한 시골 마을 스리 파인스. 별 다른 사건 사고 없이 평온한 나날이 이어지는 고장인데 추수감사절 아침에 마을에서 인기가 좋은 노부인이 죽은 채 발견됩니다. 처음에는 사고인지 살인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장르의 특성상 독자들은 살인임을 확신하지만 등장인물은 입장이 다르죠.^^)
살인일까?

그렇다면 인자한 노부인을 누가, 왜 죽였을까?
의문이 떠오르긴 하지만 앞서 말했듯 범인이 궁금해서 손이 근질거릴 정도는 아닙니다.

수사 책임자로 파견된 사람은 부하들의 인망이 두터운 가마슈 경감입니다.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경감과 마주쳤는데 성품만 따지면 가마슈 경감이 가장 좋은 것 같군요. 사건 관계자들한테 친절하고 부하의 실수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봅니다. 독특하고 모난 탐정을 선호하시는 분이라면 경감이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더군요.  

가마슈를 제외하면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경찰은 이베트 니콜 형사입니다. 인상적으로 등장해서 기대를 많이 갖게 만드는데 갈수록 짜증나는 행동만 합니다. 독자의 미움을 한 몸에 끌어안을 인물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공들여서 캐릭터를 구축하는 걸 보면 단순한 밉상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후속권에서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것 같더군요.

간간이 유머를 던지면서 이야기는 진행되고 드디어 범인이 밝혀집니다. 범인보다는 살인의 이유가 더 궁금했는데, 흠 그렇군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데뷔작보다 그 이후의 작품이 더 재밌을 것 같고, 들려오는 평도 이야기가 갈수록 재미있어진다는 쪽이어서 기대가 많이 되는데 과연 번역이 되어 나올지......  

별 점수는 네 개.

다른 시각에서 본 삼국지

김운회 교수의 삼국지 바로 읽기 (합본)
김운회 지음 / 삼인 / 2006년 11월

예전 인터넷에 연재되었을 때 화제가 되었던 글을 모은 책이다. 그때 연재 글을 읽으면서 삼국지를 이런 각도에서 볼 수도 있구나, 하고 흥미롭게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박글이 많이 올라와서 이것저것 읽어 봤는데 반박글 쪽이 더 신빙성이 높아 보였다. 결정적으로 대쥬신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삼국지 바로 읽기에 대한 신뢰성이 폭락했다. 그래서 오래 전에 사놓고 방치하다가 이제야 읽었다. 몇몇 챕터는 여전히 흥미롭다. 하지만 대부분의 챕터는 그저 그랬다. 이 책을 왜 샀을까. 

별 둘(제가 읽은 건 두 권짜리 구판입니다.)

휴고상 수상작

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코니 윌리스를 흔히 수다쟁이 아줌마라고 하는데 별로 수다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있어야할 부분이 있는 느낌, 왜 수다를 떤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둠즈데이 북은 시간 여행을 다룬 SF이다. 설정이 빡빡한 편이어서 과거로 간 사람이 역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설정이 마음에 든다.(타임 패트롤 시리즈의 역사 개변은 자꾸 읽으니 좀 그렇더라-몇 개는 재밌는데 몇 개는 아주 지루해서 다 읽으려니 곤혹스러웠다)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는 키브린은 중세시대를 연구하기 위해서 시간 여행에 나선다. 그 직후 옥스퍼드에 전염병이 돌면서 사람이 마구 쓰러져 나간다. 그녀의 시간 여행을 반대했던(중세는 너무 위험하다, 죽을 수도 있다.), 던워디는 시간 여행이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서 전염병 때문에 폐쇄된 옥스퍼드를 동분서주한다.
둠즈데이 북은 키브린의 중세 생활과 던워디의 옥스퍼드 생활을 번갈아 보여주며 진행하는데 개인적으로 현대를 다룬 부분이 더 재밌었다.

재밌게 읽었는데 결말 부분에서 모 등장인물이 맞이하게 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별 반 개 깎았다.

글을 다 읽은 후 계속 젖소가 생각났다.
불쌍한 젓소.
젖소 젖 좀 짜주지.

별 네 개 반.

주의-스포일러 나옵니다.

설정상 시간여행자가 역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이 죽는 걸 막지 못한 부분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일 수 있는데 그래도 등장인물을 그렇게 많이 죽일 필요가 있었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책을 읽다보면 호감을 품게 되는 등장인물이 생긴다.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며 응원하게 되는데 죽어버리면 김이 샌다.
그 사람은 좀 살려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