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 - 빛과 바람이 들려준 삶의 문장들
김산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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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것이 미덕인 시대입니다. 더 빨리 결과를 내고, 더 빨리 성공하고, 더 빨리 채워야 한다는 압박이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24시간 우리를 세상과 연결하고, 그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불안해집니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감각, 뒤처지고 있다는 두려움. 이 속도의 문화 안에서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 지침이 어디서 오는지조차 생각할 여유를 잃어버린 채로.


김산들의 『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책입니다. 스페인 산골의 작은 마을에서 자연의 시간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한국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IMF를 겪으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도로 떠났습니다. 낯선 땅에서 스페인인 남편을 만났고, 결혼 후 스페인에 정착해 지중해 작은 마을에서 살며 자연의 시간 안에서 삶을 기록해 온 사람입니다. 이 책은 그 기록입니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계절마다 그 계절이 가져다주는 자연의 변화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일상이 담겨 있습니다.

봄은 기다림 끝에 서로를 알아보는 계절, 여름은 뜨거울수록 더 깊이 뿌리내리는 계절, 가을은 조금 덜 가져도 충분한 계절, 겨울은 비워야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계절로 불립니다.

계절 하나하나에 붙인 이 소제목들만으로도 저자가 자연을 어떤 눈으로 읽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봄 챕터에서 저자는 아무도 몰랐던 나무가 데려온 봄을 이야기합니다. 겨우내 죽은 것처럼 보였던 나무가 봄이 되자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꽃을 피웁니다.

저자는 그 장면 앞에서 멈춥니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을, 기다림이 곧 준비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 나무가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새들에게도 보릿고개가 있다는 챕터에서는 봄이 오기 직전 먹이가 가장 귀해지는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의 문턱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통과하는 새들. 그 장면이 인간의 삶과 겹쳐집니다.




여름 챕터에서는 고산 평야의 물의 법칙, 발끝 아래의 세계, 이 숲은 처음부터 푸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나무처럼, 가장 혹독한 계절이 오히려 가장 깊은 성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저자는 자연에서 배웁니다.

고슴도치가 알려 준 것이라는 챕터도 인상적입니다. 작고 느린 존재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저자는 속도가 아닌 방향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가을에는 덜어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을을 열매는 선착순, 친애하는 사냥꾼 아저씨에게, 점점 작아지는 우리들의 식탁.

가을은 채우는 계절이 아니라 비워내는 계절임을, 덜 가져도 충분하다는 것을 자연이 먼저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저자의 식탁은 작아지고, 그 작아진 식탁 위에서 오히려 더 깊은 맛을 발견합니다.




겨울 챕터는 이 책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은 부분입니다. 장작이 타는 동안 나에게 묻다, 그리움에서 시작된 손맛, 못 가르친 게 아니라 기다린 것. 비워야 다시 타오를 수 있다는 겨울의 언어가 사람의 언어가 됩니다.

가지지 않아도 즐길 수 있다는 챕터에서 저자는 가장 단단한 말을 가장 조용하게 합니다.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깊이 누리는 것. 그것이 겨울이 가르쳐 준 삶의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느리게 살아야 한다고, 덜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다만 자신이 본 것을, 자신이 느낀 것을, 자신이 살아낸 것을 담담하게 씁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깊이 독자 안으로 들어옵니다. 설득하지 않으면서 설득하는 글입니다. 주장하지 않으면서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문장도 그렇습니다. 정갈합니다. 꾸미지 않습니다. 자연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자연을 닮아 있습니다. 과잉이 없고, 여백이 있습니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잠시 멈추게 됩니다. 다음 챕터로 바로 넘어가지 않고 방금 읽은 문장 하나를 조용히 되새기게 됩니다. 이런 독서 경험을 주는 책이 많지 않습니다.

각 계절의 끝에는 그 계절에 어울리는 요리가 실려 있습니다. 봄날의 들풀 밥상, 어름을 이겨 내는 맛 가스파초, 고산에서 배운 버섯 요리, 비스타베야의 겨울 수프. 레시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만들어진 계절과 사람과 이야기가 함께 있습니다.

음식이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 작은 코너들이 잘 보여줍니다.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스마트폰을 손에 쥐지 않았습니다. 창밖을 보았습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 장면을 이렇게 오래 바라보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이 책이 한 일이 그것입니다. 속도에 함몰된 시선을 잠깐 멈추게 하는 것. 우리가 잊고 있던 느린 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것. 자연의 시간이 인간의 시간보다 더 오래되고 더 깊다는 것을 조용히 상기시켜 주는 것.

김산들의 『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곁을 내어주는 자연을 이야기합니다. 봄은 반드시 오고, 여름은 뜨겁게 타오르고, 가을은 조용히 비워내고, 겨울은 다시 타오를 준비를 합니다.

그 계절의 리듬 안에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합니다.

속도를 잠깐 내려놓고 싶은 분에게, 지금 무언가에 지쳐 있는 분에게, 자연 속에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고 싶은 분에게 권합니다. 이 책은 달리기가 아니라 산책입니다. 그 산책의 끝에 조금 더 넉넉해진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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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더의 언어 공식
윤상명 지음 / 모티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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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많이 한다고 언어가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을 아끼고, 정확하게 쓰고, 적절한 순간에 꺼내는 사람이 공간을 장악합니다. 윤상명의 『1% 리더의 언어 공식』은 그 단순하지만 쉽게 몸에 익지 않는 진실을 비즈니스 현장의 언어로 풀어낸 책입니다.




저자는 1조 5천억 원의 성과를 만들어낸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입니다. LG유플러스에서 B2B 입찰 제안 컨설턴트로 일하며, 대한민국 1% 리더들이 위기와 기회의 순간에 구사하는 언어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관찰하고 다듬어온 사람입니다. 이 책은 그 긴 관찰의 기록입니다. 이론서가 아니라 현장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책은 다섯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관찰의 기록, 품격이라는 방패, 논리라는 창, 조직을 춤추게 하는 마법, 리더의 습관. 제목만 보아도 저자가 리더의 언어를 단순한 화술 기술이 아닌 인격과 습관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방패와 창이라는 메타포는 표지 디자인과도 맞닿아 있는데, 리더의 언어에는 자신을 지키는 기능과 상대를 설득하는 기능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저자의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첫 챕터에서 저자는 하수는 말로 애쓰고 고수는 행동으로 증명한다는 명제로 문을 엽니다. 임원들의 대화에는 형용사가 없다는 관찰도 이어집니다. 좋다, 나쁘다, 훌륭하다는 말 대신 숫자와 사실로 말하는 습관. 리더의 언어는 수식어를 걷어낼수록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답을 찾게 이끄는 소크라테스식 질문, 타이밍을 놓친 결정은 오답이라는 결단의 언어, 모든 책임은 내가 집니다라는 책임의 언어까지. 첫 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게 됩니다.




두 번째 챕터 품격이라는 방패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입니다. 감정이 격해질수록 목소리 톤을 낮추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분노를 크게 표출할수록 상대에게 힘을 빼앗긴다는 역설. 회의실 공기를 바꾸는 첫 문장의 무게감이나 권위는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배어 나오는 것이라는 통찰도 오래 남습니다. 이 챕터는 말의 기술보다 말하는 사람의 내면 상태를 먼저 다룬다는 점에서 깊이가 있습니다.


세 번째 챕터 논리라는 창에서는 구체적인 언어 공식들이 등장합니다. 숫자로 증명하고 스토리로 공감하라는 설득의 기술, 반대 의견을 긍정적인 대안으로 전환하는 YES, IF 화법이 눈에 띕니다. 특히 STAR 법칙, 즉 상황(Situation), 과제(Task), 행동(Action), 결과(Result)의 구조로 성과를 말하는 방식은 실용적입니다. 자신을 과대포장하지 않으면서도 성과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언어 틀입니다. 주장하지 않고 구조로 말하게 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신뢰를 얻는 언어의 핵심을 짚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I MESSAGE의 힘도 이 책에서 다시 복기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문제라는 메시지 대신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느낀다는 주어의 전환. 하버드의 OREO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Opinion, Reason, Example, Opinion의 구조로 말을 정렬하면 감정보다 논리가 앞서고, 설득보다 소통이 먼저 이루어집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개념들이지만 책의 맥락 속에서 다시 읽으니 훈련의 필요성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네 번째 챕터 조직을 춤추게 하는 마법은 리더십 언어의 에너지 차원을 다룹니다. 심리적 안전감과 공감의 언어, 디테일한 칭찬의 기술, 피드백의 온도를 조절하는 GPS 화법, VUCA 시대의 프라임 언어까지. 조직원의 멘탈을 붙잡는 언어는 공허한 격려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방향이 있는 말이라는 것을 저자는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마지막 챕터 리더의 습관에서 책은 언어를 체력의 문제로 확장합니다.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빌려 리더의 언어는 태도에서 나오고 태도는 습관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체력의 언어라는 소제목은 의미심장합니다. 말의 무게를 버텨내는 것은 루틴과 뇌과학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비움과 채움의 멘탈 관리, 끊임없이 톱날을 가는 습관, 기꺼이 깨지고 배우는 성장의 언어까지. 언어 훈련이 결국 자기 관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마지막 챕터가 잘 정리해 줍니다.




책의 구성도 실용적입니다. 각 챕터 끝마다 리더의 언어 체크리스트와 실천적 요약이 수록되어 있어서, 읽고 끝내는 책이 아니라 반복해서 펼쳐볼 수 있는 훈련 교재가 됩니다. 부록으로는 상황별 리더의 언어 치트키 30선과 내면을 채우는 휴식과 영감의 플레이리스트도 담겨 있습니다. 저자가 독자에게 지식이 아니라 변화를 전달하려 했다는 의도가 구성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가볍지만 중요한 내용으로 꽉 찬 무거운 책입니다. 얇고 읽기 쉽지만, 덮고 나면 자신의 말버릇과 언어 태도를 점검하게 됩니다.

목사로서, 또 설교자로서 저는 언어를 직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입니다. 설교단에서의 언어만큼 일상의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하수는 말로 애쓰고 고수는 행동으로 증명한다는 첫 문장이 책을 덮고 나서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말은 그 사람입니다. 언어를 훈련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훈련하는 일입니다. 리더십에 관심 있는 분들, 특히 말 한마디가 조직과 관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분들께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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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풍경
마치에이 미크노 지음, 발렌티나 고타르디 그림, 김시형 옮김 / 모스그린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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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다시 보는 법

마치에이 미흐노 글,

발렌티나 코타르디 그림 / 모스그린


그림책을 집어 들 때마다 잠깐 망설이게 됩니다. 이것이 어른인 나에게도 말을 걸어올 책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사실 나는 그림책은 어른이 더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메마른 마음을 적셔주고, 세상을 바르게 다르게 보는 눈을 열어주니까요.

『우리가 사는 풍경』은 이 생각을 더 분명하게 해주었습니다. 펼치는 순간, 책이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책은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풍경이란 무엇일까요? 묻고 나서 곧바로 답합니다. 모든 곳은 풍경이 돼요.

단순한 선언처럼 들리지만, 읽고 나면 초대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골목, 기찻길 옆 둑, 보도블록 가장자리, 아무도 돌보지 않는 빈 땅. 그 모든 것이 풍경이라고,

책은 조용히 말합니다. 풍경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바로 풍경이라고




발렌티나 코타르디의 그림은 독특합니다. 정교한 펜 선 드로잉 위에 수채 물감이 번지고, 때로는 낙서처럼 자유로운 선들이 그 위를 가로지릅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붉은 지붕의 집과 산, 꽃병의 투명한 윤곽선. 종이배 안에 웅크린 소녀가 바닷가 모래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장면.

이 그림들은 완성된 세계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직 그려지고 있는 세계처럼 보입니다. 그 미완성의 느낌이 오히려 솔직합니다. 우리가 사는 풍경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까요.




구석, 가장자리, 그리고 좁은 틈새들이라는 챕터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딱딱한 시멘트를 뚫고 피어난 작은 꽃 한 송이. 책은 그것을 가리키며 묻습니다.

이 작은 곳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대부분 바쁜 생각에 잠긴 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지저분한 곳,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이라고만 여기면서.

그 틈새들이 사실은 수많은 생명의 오아시스라고, 책은 낮은 목소리로 알려줍니다.




마치에이 미흐노의 글에는 비난이 없습니다. 고발도 없습니다. 이 해변은 누구의 것일까요?, 사람이 너무 몰리면 위험해요. 이런 챕터 제목들도 날카롭지 않습니다. 문제를 말하지만, 다그치지 않습니다. 대신 계속해서 바라보게 합니다. 주목하게 합니다.

우리는 바꿀 수 있어요라는 챕터에서는 변화의 첫걸음이 주변을 잘 살펴보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보지 못하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목사로 살면서 감사를 자주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읽고, 그것을 전합니다. 정작 감사는 대상을 볼 때 가능한 것임을 이 책은 다시 일깨웁니다.

보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지나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풍경을 주목하는 일은 단순한 심미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자꾸 삭막해집니다. 오래된 골목이 사라지고, 익숙한 나무들이 베어집니다. 우리는 잠시 안타까워하다가 곧 익숙해집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그 빠른 익숙해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적응은 때로 포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책의 마지막 챕터 우리는 이곳에 살아요는 그 포기에 저항하자는 조용한 호소입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생각을 내놓는 것. 책은 그것이 꿈에 다가가는 강력한 도구라고 말합니다.




그림책이 어른에게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아마 이것일 겁니다. 많이 알고, 많이 바쁜 어른들이 자꾸만 잃어버리는 것들. 느리게 보는 능력. 작은 것에 오래 머무르는 능력.

『우리가 사는 풍경』은 그 능력을 다시 불러냅니다. 다그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그저 그림 한 장, 문장 한 줄로 천천히 초대합니다.




책을 덮고 나서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5월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나무인데, 그날따라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좋은 책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두드린 장면들 공유합니다. 자녀들과 함께 읽어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더 깊고 넓게, 다르고 바르게 만들어 가시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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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세계문화전집 1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홍선기 옮김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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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묻는다는 것

책장을 펼치기 전에 잠시 멈추었습니다. 표지의 보랏빛이 너무 깊어서였습니다. 무척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이기도 하고요. 헤르만 헤세와 빈센트 반 고흐. 두 이름이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고, 서로 편지를 주고받은 사이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두 사람의 이름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함께 있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부는 스물세 살의 헤르만 헤세가 쓴 글들, 즉 유년 시절의 회상과 튀빙겐의 기억, 잠 못 이루는 밤들과 1900년의 일기, 그리고 마지막 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부는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여동생과 어머니에게, 폴 고갱에게 쓴 편지들입니다. 거기에 두 사람의 접점을 탐구하는 에세이와 그들이 사랑했던 클래식 음악 열두 곡의 소개가 더해집니다.

처음에는 이 조합이 조금 낯설었습니다. 그러나 읽어가면서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두 예술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네는 안부가 무엇인지를 묻는 책이라는 것을.




헤세의 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잠 못 이루는 밤들'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스물세 살의 청년이 쓴 이 글은 불면의 기록인 동시에 자기 존재에 대한 치열한 씨름입니다.

그는 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보다 밤을 더 진지하게 대합니다. 낮이 세상을 향해 자신을 펼치는 시간이라면, 밤은 자기 자신 앞에 오롯이 서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밤들 속에서 헤세는 묻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가 던진 이 질문들이 백 년이 넘은 지금 읽어도 낡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시대의 질문이 아니라 인간의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반 고흐의 편지들은 그보다 훨씬 더 뜨겁습니다. 테오에게 쓴 편지들을 읽으면서 이 사람이 정말 뜨겁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을 향한 열정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향한 그리움, 인정받고 싶은 간절함,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이 편지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들이 단순한 하소연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 고흐의 편지에는 항상 다음 그림에 대한 구상이 따라옵니다. 어제의 절망이 오늘의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폴 고갱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쓴 편지 바로 다음에, 그는 새 캔버스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것이 반 고흐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고통이 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것이 예술을 만든다는 것.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는 '반 고흐를 죽인 안부'와 헤르만 헤세를 살린 안부입니다. 두 챕터는 같은 단어, 안부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해석합니다. 반 고흐에게 어떤 안부는 죽음이 되었습니다. 그가 가장 필요했던 것은 그림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재를 인정받는 따뜻한 시선이었습니다.

그것이 끝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헤세에게는 한 사람의 편지가 삶을 돌려놓았습니다. 무너지기 직전의 그를 붙잡은 것은 거창한 성공이나 비평가의 칭찬이 아니라, 한 독자의 소박한 안부였습니다. 저자는 이 대비를 통해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어떤 안부를 건네고 있는가?

독자로서 이 질문 앞에서 오래 멈추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글을 쓰면서, 저도 수없이 많은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어떤 안부는 상대에게 힘이 되었을 것이고, 어떤 안부는 무심코 건넨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안부는 그냥 인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언어입니다.




두 사람의 세나클이라는 챕터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세나클은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진 다락방을 뜻하는 말입니다. 헤세와 반 고흐가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음에도 이 책은 그들을 한 공간 안에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도 그 자리에 초대합니다.

한쪽에는 언어로 세계를 붙들려 했던 헤세가 있고, 다른 쪽에는 색으로 세계를 붙들려 했던 반 고흐가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것을 추구했습니다.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 안락함이 아니라 깊이. 인정이 아니라 의미.

책의 말미에 수록된 티모 하일러의 특별 에세이, 헤르만 헤세와 빈센트 반 고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시도는 이 책 전체의 서문이자 결론처럼 읽힙니다. 헤르만 헤세 박물관장으로서, 그는 두 예술가가 공유한 것이 무엇인지를 조심스럽게 풀어냅니다.

그것은 천재성도, 불행도, 이름이 남긴 명성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본 것을 타협 없이 표현하려는 의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수해야 했던 고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예술가의 삶에 끌리는 것은 그들의 성공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실패와 흔들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스물세 살 헤세의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우리의 밤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반 고흐의 테오에게 쓴 편지가 우리가 누군가에게 쓰고 싶었던 편지와 닮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 앞에서 안도합니다. 나만 이렇게 흔들리는 것이 아니구나. 나만 이렇게 인정받고 싶은 것이 아니구나.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진짜 안부일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것, 그 외로움과 갈망과 흔들림이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라는 고백. 헤르만 헤세도 그랬고, 빈센트 반 고흐도 그랬다는 말 없는 위로.

책을 덮고 오래 보랏빛 표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얼굴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헤세의 사인과 빈센트의 사인이 그 아래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살았던 시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예술의 방식도 달랐던 두 사람. 그러나 그들이 남긴 글과 편지들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들에게 안부를 묻고 또 받습니다.

당신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이 책은 그 오래된 질문을 다시 우리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천천히 그리고 깊이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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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 인류학적 오답 연구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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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거울 앞에 서다

책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무언가를 알게 된 것인지, 아니면 몰랐으면 더 편했을 것을 알아버린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은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불편한 책이다. 부제는 인류학적 오답 연구다. 오답. 이 단어가 예사롭지 않다.

저자는 처음부터 인류 문명의 정답이 아니라 오답을 추적하겠다고 선언한다. 형벌, 감옥, 완전범죄, 전쟁 무기. 목차만 훑어도 이것이 통쾌한 지식 여행이 아니라, 문명의 지하실을 들여다보는 불편한 탐험임을 직감하게 된다.




뒤표지의 질문이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가 위대한 문명이라 부른 것들의 이면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로마의 자루 형벌을 생각해 보자. 죄인을 살아있는 짐승과 함께 자루에 넣어 물에 던졌다. 그것을 정의라고 불렀다.

코끼리에게 죄인의 생사여탈권을 쥐여줌으로써 제국의 권력을 과시하던 시대가 있었다. 고립된 배 위에서 동료를 바다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던 선원들의 공포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야만의 시대가 아니라, 나름의 법과 질서와 논리를 갖춘 문명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2부 감옥: 통제와 역설은 읽으면서 더 무거워졌다. 블랙돌핀 교도소, ADX 플로렌스, 사우디의 사막 교도소. 인간이 인간을 가두는 방식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그 목적은 언제나 같았다. 통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완벽하게 설계된 감옥일수록 인간의 존엄을 가장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교도소는 교화의 공간인가,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의 공간인가. 저자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독자 앞에 그 질문을 정직하게 내려놓는다.




3부 완전범죄: 완벽과 균열에서 등장하는 BTK 연쇄살인마와 레오폴드·로엡 사건은 단순한 범죄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챕터가 건드리는 것은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한 완벽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 욕망이 어떤 방향으로 왜곡될 때 괴물이 탄생하는지를, 저자는 냉정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해부한다. 가장 섬뜩했던 것은 그 욕망 자체가 낯설지 않다는 점이었다.




4부 전쟁 무기: 해답과 재앙에서 저자는 마지노선, 블루 피콕, 에이전트 오렌지 같은 사례들을 통해 인류가 '해답'이라 믿었던 것들이 어떻게 더 큰 재앙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인류는 얼마나 많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냈는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정직함이다. 저자는 독자를 안심시키려 하지 않는다. 인류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인지를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이성과 문명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뒤표지의 마지막 문장으로 조용히 말을 건넨다. 당신의 실수 역시 지극히 인간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여기서 나는 잠시 멈추었다. 이 책이 결국 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인류의 오답을 들여다보는 일은 타인의 추락을 구경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 정직하게 이해하는 과정이다. 완벽하지 않은 존재가 완벽한 문명을 꿈꾸며 저질러온 모순들, 그 모순의 역사가 곧 우리의 역사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제목이 경고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그 불면은 공포 때문이 아니라, 생각 때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문명이란 무엇인가. 이 오래된 질문들이, 이 책을 덮은 밤에 다시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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