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다시 보는 법
마치에이 미흐노 글,
발렌티나 코타르디 그림 / 모스그린
그림책을 집어 들 때마다 잠깐 망설이게 됩니다. 이것이 어른인 나에게도 말을 걸어올 책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사실 나는 그림책은 어른이 더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메마른 마음을 적셔주고, 세상을 바르게 다르게 보는 눈을 열어주니까요.
『우리가 사는 풍경』은 이 생각을 더 분명하게 해주었습니다. 펼치는 순간, 책이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책은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풍경이란 무엇일까요? 묻고 나서 곧바로 답합니다. 모든 곳은 풍경이 돼요.
단순한 선언처럼 들리지만, 읽고 나면 초대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골목, 기찻길 옆 둑, 보도블록 가장자리, 아무도 돌보지 않는 빈 땅. 그 모든 것이 풍경이라고,
책은 조용히 말합니다. 풍경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바로 풍경이라고
발렌티나 코타르디의 그림은 독특합니다. 정교한 펜 선 드로잉 위에 수채 물감이 번지고, 때로는 낙서처럼 자유로운 선들이 그 위를 가로지릅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붉은 지붕의 집과 산, 꽃병의 투명한 윤곽선. 종이배 안에 웅크린 소녀가 바닷가 모래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장면.
이 그림들은 완성된 세계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직 그려지고 있는 세계처럼 보입니다. 그 미완성의 느낌이 오히려 솔직합니다. 우리가 사는 풍경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까요.
구석, 가장자리, 그리고 좁은 틈새들이라는 챕터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딱딱한 시멘트를 뚫고 피어난 작은 꽃 한 송이. 책은 그것을 가리키며 묻습니다.
이 작은 곳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대부분 바쁜 생각에 잠긴 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지저분한 곳,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이라고만 여기면서.
그 틈새들이 사실은 수많은 생명의 오아시스라고, 책은 낮은 목소리로 알려줍니다.
마치에이 미흐노의 글에는 비난이 없습니다. 고발도 없습니다. 이 해변은 누구의 것일까요?, 사람이 너무 몰리면 위험해요. 이런 챕터 제목들도 날카롭지 않습니다. 문제를 말하지만, 다그치지 않습니다. 대신 계속해서 바라보게 합니다. 주목하게 합니다.
우리는 바꿀 수 있어요라는 챕터에서는 변화의 첫걸음이 주변을 잘 살펴보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보지 못하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목사로 살면서 감사를 자주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읽고, 그것을 전합니다. 정작 감사는 대상을 볼 때 가능한 것임을 이 책은 다시 일깨웁니다.
보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지나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풍경을 주목하는 일은 단순한 심미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자꾸 삭막해집니다. 오래된 골목이 사라지고, 익숙한 나무들이 베어집니다. 우리는 잠시 안타까워하다가 곧 익숙해집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그 빠른 익숙해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적응은 때로 포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책의 마지막 챕터 우리는 이곳에 살아요는 그 포기에 저항하자는 조용한 호소입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생각을 내놓는 것. 책은 그것이 꿈에 다가가는 강력한 도구라고 말합니다.
그림책이 어른에게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아마 이것일 겁니다. 많이 알고, 많이 바쁜 어른들이 자꾸만 잃어버리는 것들. 느리게 보는 능력. 작은 것에 오래 머무르는 능력.
『우리가 사는 풍경』은 그 능력을 다시 불러냅니다. 다그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그저 그림 한 장, 문장 한 줄로 천천히 초대합니다.
책을 덮고 나서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5월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나무인데, 그날따라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좋은 책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두드린 장면들 공유합니다. 자녀들과 함께 읽어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더 깊고 넓게, 다르고 바르게 만들어 가시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