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장바구니로 푸짐한 밥상 차리기 - 요리조리 자매의 푸짐한 밥상차리기 2
김정미.김정은 지음 / 성안당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내가 요리책을 그것도 내가 돈을 지불해가면서 사볼 일이 생길지는 몰랐다. 요리야 뭐 까짓거 대충 해 먹고 먹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충 살아오던 내가 혹시나 싶어 절대 나처럼은 요리하지 말라고 알려주기는 했어도 요리를 잘 하는 사람들의 기록을 읽게 될 줄이야.

 

가짓수를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무수한 종류의 음식들이 가득하다. 국 찌개 마른 반찬 과일 기타 등등의 요리들이 가득하다.요리들의 이름과 그 과정이 많아 봐야 다섯 컷 사진 안에서 해결된다. 간단하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지 정말 간단하다. 글자만 읽으면 간결하다.

 

모든 음식은 특히 국음식은 약방에는 감초가 다 들어가듯이 국음식에는 기본 멸치와 다시마 국물이 기본으로 깔리는 모양이다. 기본을 지키고 그 위에 변화를 추구한다는 묘한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운동이든 이론이든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들을 하는 이유를 한 번 생각해볼만 하다.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 결과를 담당할 수 없다.

 

고수들의 말이란 이렇게 하면 되요라고 말한다. 하수들은 그 말들이 미울 수 밖에 없다. 고수들은 매번하는 것이고 익은 것이어서 대충하면되요라고 그렇게 말을 하지만 하수가 어찌 그 오랜 시간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싶다. 무던히도 연습을 해야지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기대하지 말자 환상인데 나도 시키는대로만 하면 잘 된다는 환상은 버려야한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한 번에 완벽하게 맛을 내고 모양을 낸다면 게다가 요리책을 보고 한다고 다 되는 것이라면 사실 이 세상에 요리책 몇 가지 종류밖에 없지 않을까 아니 처음 쓴 책이 마지막 책이 되었을 테지

 

글과 글 사이에 행간을 읽어야 하는 것은 소설책이긴 하지만 요리책도 시간과 공간과 미각까지 읽어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눈으로 하는 요리와 손으로 입으로 하는 요리의 간극은 견우와 직녀 사이를 흐르는 은하수의 거리가 아닐까 가까이 있지만 너무나 먼 거리 말이다.

 

사실 이런 책들은 읽는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 고 있을 것이다. 어쩌라고 이제 읽었으니 열심히 연습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모르겠다. 가장 쉬워보이는 계란말이를 하러 나는 부엌으로 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책)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상뻬 아저씨의 이름은 그림 책 좀 본다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한 번은 거론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평소에 동화책 그림책을 잘 읽지 않다가 올 해들어 차근 차근 읽어보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친구 부부에게서 한 권의 책과 엽서가 도착했다.

 

<속 깊은 이성 친구>라는 제목의 책인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동시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성 친구라는 것이 가능할까? 이성 친구라는 것은 없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통념을 깨어주길 바란다. 왜 없다고만 생각들을 할까? 아무리 인류 이래로 검증된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개인적인 사족을 붙이자면 이성친구의 관계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면 나의 친구들 대부분은 애인이어야 한다. 일순간 나는 애인 없는 사람에서 문어다리를 걸친 아주 나쁜 놈이 된다.

 

샹뻬 아저씨의 그림책에서 특히 이  그림책에서 조심해야할 것이 하나 있는 것 같다. 전체 제목을 보고 하나의 이야기라고 보면 혼란스러워진다. 사람이 되었다가 닭이 되었다가 이 사람이 되었다가 저 사람이 되었다가 변화무쌍하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변신 이야기가 아니라 각각의 독립된 하나의 장면이고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0장 쯤 넘기다 보면 독립적으로 생각하지 않고는 책 속에서 길을 잃기 딱 좋다.

 

그림을 그리는 분이시니까 그림 이야기 잠시 해봐야하지 않을까? 그림의 스타일은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선을 가득하다.한 곳에 집중되고 그 외부 배경은 흐려진다. 꼭 불면 사라질 모래 그림같아서 책장을 넘김과 동시에 같은 모래판에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혹시 어러는 사람 있을지 모르겠다. 이성이 좋은데 사랑하고 싶은데 말은 못하겠고 ,보내기는 싫고 안 보기는 더 싫은 사람들 말이다. 그럼 이성  친구로 남아라. 아니 이성을 초월해서 친구로 남아라. 자신의 마음은 고이 싸서 발 뒤꿈치에라도 묻어두어라. 그러다가 문득 발에 밟힐 더라도 참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긴 한데 속 깊은 이성 친구로 남지 못할 것 같으면 말하라 사랑한다. 좋아한다고 ......

 

이 책을 보내준 훈희와 현경님에게 축하의 메세지를 전화며 - 결혼과 아이 - 이 글을 마친다. 행복하길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갈색책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진중권 옮김 / 그린비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유랑인이 오독한 청갈색책에 대한 푸념임을 일러둔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라고 설명해 줄 사람이 있으면 설명해보시라 잘들어보겠다. 결국 청갈색책 읽은 유랑인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일단 이건 이야기하고 가야지. 음 그러니까 철학책이란 것은 소설책이 아니어서 중간의 저작물부터 읽었다가는 피본다.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할 것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는 더한 것 같다. 뭐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은 대충 들은 풍월이라도 있지 현대 철학자들은 감당이 안 된다. 예전에 서양 철학사를 읽었던 기억에 비춰볼 때  비트겐슈타인이 제일 마지막에 소개되었다. 그러니까 현대철학자라는 소리다. 이 책 잘못 건드렸다는 소리다. 게다가 이 책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지는 그 극점에 있는 책이니 더 할 수 밖에 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전후를 잘 따져보고 초기작부터 잘 읽어야게다. 물론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을 공부하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 그러니까 철학책 사상서 유랑인처럼 읽지마라 편이 되겠다.

 

비트(겐슈타인) 아저씨는 언어를 철학의 도구로 삼는다. 하여간 비트 아저씨 청색책에서는 단어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엄청난 사유를 보여주는데 이전에 철학자들이 보여주던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언어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뭐라고 해야하나 논리학과 수학을 결합시켜 놓은 문제를 풀어놓는 논술문제를 푸는 것 같다.

 

비트 아저씨의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하건데 철학함에 있어 언어의 문제를 부각시키는데 , 문제는 그 언어가 가지는 지시적이고 일원적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의 기호와 의미의 이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인데 사실 유랑인은 철학책을 읽으면서 유랑인이 철학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님녀 국어 의미론과 화용론이라는 책이라는 것을 보고 있는지 혼란스러워졌다. 갈색책도 언어 놀이가 등장해서 모든 지면을 차지하고 있던데 청색책은 의미론 , 갈색책은 화용론으로 읽으면 이해가 더 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좀 더 친숙한 것이 국어이다보니 비교가 이정도로 투박하다.

 

의미론이라는 것은 언어의 의미가 기호가 나타내는 단 하나의 문장이 가지는 단 하나의 의미만을 가질수도 있지만 언어가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의 문장에서 전해지는 것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해져서 문장의 의미가 틀어지고 받아들여지는 사람에 의해서 변화한다는 것이 의미론을 대충 읽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청색책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대한 약간의 답이 되지 않을까 싶긴 하다.

 

화용론은 이거 최신 국어 분야지 싶은데 언어의 문법체계를 무시하고 한 단어나 두 단어로 구어 상황에서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인데 요거 재미있다. 이야기하는 상황에 따라 똑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거나 다른 행동을 파생시킨다. 이것은 아마도 갈색책의 언어놀이 중 벽돌에 관련된 이야기와 상통하는 면이 있는 듯하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읽다가보니청갈색책을 뭐 언어 의미론 화용론의 효시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해버렸다. 미안해요 비트 아저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방 들어주는 아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사계절 저학년문고 26
고정욱 지음, 백남원 그림 / 사계절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만에 헌책방에 들렀다가 조카가 생각나서 구입한 책이 <가방 들어 주는 아이>인데 조카는 이번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어제 읽기를 시켜보니 기계처럼 읽는다. 아직까지 많은 글들이 있는 것은 무리인것 같아서 그냥 내가 읽기로 했다. 가끔 읽는 동화책은 청량하다. 많은 글들을 읽지 않아도 전하는 의미가 명징하게 전달된다는 것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아름답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 동화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뭐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유랑인이 아닐 것 같다. 터진 입이고 키보드에서 움직이는 손이니 해보기로 하자

 

보통 가방 들어주는 아이라고 하면 좀 노는 아이의 가방을 들어주는 아이가 아닐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건 동화가 아니라 액션 소설이 되어야하지만 다행히 동화다 동화는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순수한 마음이라 순수함을 이야기하는 동화책이라 타인을 위한 봉사를 이야기하는 동화책이라 요즘 아이들이 그 순수함과 봉사의 멀어져 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석우는 영택이의 가방을 들어 준다. 왜냐고 영택이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별다른 이유는 없다. 석우는 얼결에 가방을 들어주지만 친구들은 영택이의 가방을 들어주는 아이라고 놀려대기만 한다. 좋을리가 있을까 초등학교 2학년인데 친구들과 놀고싶기만 한 마음이 한 가득인데 놀지도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오해까지 받게되다니 ......  그러나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 변화는 사실 내적인 변화가 먼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변화부터 일어난다. 영택이 어머니와 문방구 아저씨가 좋은 일을 한다며 응분의 보상을 석우에게 주면서 변화는 시작된다. 외부적 요인에서 시작해서 내적인 변화 요인으로의 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사실 내적인 변화가 먼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발현되는 것은 아닐까? (너무 씨부렸나 변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변화의 시작에 대해서 헛소리 좀 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뭐 장애아를 가진 부모의 마음이야 영택이 어머니와 똑같을 것이고 장애아를 도와주는 아이를 가진 엄마의 마음이야 석우 엄마의 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자신의 아이가 장애아의 가방을 들어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석우의 어머니 자기 자식이 중요하지 타인의 자식이 중요하진 않다. 그러니 석우 엄마의 처신을 누가 나쁘다 말하겠는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잘 생각해보라 당신은 그렇지 않은지 정말 그렇지 않다면 돌을 던져라 석우 엄마에게

 
장애를 가진 학생과 장애를 가진 학생과 친한 학생들을 멸시하거나 야유하는 어린이들이 제법 되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이 타인을 멸시하는 것에는 논리적으로 온당한 이유는 없다. 단지 자신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것은 같지 않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이들은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장애라는 것은 태생적인 것도 있지만 후천적인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그들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한 번은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단지 자신과 다르기 때문에 거부하는 어린이들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변화의 기운을 줄 수 있지만 받아들이고 변하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임을 알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사회평론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와넬 군이 추천해준 어마어마한 책들 중에서 다시 엄선해 준 책이다. 처음에는 쉽게 읽히더니 뒤로 가면서 개념들이 서로 얽혀서 엉망으로 얽혔다. 오랫만에 느슨해진 생각의 고리들을 다시 조여야했다. 그러나 늘어질대로 늘어진 생각의 고리가 쉽게 조여질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디 한 번 보는 것만으로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윤리에 관한 책이다. 제목이 윤리 21 아닌가? 그럼 21은 뭔가하니 21세기의 21이란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윤리의 시대라는 소리가 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윤리란 것은 또 무엇인가? 중학교 때 도덕을 배웠고 고등학교 때 윤리를 배우긴 했는데 뭐가 뭐란 말인가?  가리타니 고진은 도덕과 윤리를 분리시켜 생각하게 만든다. 도덕과 윤리를 분리시키고 개별적인 것으로 확립하는데 책의 전반을 사용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도덕과 윤리를 어떻게 대별할 것인가하면 도덕은 작은 집단 내에서 통용되는 판단 기준과 습속이라고 보는 것이고 윤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작은 집단이 아니라 세계 공공집단에서 통용되는 절대적인 기준 - 절대적인 기준이란 말은 내가 쓰는 말이다. - 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뭔 문제인고 하니 개인적 판단과 공공의 판단 즉 개인과 집단의 판단의 괴리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당연시 되는 결론이 넓은 집단에서 보면 반드시 옳은 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 9.11테러를 당했다고 이슬람 세력에게 피의 복수와 같은 것을 감행한다고 했을 때 미국 내에서는 당연한 응징이라고 용인 받을 수 있지만 세계의 시선으로 볼 때 테러의 원인이 아닌 것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다. 도덕과 윤리는 어쩔 수 없는 괴리를 나타낸다. 합치도 되지만 불합치도 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불합치되는 것을 합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되지 안을까? 이것은 내 생각이다. 가리타리 고진이 말하지 않았으나 그 행간에 그리 읽힌다.

이러한 도덕과 윤리의 개념을 정립하면서 가리타니 고진은 칸트에 기대어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신도 인정하듯이 칸트를 통해서 도덕과 윤리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고 있지만 철학에 대한 어쩔수 없는 선입견과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생각을 대충이라도 알아야 이해와 오해와 오독의 거리를 조금 더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가리타니가 칸트에 기대어 있고 현대 철학자들의 사상에 기대어 있더라도 오랜 시간 읽고 오랜 시간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철저한 자기화가 이루어진 것이어서 섣부르게  다가갔다간 뼈도 추리지 못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니 준비는 단단히 하고 빠져들도록 형이상학적인 바다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명확한 개념화 뿐이다. 

가리타리 고진은 전쟁의 새대에 종언을 요구한다.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세계시민적인 견해에서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데 윤리적 판단에서는 모든 전쟁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서구의 제국주의가 심판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판단되는 것이라는 견지를 뒤집어야 하는 난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윤리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당연히 서구의 제국주의는 심판 받을 수 밖에 없다. 윤리에 의한 도덕의 심판받을 시대가 우리가 타자가 되는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가리타리 고진은 또 다시 도덕과 윤리에 있어 자유의 개념을 정립하는데 , 사실 나는 이 부분까지는 내 식으로든 가리타리 고진 식으로든 설명하기를 포기하려고 한다. 선명한 자기 정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뜬 구름을 잡아본다면 하나의 현상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데 의무는 인식에서 온다 . 인식은 사건의 원인을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원인라는 것이 일 대 일 대응하는 것이 아니어서 다변적이고 다원적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복잡해지면 뭉쳐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자유의지라는게 있을 수 없다.자유로운 선택은 은연중에 그렇게 선택하도록 만들어 놓은 잘 짜여진 연극의 결론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원인을 추궁하고 인식하기 전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일본의 도덕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정도로 뜬 구름을 잡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개인의 판단과 집단의 판단의 상이성 속에서 혼란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길 권하여도 좋을 책이다. 집단의 결정에 있어서 개인의 소수의견이 묵살되는 상황에 처해진 사람도 당연히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