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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사회평론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와넬 군이 추천해준 어마어마한 책들 중에서 다시 엄선해 준 책이다. 처음에는 쉽게 읽히더니 뒤로 가면서 개념들이 서로 얽혀서 엉망으로 얽혔다. 오랫만에 느슨해진 생각의 고리들을 다시 조여야했다. 그러나 늘어질대로 늘어진 생각의 고리가 쉽게 조여질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디 한 번 보는 것만으로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윤리에 관한 책이다. 제목이 윤리 21 아닌가? 그럼 21은 뭔가하니 21세기의 21이란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윤리의 시대라는 소리가 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윤리란 것은 또 무엇인가? 중학교 때 도덕을 배웠고 고등학교 때 윤리를 배우긴 했는데 뭐가 뭐란 말인가? 가리타니 고진은 도덕과 윤리를 분리시켜 생각하게 만든다. 도덕과 윤리를 분리시키고 개별적인 것으로 확립하는데 책의 전반을 사용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도덕과 윤리를 어떻게 대별할 것인가하면 도덕은 작은 집단 내에서 통용되는 판단 기준과 습속이라고 보는 것이고 윤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작은 집단이 아니라 세계 공공집단에서 통용되는 절대적인 기준 - 절대적인 기준이란 말은 내가 쓰는 말이다. - 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뭔 문제인고 하니 개인적 판단과 공공의 판단 즉 개인과 집단의 판단의 괴리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당연시 되는 결론이 넓은 집단에서 보면 반드시 옳은 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 9.11테러를 당했다고 이슬람 세력에게 피의 복수와 같은 것을 감행한다고 했을 때 미국 내에서는 당연한 응징이라고 용인 받을 수 있지만 세계의 시선으로 볼 때 테러의 원인이 아닌 것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다. 도덕과 윤리는 어쩔 수 없는 괴리를 나타낸다. 합치도 되지만 불합치도 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불합치되는 것을 합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되지 안을까? 이것은 내 생각이다. 가리타리 고진이 말하지 않았으나 그 행간에 그리 읽힌다.
이러한 도덕과 윤리의 개념을 정립하면서 가리타니 고진은 칸트에 기대어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신도 인정하듯이 칸트를 통해서 도덕과 윤리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고 있지만 철학에 대한 어쩔수 없는 선입견과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생각을 대충이라도 알아야 이해와 오해와 오독의 거리를 조금 더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가리타니가 칸트에 기대어 있고 현대 철학자들의 사상에 기대어 있더라도 오랜 시간 읽고 오랜 시간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철저한 자기화가 이루어진 것이어서 섣부르게 다가갔다간 뼈도 추리지 못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니 준비는 단단히 하고 빠져들도록 형이상학적인 바다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명확한 개념화 뿐이다.
가리타리 고진은 전쟁의 새대에 종언을 요구한다.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세계시민적인 견해에서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데 윤리적 판단에서는 모든 전쟁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서구의 제국주의가 심판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판단되는 것이라는 견지를 뒤집어야 하는 난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윤리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당연히 서구의 제국주의는 심판 받을 수 밖에 없다. 윤리에 의한 도덕의 심판받을 시대가 우리가 타자가 되는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가리타리 고진은 또 다시 도덕과 윤리에 있어 자유의 개념을 정립하는데 , 사실 나는 이 부분까지는 내 식으로든 가리타리 고진 식으로든 설명하기를 포기하려고 한다. 선명한 자기 정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뜬 구름을 잡아본다면 하나의 현상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데 의무는 인식에서 온다 . 인식은 사건의 원인을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원인라는 것이 일 대 일 대응하는 것이 아니어서 다변적이고 다원적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복잡해지면 뭉쳐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자유의지라는게 있을 수 없다.자유로운 선택은 은연중에 그렇게 선택하도록 만들어 놓은 잘 짜여진 연극의 결론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원인을 추궁하고 인식하기 전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일본의 도덕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정도로 뜬 구름을 잡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개인의 판단과 집단의 판단의 상이성 속에서 혼란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길 권하여도 좋을 책이다. 집단의 결정에 있어서 개인의 소수의견이 묵살되는 상황에 처해진 사람도 당연히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