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갈색책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진중권 옮김 / 그린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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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유랑인이 오독한 청갈색책에 대한 푸념임을 일러둔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라고 설명해 줄 사람이 있으면 설명해보시라 잘들어보겠다. 결국 청갈색책 읽은 유랑인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일단 이건 이야기하고 가야지. 음 그러니까 철학책이란 것은 소설책이 아니어서 중간의 저작물부터 읽었다가는 피본다.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할 것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는 더한 것 같다. 뭐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은 대충 들은 풍월이라도 있지 현대 철학자들은 감당이 안 된다. 예전에 서양 철학사를 읽었던 기억에 비춰볼 때  비트겐슈타인이 제일 마지막에 소개되었다. 그러니까 현대철학자라는 소리다. 이 책 잘못 건드렸다는 소리다. 게다가 이 책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지는 그 극점에 있는 책이니 더 할 수 밖에 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전후를 잘 따져보고 초기작부터 잘 읽어야게다. 물론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을 공부하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 그러니까 철학책 사상서 유랑인처럼 읽지마라 편이 되겠다.

 

비트(겐슈타인) 아저씨는 언어를 철학의 도구로 삼는다. 하여간 비트 아저씨 청색책에서는 단어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엄청난 사유를 보여주는데 이전에 철학자들이 보여주던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언어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뭐라고 해야하나 논리학과 수학을 결합시켜 놓은 문제를 풀어놓는 논술문제를 푸는 것 같다.

 

비트 아저씨의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하건데 철학함에 있어 언어의 문제를 부각시키는데 , 문제는 그 언어가 가지는 지시적이고 일원적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의 기호와 의미의 이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인데 사실 유랑인은 철학책을 읽으면서 유랑인이 철학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님녀 국어 의미론과 화용론이라는 책이라는 것을 보고 있는지 혼란스러워졌다. 갈색책도 언어 놀이가 등장해서 모든 지면을 차지하고 있던데 청색책은 의미론 , 갈색책은 화용론으로 읽으면 이해가 더 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좀 더 친숙한 것이 국어이다보니 비교가 이정도로 투박하다.

 

의미론이라는 것은 언어의 의미가 기호가 나타내는 단 하나의 문장이 가지는 단 하나의 의미만을 가질수도 있지만 언어가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의 문장에서 전해지는 것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해져서 문장의 의미가 틀어지고 받아들여지는 사람에 의해서 변화한다는 것이 의미론을 대충 읽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청색책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대한 약간의 답이 되지 않을까 싶긴 하다.

 

화용론은 이거 최신 국어 분야지 싶은데 언어의 문법체계를 무시하고 한 단어나 두 단어로 구어 상황에서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인데 요거 재미있다. 이야기하는 상황에 따라 똑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거나 다른 행동을 파생시킨다. 이것은 아마도 갈색책의 언어놀이 중 벽돌에 관련된 이야기와 상통하는 면이 있는 듯하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읽다가보니청갈색책을 뭐 언어 의미론 화용론의 효시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해버렸다. 미안해요 비트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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