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주의사항.

   책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썰만 풀어놓는 리뷰가 될 수도 있음.

   늘 그래왔듯.


2. 글의 순서에 따라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엄마와 나' 였고

   이후 '부모님과 나' 그리고 '난 뭐하는 거지' 등의 사고가 차례대로 떠올랐다.


3. 최근 나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불화를 선언해버린 상황이다. 

   물론 누구에게도 티 안 나게 나 혼자서지만.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가능한 축약해 얘기해보자면

   '무면허 부부상담가 노릇' 도 이제 못 해 먹겠다- 정도일까.

   그리고 왜 저들은 삭고 삭아 거무죽죽해진 그 감정들을 나에게만 쏟아내는 건지.

   내가 집에 가장 많이 붙어있는 사람이라서인지

   (직장에 다니건 다니지 않건 방 밖으로도 잘 나가지 않는 성향이다)

   아니면 내가 딸이라서인지.

   가능하면 전자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다는 건 나의 착각인지.


4. 일방적인 불화 이후 마음이 편해졌는가? 오히려 분노만 더 들끓는다.

   4명이나 되는 식구들 사이에서 나 하나 대화 차단 했을 뿐인데

   왜 집에서 대화란 게 통째로 사라져버린 건지.

   내가 그만큼 열심히 상담가 노릇을 자처하며 오지랖을 피운 탓인지

   오지랖을 피울 수 밖에 없게끔 돌아가는 상황이 그러했는지

   여기까지 생각하면 더 열이 뻗치는 거다.

   대체 난 왜. 이 나이까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가.


5. 스스로의 감정체계가 어딘가 고장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은 학창시절이었다.

   어떤 대상을 향해 '예쁘다' '멋지다' '분위기 있다' '우아하다' 등의

   감탄사를 내뱉는 주변인들을 보며

   난 도통 그 감탄을 이해하지 못 했고 궁여지책으로 코드를 습득하는 것을 택했다.

   이를테면 눈 크기가 클수록 귀여운 이미지에 속하고

   눈꼬리가 길게 늘어질수록 교태스러워진다 던지

   이 색상의 배합은 예쁜 거고, 이 배합은 우아한 거며

   대비가 강할 수록 강렬하며 때론 기괴스러워진다 등등.

   그리고 이러한 코드의 대부분은 만화를 통해 습득되었다.

   (...사람 얼굴 보고는 도통 알아먹질 못 하겠으니)

   이러한 코드 습득이 무한 반복되고 나니 그제야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더라.

    ....물론 예쁘다. 멋지다 보다는

   내 마음에 드는 얼굴. 안 드는 얼굴 의 반응이 먼저긴 하지만.


6. 언젠가 왜 감정체계가 고장나 버린 걸까 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도 잘 울었다는데

   (하도 울어서 지쳐버린 부모님이 울든 말든 내버려 둔 채 볼 일을 봤다는 일화도 여러번 들었다)

   지금도 화가 나면 눈물부터 나는 걸 보면 태초부터 무감정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 그 전에 짜증이나 싫증. 미움. 분노 등은 수시로 느끼면서

   왜 예쁘고 귀엽고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에는 무감해진 건지.

   부정적인 감정들에만 반응한다는 것을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7. 우울은 전염된다는 말을 믿는 편이다.

   우울이 유전된다는 말보다는 전염된다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유전이란 말이 오가는 관계란 어쨌든 부모-자식 간일테고

   다수의 경우 부모란 존재가 곧 긴 세월 동안 제한된 공간에서

   가장 얼굴 많이 보는 대상일 테니 당연히 그 감정이 옮지 않겠는가


8. 이 쯤 되면 이제 사고는 다른 쪽으로 튀어간다.

   이 우울이 그리고 이 분노가 결국

   이 집단 내에서 내가 옮을 수 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라고 한다면

   내가 미련스럽게도 집착하고 있는 '창작' 이라는 행위는

   대체 이 집단의 누구에게서 뻗어나온 것인가 하는 것.

   유난히도 수묵화 액자들을 좋아하던 아버지인지

   화가가 되고 싶었다던 어머니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따로 도피할 방법이 없었던 건지.

   그렇다면 이제 더이상 도피가 되어 주진 않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붙들고 있는 이유는 뭔지


9. 이 책을 산 건 '투명' 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수시로 이 쪽 저 쪽을 오갔었다.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알고 싶지 않은.

   그제야 일평생 해온 것이 외면과 도피 임을 깨달았다.

   반농담삼아 '가내평화유지군' 이란 별명을 스스로에게 붙이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을 정도로 유별나게 끼어들어서 마모되더니

   결국 그 외의 문제에서는 스스로를 놔 버린 채 부유하기를 택한 거다.


10. 그렇다고 지금부터 열심히 끼어들어 투쟁하며 살리라 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지친 상태다.

     투명해지고 싶은 마음.

     이는 내게 있어 차라리 사라져 버리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어쨌든 이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니

     어떻게든 투명해질 것이 아니라 3D 입체조형으로 돌아와야 할 텐데

     영 마음 먹어지지 않는다. 애초에 치열하게 살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11. 그러니 결국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계속 살자. 그리고 그리자.

     저들은 저들끼리 살라 내버려 두고 난 나를 지키자.

     문득 나를 지키고자 인간관계를 흘려보낼 결심을 했던 몇 해 전이 떠오른다.

     이러다 나중에 친구 하나 없어 후회하겠지 싶으면서도

     도무지 이겨낼 자신이 없는 거다.

     우울과 우울을 비교질하며 내가 더 무겁네 어쩌네 하는 그 대화를 떠올리면.


12. 결국 결론은 제자리다.

     나와 비슷한 나이 쯤에 썼을 법한 책을 보면서

     그럼에도 나랑 다르게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게 놀라우면서도

     그래도 딱히 들어가고 싶지 않음에 그냥 여기 있음을 택하는 것.

 

13. 현실과 우울의 영역.

     아마 일과 그림을 병행하기로 한 이상 이 유리는 평생 유지될 것 같다. 

     그러니 내 현실감각도 쭉 그대로겠지.

     허나 딱히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고독사가 우려되니 인간관계는 좀 신경써야 하지 않나 싶긴 하지만.


14.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었을 당시 홈페이지 이름을 'In Gray' 로 지었더랬다.

     당시에는 연필 그림을 많이 그리던 터라

     연필심의 색이 회색이니까 하는 생각에 단순하게 지었던 거지만

     해가 갈수록 나라는 사람의 모양새와 가까워지는 걸 보면 묘하다 싶다.

    투명한 것도 아니고 불투명한 것도 아니고.

    치열하게 열정적인 건 아닌데 뭔가 꾸물럭 대면서 하고는 있는.

    아마 앞으로도 이 속도로 살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