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만큼 어둡고 예상만큼 좋지만
그것 때문에 다시 읽지 않고 싶어졌다

한때 8~9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글만 읽은 적이 있다.
지독한 무감각과 무기력을 애써 감추려
해야 할 일을 분단위로 적어놓던 즈음의 일이다.
그 시기 한강씨의 글을 좋아하지 않았던 까닭은
아마 무력하게 널브러진, 그녀의 글에 꼭 등장하는 인물이 나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리라.

텅 빈 채로 살리라.
지독한 무감각을 보내던 시기엔 무엇이건 쑤셔넣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러면서 그것을 작가적 삶을 위한 토양이라 믿었다. 그러다 문득 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지금이 마음 편한 것이 나을 일이다. 화나면 화나는대로. 비었으면 빈 대로.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않기로 했다.

검은 사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허름한 흙벽의 집에서 한껏 투명해져
바스라질 날만 기다리는 검은 옷차림의 여자다.

왜 유난히 이 책이 불편할까. 한강의 다른 작품에 비해.

어떻게든 살아보리라는
그녀 특유의 견딤이 없다.
그대로 바스라져 사라지리라는 투명한 여자만 있을 뿐

하여 다시 읽고 싶지는 않다.
거듭 읽다간 나마저 끌려가지 싶어서.
난 이제 죽고 싶지 않으니까.
투명해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은 강인한 유리가 되고 싶다지
유리가 되어 깨져버리고 싶다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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