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차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1. 첫 번째로 아쉬운 것은 표지.
시종일관 채무에 빠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녀는 검소하고 사치를 하지 않았다 를 강조하며
기형적인 채무구조를 설파하던 책의 내용과 달리
표지는 마치 악령에 빙의된 여자가 자의가 아닌 걸음으로 낭떠러지로 향하는 것 같아
이게 뭐지 싶었더랬다.
...자의가 아닌 걸음이니 어느 정도는 뜻이 통한다고 볼 수도 있을까나
2. 이 책이 소개될 당시 빨간책방에서도 나왔던 말이지만
미미여사가 정말 자료조사를 열심히 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의 경제학 강의.
사실 너무 직접적으로 '내가 카드빚의 실체를 알려주마' 하며
장시간을 서술한 것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음.
3. 무척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집 사정이야 어떤지는 내 모르겠지만 우리 가정 또한 빚에 허덕인 때가 있었다.
빚쟁이가 집에 쫓아온 적은 없었지만 차압 딱지가 붙은 걸 보았고
그래도 밥 굶고 살진 않았지만 늘 돈 때문에 싸웠고 가족여행, 가족외식은 당연히 없었다.
그 와중에 인정을 내세워 돈 빌려가고 입 닦은 친척들까지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안 갚고 있다)
생각해보면 얼마든지 더 추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올라왔고 여전히 여행이니 외식이니는 별로 하진 않지만
내 돈으로 내가 책을 사도 헛돈 쓴다고 욕먹지 않는
그리고 돈 쓸 때 눈치보지 않는 그런 환경이 되었다는 건 어쨌든 박수칠만한 변화 아닌가.
경제적 환경 외의 정서적 환경은 어떤가는 둘째치고 라도 말이다.
4. 그런 가정환경 탓인지 아니면 돈 때문에 싸우는 꼴을 너무 봐서인지
소비에 한해서는 정말 극단적으로 깐깐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친구도 만나지 않게 된 배경에는
물론 '사람이 귀찮아' 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한편에는 '사람을 만나서 돈까지 써야 하는 게 귀찮아' 라는 이유도 있는 것이다.
아마 가정환경 + 이직이 잦았던 직장경력 + 이직으로도 모자라 떼인 월급도 100단위
정도가 이유의 연산과정이지 싶다. 돈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민감해진 데 대한.
5. 이 민감증이 그야말로 폭발하게 된 시기는 '그림 그린답시고 취직도 못 하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죄인 된 심정으로 20대를 보냈고 포기하고 나서야 좀 숨통이 트였다.
하루 한끼 먹고 다녔다. 집에 있어도 하루 한 끼만 먹었다. 쌀 먹는 것도 미안해서.
선풍기 안 틀고 얼린 수건 대가며 버틴 적도 있었다. 선풍기 트는 것도 미안해서.
그러다 보니 아직도 겨울에 보일러를 끄고 여름에 에어컨을 끄는 성향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6. 왜 책 얘기를 하며 이렇게 나의 썰을 풀고 있을까.
이 책이 그만큼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책에 나오는 경우까진 아니지만 빚이 있는 가정이 어떻게 피폐해져 가는지
돈이란 게 사람을 어느 정도로 몰 수 있는지
그래도 20프로 쯤은 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이 통했다고 생각하고.
7. 처음 신용카드를 만들었던 때가 떠오른다.
처음 한 달은 그러려니 했는데 2개월째부터 바로 몇 만원씩 추가되는 내 소비행태에 놀라
바로 잘라버렸댔지. 그 이후로 카드를 만들지 않는다.
8. 그러니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가.
스릴러 물인데 정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니.
매 월말마다 듣는 얘기가 카드빚인데 그게 수위를 넘어가버리면
어떻게 될 지 장담 못 하는 거 아닌가.
9. 오만가지 생각 다 들게 하는 좋은 책이다.
다만 교코의 심리가 어떤 거였을까.
그 쪽이 더 묘사되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은 마음은 있네.